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남 오빠에게
- 조금은 낯선 페미니즘 소설의 세계 -
한동안 서점가를 달군 《82년생 김지영》을 읽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꽤 잘 나가는 책이라는데 잘 나가는 작가의 유명세에 묻어가려는 의도도 있지 않나 싶다. 제일 앞면에 자리하고 책이름도 그 작품이다. 앞부분 세 작품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을 여성의 시각에서 남성중심의 부당하고 편향되어 있는 현실의 고발처럼 다가온다. 오랫동안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가 유지되어 왔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여성주의에 눈을 뜨고 이제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탄력을 받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비슷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 보편화되고 그만 해도 되겠다는 여성들의 자인이 무르익을 때까지 계속되어도 좋으리라.
〈현남 오빠에게〉는 굳이 자세히 읽어보지 않아도 흐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남성의 처지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를 수도 있다. 또는 그게 과연 남성의 잘못일까 싶기도 하다. 챙기지 않아도 불만, 챙겨도 불만이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반문할 게다. 그런 극단적인 결정을 하기 전에 왜 의견조율을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는가. 10년을 사귀고 청혼을 거절하면 그 뒷감당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나이는 들어가고 그나마 현남 같은 남자를 만날 수나 있을까 괜한 염려를 내가 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결혼연령이 점차 늦어지고 결혼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남들이 하니까 관습을 따라 결혼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나없이 결혼을 터부시하고 자신의 삶만을 즐기는 것도 마냥 잘하는 일이라 할 수는 없다. 판단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여성의 권리를 알아가고 주장하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가정과 사회와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여성들이 행복하면 남성들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가정이 화목하고 사회가 활기차게 될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쳐부수고 이겨야 할 적이 아니다. 함께 살아갈 동료들이다.
〈당신의 평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부장적인 남편에 의해 서서히 망가지는 아내의 삶인가. 남성중심 사회에 함몰된 시어머니에게 고통을 겪으며 병자가 되어가는 며느리를 보여주는 것인가. 남성들이 의도적으로 부인을 힘겹게 하고 자신만 권익과 편의를 누리려는 것이 아니다. 보고 듣고 익힌 바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알지 못해서 몸에 익숙한 대로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남성들도 여성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드러내고 아픈 면을 알려주기를 원한다. 스스로 억울하고 힘들어하면서 참고 버텨왔으니 잘 알아차리지 못한 게다. 사회가 변하고 있다. 어쩌면 남성들에 의한 억압보다 고부간의 갈등에서 보듯이 여성들에 의한 여성의 잔혹사도 적지 않았을 게다. 당신의 평화가 남편이 누리는 이기적인 평화일 수도 있지만 아내이자 어머니인 정순이 유진을 볼모로 누리고자 하는 평화인지도 모른다. 관계와 삶이 어긋나면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다. 정순으로 인해 적지 않은 고통이 자신과 딸과 며느리에게 그리고 그 여파가 아들과 남편에게까지 미치리라. 평화는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는 것인가 보다. 한편의 희생 위에 얻는 평화는 한과 설움이 맺힌 거짓 평화로 불행을 잉태한 깨어져야 할 일시적인 불완전한 평화일 수밖에 없다.
〈경년〉은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다. 소설이 현실의 반영이라 하지만 극히 일부일 것 같은 지나친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갱년기를 의식해 쓴 표현 같은 경년(更年),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중학생 아들과 초등생 딸을 둔 엄마로서 음모에 난 새치로 시작해서 중년 여성의 자위를 거쳐, 중2인 아들은 단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또래의 다수 여학생들과 콘돔을 사용하며 성관계를 갖는다. 아들은 조금의 죄의식도 없고 그 얘기를 듣는 아버지도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들을 ‘난 놈’이라고 추켜세운다. 공부 잘 하는 여중생이 성적을 위해 호적수인 남학생을 유혹하고 성을 미끼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성적(成績) 경쟁에서 앞서 간다. 작가도 할 말은 있을 게다. 어쩌면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확인하고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꼭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야기들을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만들어내야만 하는가. 내가 읽기에는 상업성을 염두에 둔 선정적 삼류소설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가끔 여기저기에 남성중심사회를 비판하는 것 같은 메시지를 담으면 훌륭한 페미니즘 소설이 되는가.
후반부 네 편의 소설들은 여성이 주인공이거나 여성에게 피해를 준 남성들을 징벌하고 여성의 창조성을 상징하는 출산과 육아를 돋보이게 한다. 그렇지만 가끔 소설을 읽기만 하는 전문성이 결여된 나로서는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어떤 것은 판타지소설 같기도 하고 공상과학소설 같기도 하다. 여성들의 시각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품들이 나온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새로운 분야가 나타나고 기울었던 것이 균형을 잡고 다양성이 확보되는 길이다.
갈등과 대립의 단계를 넘어 서로의 화합과 보완으로 함께 행복한 관계를 향한 성숙한 페미니즘, 한걸음 더 나아가 그런 용어조차 사용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이뤄가는 과정이 현재의 시점이라고 믿는다. 남 ․ 여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세심히 배려하는 우리 사회가 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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