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불급(不狂不及)
- 고집쟁이 김벌래의 신나는 소리인생 -
그 앞에 흙 수저 타령이 아무 의미가 없다. 불우한 가정형편에 돈 통을 빼돌려 가출을 한다. 운 좋게 합격한 학교가 국립체신고였다. 다른 책을 보던 중이었지만 내 삶에 강한 충격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먼저 보았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와 같은 고집과 열정이면 무언들 못할까. 학생신분으로 연극단에 찾아가 얼마나 열심히 잔심부름을 했으면 어른으로부터 발레란 별명을 얻었을까. 적당히 산 세월이 없다.
체격에 열등감을 느꼈을까. 다른 이들은 어떻게든 가지 않으려는 군대를 지원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뇌물을 써서라도 가려고 했다. 힘겹게 모은 돈으로 구입한‘백조 오르겐’을 반값에 처분해 뇌물로 바치고도 못 간 군대. 다수의 무리에 그렇게도 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내 보기에‘영원한 소수’이다. 소리 분야의 천재로 그를 추월할 이가 없으니 외로운 소수다.
체신 공무원을 하면서도 극단을 창단해 공연을 했다. 안 되는 공사를 집념으로 따내 그 비용으로 연극을 한다. 그것으로도 만족을 못해 아예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의 열정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코코아 광고를 위해 동물원을 찾아가 며칠 기린의 소리를 녹음하다 안 되니 동물조련사에게 뇌물을 주고 기어이 채록하여 모두가 인정하는 광고를 만들어낸다. 아이디어도 대단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자세가 놀라울 뿐이다.
펩시콜라와의 일화는 전설이다. 치밀한 분석과 될 때까지 하는 작업정신, 50여 병의 맥주 뚜껑을 따며 한 녹음, 아니면 미련 없이 버리고 다른 대상을 찾는 결단도 신기하다. 풍선을 거쳐 피임도구에 이르기까지, 흡족한 결과를 얻도록 두드리는 정신이 김벌래다. 수없는 노력을 거쳐 얻은 작품을 평가해준 이들도 놀랍다. 백지수표를 건네는 이들이나 적당금액 이상을 적지 않은 저자나 난형난제(難兄難弟)라 하겠다. 그가 해낸 무수한 일들과 학력을 비롯한 기존의 벽에 굴하지 않는 기백을 어떻게 닮을 수 있을까.
세계인을 상대로 사고를 쳤다는 서울올림픽의 다듬이소리, 지존의 권력에 맞서는 용기는 어디에서 올까. 자신의 일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일 게다. 차선으로 행해도 칭찬 듣고 더 안전할 수도 있다. 단지 자신에게 불만일 뿐이다.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김벌래다. 다 아니라고 해도 본인이 확신하면 그것을 굽히지 않는다. 대단한 행사에서 강한 그도 광고주의 거절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자신만만하게 준비한 것도 폐기하고 또 다른 것을 준비해간다.
신나는 김벌래, 괴물 15843호. 그의 열정을 그대로 보여준 게‘로봇태권브이’가 아닐까. 개봉에 맞추어 온몸을 불사르듯 한 것이 졸도사건으로 나타난다. 깨어나자마자 도구들을 병원으로 옮겨 작업을 지속하고 개봉일에는 상영관에 간다. 완성이 되지 못한 작품에 부족함이 있어도 모두가 열광한 작품에 감동이 인다. 30년이 지나 디지털로 복원해 시사회를 열고 정부로부터 제1호 로봇등록증을 받았다. 대단한 일을 하 많이 한 김벌래니 대단한 감동이야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는 참 인복(人福)도 많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꿰차고 있는 듯하고 초창기에 좋은 이들을 만나 수십 년을 함께 한다. 더욱이 좋은 아내를 만나 병으로 고생하신 아버지를 수발하고 큰 파탄 없이 가정을 이루어간다. 두 아들도 아버지의 일을 이어 막강한 군단을 형성했다. 그런 일들이 행운이나 복으로만 오지는 않는다. 그의 삶과 신의와 실력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동아 방송 제1기 성우모집에서 그에게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그의 생활자세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20명 모집에 2,000명이 몰리고 서류에서 합격한 800명이 면접을 준비하는 때에, 가장 늦게 접수한 그도 긴장하며 대본읽기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를 찾고 있던 이가 알아보고 임원들 앞에 데려가 “드디어 버러지를 잡았어!”, “내일부터 방송국 제작부로 출근해!”라는 말을 듣고 인정을 받는다. 그 재능과 열정과 성실성을 얼마나 인정했으면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는 일을 맡기는 이들의 요구사항보다 더 대단한 작품들을 결과물로 내놓는다. 한 가지 일을 하면 그 분야의 일이 밀려들어온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대로 외적으로는 보잘 것이 없을지 모른다. 키 158cm에 체중 43kg, 왜소한 체격이다. 남들은 석 ․ 박사는 아니라도 대학은 거반 졸업했을 시절에 특수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이다. 하지만 그가 이뤄낸 실제적 경력은 경쟁자를 찾기 어려울 게다. 다른 이들과 차별화된 무엇이 없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칠 줄 모르는 열심이다. 열릴 때까지 두드린다는 집념이다. 청각의 일부를 잃을 만큼 열심히 한 결과물이다.
그는 유명한 운동선수의 입을 빌어 얘기한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공자의 말씀을 약간 응용한 듯하다. “아는 이는 좋아하는 이만 못하고 좋아하는 이는 즐기는 이만 못하다.”즐기며 하는 이들을 당할 수는 없다. 그는 이것을 “신나게”라고 들려준다. 어떤 일이든 될 때까지 신나게 한다면 결과를 떠나 행복한 삶을 사는 이가 아닐까. 나도 한번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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