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수레
한 가지로 세계의 역사를 꿰뚫어 본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저자 김용만은 수레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본다. 수레 전차 기병 대포 탱크 자동차로 이어지는 운반과 속도의 문명사, 그러한 도구들이 세상을 바꾸어왔다. 오늘날 발달하는 문명이 자동차를 바꾸고 자동차가 또 다른 길을 요청한다. 길이 놓이는 곳에는 삶이 달라진다.
길의 역사는 운송의 역사이며 소통과 통제와 지배의 역사이다. 운송수단은 얼마가지 않아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무기가 된다. 군사력이 약한 이들은 강한 자들의 무기를 사용할 수 없도록 길을 불편하게 놔두었다.
인류가 무거운 것들을 운반하기 위해 감내했을 고생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좀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은 마침내 바퀴에 도달했을 것이다. 나무를 이용한 바퀴가 처음에는 노동력을 크게 줄여주어 신기했을 테지만 얼마가지 않아 또다시 불평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길의 요철에 따른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무겁고 잘 부서졌으리라. 나무의 주변부를 단단한 금속으로 감싸고 안쪽을 파내고 살을 박는데도 적지 않은 세월이 걸렸을 게다. 견고하고 빨라진 덕에 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우기도 했을 것이다. 하나씩 개량될 때마다 편리함을 만끽했겠지.
난공불락의 요새가 바퀴달린 무기로 인해 비극을 맞기도 했을 게다. 수많은 지략가들과 모사들이 새로운 기상천외한 바퀴달린 무기들을 고안해 내고 마침내는 이동식 타격기를 등장시켰을 게다.
한편으로는 화물의 이동뿐 아니라 사람들의 행차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초창기의 가마와 동물을 이용한 모습에서 어느 순간 보다 쾌적한 탈것으로 옮겨갔으리라.
고무의 발견으로 타이어가 등장하고 동력이 개선되면서 자동차가 등장한다. 자동차의 등장은 인류의 생활모습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산업계의 변모뿐 아니라 전반적인 탈바꿈이 이루어졌다. 자동차생산에 필요한 수많은 부품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들이 생겨나고 그 일자리를 따라 노동자가 채워졌다. 차가 다니기 위한 도로가 행정구역과 그 상위기관의 힘으로 놓아지고 그 일을 통한 토목공사와 경기부양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차의 수효가 급증하면서 정비공장과 수리점이 생기고 연료공급을 위한 주유소가 나타나고 자동차 판매직이 생기고 사고에 대비하고 그 처리를 위한 보험이 발달하게 되었다. 뿐인가. 생산한 차를 판매하기 위한 광고도 만만치 않다. 이제는 기능에 따른 차의 다양화뿐 아니라 그 자체가 신분을 상징한다고 할 만큼 설득력이 강해져 필수 사치품으로 되었다.
자동차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속도의 경쟁을 초래했다. 조심스레 촉발된 속도는 차의 성능과 도로의 고급화를 부추겼다. 그 결과는 이동 가능거리를 급격히 늘였고 거대도시의 영향력을 더 확대해 주었다. 산업화와 함께 이촌향도현상이 나타나고 많은 젊은이들로 땅을 등지게 하던 모습에서 이제는 시골의 모습이 사라지는 형태로 나타났다.
저자는 고려에서 많이 사용되던 수레가 조선에 와서는 감소했다고 했다. 그 원인을 길에서 찾고 있는데 조선이 길을 넓히지 않았고 넓은 길을 의도적으로 건설하지 않은데서 찾고 있다. 조선이 길을 넓히지 않은 이유는 길이 넓으면 적이 쉽게 원하는 곳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추측은 쉽지는 않을 게다. 여러 차례 위협을 받기도 했을 테지만 역발상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많은 수의 적이 침략해 느린 속도로 수도에 진격하면 접근로에 위치한 지역이 당할 참상을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길이 넓으면 적의 진입이 용이할 뿐 아니라, 아군의 이동도 편리할 것이다. 나라 안 군사들을 모아 적이 침입한 곳에 쉽게 투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도로의 협소함은 군사의 이동뿐 아니라 사람과 상품의 유통을 어렵게 할 수밖에 없었다. 상품의 유통이 상업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가는 거듭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그런 현상이 주변 국가들에 비해 우리의 발전 속도를 늦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외국의 문물을 경험한 이들은 수레의 사용과 효율적인 도로의 관리를 역설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고루한 문신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쩌면 관심의 영역이 너무 달랐다. 서구 세계가 기계와 그 동력의 발달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을 때에도 우리는 군자를 인간의 이상형으로 여기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수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고요한 앞마당에 폭탄처럼 떨어진 현실 앞에 모두가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
한 통섭학자는 길이 나면 자연이 파괴된다고 했다.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다니기 시작하면 고요하던 자연에 인간의 손길과 발길이 용이하게 접근하고 그에 비례해 자연이 망가진다는 걸게다. 수레의 역사가 결코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발전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수레와 그에 사용되는 바퀴는 가치중립일 것이다. 그들을 발전시킨 이들 또한 인류에 해가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려 하지 않았을 게다. 그런데 결과가 예상과 달리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레의 총아인 자동차에 의해 희생되는 이들의 수가 결코 적지 않고 차를 이용한 범죄도 만만치 않으리라. 수레는 세상을 어느 방향으로 바꾸어 왔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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