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마을 작은 학교
월간지 기자들이 폐교가 걱정되는 학교들을 찾아가 그곳의 아이들과 선생님 또 직원들 이야기를 쓴 책이다. 나는 중고(中古) 책 사기를 즐긴다. 책값이 비싸서 이기도 하고 무슨 책을 사야할지 정확히 모르는 것도 그 한 이유이다. 그러다보니 분야와 책 제목을 보고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책을 많이 사는 것도 아니다. 이 책도 분야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해 읽었다. 읽는 동안 몇 번 마음이 울컥하고 눈물이 솟았다.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다. 나는 작은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도 한 학년이 7반까지 있고 한 반에 80명 가까운 학생들이 있었다. 이제 생각하면 그 당시의 선생님들은 슈퍼맨들이었나 보다. 그 때의 선입견은 학생 수가 많은 학교가 좋은 학교였었다. 역사가 깊거나 학생이 많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자랑이고 내가 다니는 학교가 뭔가 다른 학교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때 전교생이 삼십여 명 되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라고 하면 막연히 무시하거나 나보다 못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저자들이 찾은 작은 학교들은 자연이 살아있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산다. 학교에 오가는 순간뿐 아니라 삶이 자연과 “더불어, 함께”산다는 걸 쉽게 느낄 수 있다. 시간의 격차가 있긴 하지만 도시의 아이들은 학교를 오간다는 걸 실감하지 못한다. 학교와 집의 거리가 멀지 않기도 하려니와 조금만 멀면 부모님이 승용차로 데려다 준다. 자연 속에 함께 산다는 걸 느끼기보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순례에 바쁘다. 작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풀과 나무와 개울과 곤충과 물고기 같은 자연과 친숙하여 그들의 자람을 지켜보고 변화를 느끼며 사는 게 얼마나 귀하며 그들의 평생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들은 그 환경에서 벗어나기를 애타게 원하는 것은 아닐까.
작은 학교의 아이들과 선생님은 사이가 좋다. 그곳에는 나이가 차지 않아 정식 학생이 아닌 꼬마들도 환영받는다. 심지어는 동물마저 학생이었으면 하고 아쉬워한다. 학생 수에 따라 폐교여부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선생님은 부모이고 형 누나이며 의지할 가장 가까운 존재다. 선생님께도 그들은 제자들 이상으로 소중하다. 아이들뿐 아니라 그들의 부모님과 가정형편까지 잘 알게 되니 교육이 제대로 될 곳이 작은 학교가 아닐까 싶다.
학생들 사이도 끈끈하다. 전교생이라야 많지 않고 서로가 너무도 잘 알 수 있으니 사이가 돈독할 수밖에 없을 게다. 도시의 큰 학교 어디가 서로를 그렇게 잘 알 수 있을까. 부모들끼리도 매일 만나는 사이니 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곳에서 학생 눈높이 교육이 어찌 이루어지지 않으랴. 몇 안 되는 아이 중 하나가 기본개념을 모르면 깨우쳐주지 않을 수 있으랴. 서너 번이 아니라 알 때까지 가르쳐주리라.
도시의 학교에서는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문제가 된다. 인원이 부족해 축구를 할 수 없다거나 운동회가 너무 일찍 마친다는 것들이다. 소수의 아이들을 한 교실에 두고 학년에 따라 몇 개의 그룹으로 수업을 한다는 게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수업자체가 그룹지도일 수밖에 없을 게다. 정책에 의해, 큰 틀에서, 자본주의의 경제논리로 그 어떤 변명을 해도 작은 학교를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거대학교를 쪼개서 작은 학교를 만드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책에서 받은 느낌으로는 작은 학교의 구성원들은 가난한 이들이 절대다수인 듯하다. 부모들의 가장 큰 염려가 아이들의 교육일 게다. 작은 학교가 문을 닫는 건, 그들 공동체가 무너져 간다는 의미다. 농촌, 산촌, 어촌이 피폐해지면 어디에서 삶의 문화를 찾을까. 문화란 주민들 삶의 터전에서 자라나고 열매 맺는 것인데, 삶의 터전이 무너지면 그 문화도 생명을 잃는 게다. 자기들만의 문화가 없는 삶은 향기 잃은 꽃과 무엇이 다른가.
폐교를 걱정하는 작은 학교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자연환경이 풍요로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누리는 것은 화려한 인문환경이 아니라 말없는 자연이다. 때로는 심심해 보이는 자연이 놀랍고 위대한 삶의 진리를 가르쳐준다. 어느 교과서, 수업에서 배울 수 없는 교훈을 시간의 흐름 속에 머리가 아닌 가슴과 몸으로 배운다.
평생 무엇을 하든 자연 속에서 산 유년시절은 추억의 바탕이요, 인성의 뿌리가 된다.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어중간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다. 작은 학교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연 속에 묻혀 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인기 있는 한 TV방송을 보면 귀촌하는 이들이 주로 자리 잡는 곳이 고향이다. 정부가 작은 학교를 많이 만들고 그곳의 학생들에게 여러 혜택을 준다면 사라져가던 많은 좋은 것들이 살아나지 않으려나. 어쩌면 모두가 바라는 일들의 해결책이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내 삶에 자연을 넉넉히 대해본 건 군대에서의 두 해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얼른 벗어나고 싶었지만 지나고 보면 내 심성을 가다듬어 준 잊지 못할 고마운 시절이었다. 작은 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은 실은 평생의 자산이 되는 자연의 큰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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