섣달그믐의 설렘
섣달그믐 하고도 저녁으로 향하는 다섯 시. 오는 이도 갈 데도 없이 고즈넉하다. 홀로 책읽기가 지루해 방을 옮겨보니 방송은 시시덕거리며 끝도 시작도 없는 이야기를 쏟아내 놓는다. 이곳저곳을 돌려보아도 그저 그럴 뿐 마음에 차지 않는다. 몇 시간이 지나면 새 해가 오는 것인가. 조금씩 어두워가는 사위가 사색을 어둠속에 묻으려 한다. 하루 종일 문밖출입을 하지 않았으니 나가 바람을 맞고 하늘을 보며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조용하다. 골목엔 여전히 차들만 자리를 지키고 행인들의 통행이 없다. 이따금 싸늘한 바람이 할퀴고 가면 풀과 나무의 마른 잎과 줄기들만 흔들릴 뿐, 마을이 잠에 든듯하다. 큰 길로 나서니 가로등과 신호불빛이 나를 맞는다. 평소보다 적은 차량들이 신호등 앞에서 줄을 서고 있다. 냇가 둑을 따라 어렴풋이 푸른색이 배어난다. 지난해엔 이월 말에도 푸른빛을 찾기 어렵더니 이월을 맞은 게 엊그제인데 벌써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겨울 가뭄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 언제 눈이 내렸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나마 어젠가 비가 조금 내려 나무들이 촉촉하다.
농사에는 어떨지 모르나 내게는 춥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신호등을 따라 횡단보도를 지나고 건너편을 보니 눈에 익은 장면에 오늘따라 의문이 인다. 이름을 모를 활엽수들이 흑갈색 잎들을 부성하게 달고 있다. 살아있음의 흔적이 없거늘 무슨 미련이 있어 나무는 잎들을 놓아주지 않는 것일까.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우수수 떨어지는 게 자연의 섭리 아닌가. 십여 미터나 되는 큰 나무에 붙은 잎들이 지는 해 부는 바람에 가늘게 흔들리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아래의 풀들은 누런빛이 돌아 새 생명을 위한 거름이 되려는데 높은 곳에선 손들을 놓지 않아 구차한 모습이다.
언제부턴가 금융가는 자동처리기가 있어 심심치 않게 사람들이 드나들고, 관공서는 이어지는 연휴(連休)를 맞아 문들을 닫아 고요하다. 대조적으로 가게들은 뭔가를 사라고 소리치고, 거리엔 요란하고 자극적인 입간판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초연한 도인처럼 흔들림 없이 갈 길을 간다. 눈 간 곳에 빈 점포가 보이고 무엇을 하던 곳인지 텅 빈 공간이 애처롭고 여유롭다. 유리창 너머를 보며 상상한다. 이곳에 있던 이들은 장사가 잘 되어 더 큰 곳으로 간 것일까, 안돼서 눈물을 머금고 철수한 것일까. 신문과 방송이 예년에 없이 경기가 힘들다 하니 그만 둔 건 아니려나. 해가 지고 어스름이 밀려오니 날씨는 더욱 싸늘하다. 차들이 적은 도로에 시내버스가 번호를 번쩍이며 지나간다. 손님이 몇 보이지 않아 쓸쓸해 보인다.
넓은 학교 운동장에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 둘이 공차기를 하고 있다. 둘이 있어도 긴장감이 도는 승부차기를 하는 모양이다. 골 문지기는 겅중겅중 뛰며 찰 곳을 줄여도 상대는 용하게 골문 안에 공을 차 넣는다. 한 사람은 신나고, 상대는 머쓱하지만, 역할이 곧 바뀌고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었다. 결과가 순간순간 드러나고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하나 곧 잊어버리니 별 미련이 없다. 누가 넣든 막든, 아무 관계도 없는 광경을 단지 호기심만으로 보다 돌아선다. 둘 중에 누가 이기고 지면 어떤가. 그들도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잊고 말 것인데….
학교 담을 따라 돌아오며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때 나를 긴장하게 하고 흥분시키던 일들은 무엇이었나. 섣달그믐이 되면 알 수 없는 설렘이 있었다. 자세한 가정 형편을 모르니 세뱃돈을 바라고 설빔이 생기고 맛있는 아침을 기대했을 게다. 어른들이 무척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못하는 게 없어 보였고 세상이 쉽게만 여겨졌다. 책이나 라디오에서 접하는 이들이 성공한 분들이었고, 내 미래도 잘 될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 것을 알았지만 내가 예순이 되는 일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명절을 맞으면 이제는 친인척들을 만날 약간의 기대는 있지만 크게 설레지도 기다려지지도 않는다. 내 세대가 점점 밀려나고 자녀들 세대가 일자리를 갖고 가정들을 이루고 있다.
학교 울타리 나무들이 겨울을 난다. 내 눈에 드러나지 않아도 봄을 맞을 준비를 분주히 하고 있으리라. 오늘이 입춘이니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새로운 모습들을 하나씩 보여주리라. 전조등을 켠 차 한 대가 곁을 스쳐간다. 내 어릴 때에 우리 동네에 누구 네가 차를 가졌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 걸어 다니고 뛰어다녀도 명절이면 마냥 흥겹고, 어머니 따라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빼오면 마음이 넉넉하고 풍성했었다. 어려운 중에 명절이 다가옴이 어른들에게는 얼마나 불안한 일이었을까. 부모님이 잊히지 않는다. 그 춥고 가난한 시절을 버텨 내게 풍요로운 시절을 물려 주셨구나. 상대적 빈곤에 마음이 시릴 뿐, 절대적인 가난은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가 되었다.
집에 돌아오니 불이 켜져 있다. 방송 화면은 고속도로를 비추고 평소보다 얼마나 더 걸리는지 이야기한다. 올해 설은 눈이 오지 않고 맑은 날씨가 이어지니 어느 해보다 사고가 적고 평안한 명절이 될 것 같다. 다섯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내일이면 정말 희망찬 새해가 내게 찾아오려나. 우리 가정과 주변 분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가오는 새해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진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섣달그믐 저녁의 발간 볼을 한 내 어린 시절 해쓱한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