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다윗

바람결에 부치는 말(요나단이 다윗에게)

변두리1 2014. 6. 30. 22:06

바람결에 부치는 말(요나단이 다윗에게)

 

  자네, 오늘에야 자네라고 불러보네. 자네가 나를 부를 때 항상 형이라고 했지만 나는 스스로 형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네. 내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자네가 형이었네. 나이야 내가 몇 살 많지만 자네가 더 의젓하고 생각이 깊고 모든 면에서 재능이 많고 나보다 뛰어났거든. 아버지야 다음 왕이 나라고 자주 말씀하셨지만 내 보기에는 자네였네. 우리나라의 왕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고 그분이 일찍이 자네를 왕으로 정한 것 아닌가. 우리 사이가 참 묘하게 되었네. 남들이 보기에는 호적수(好敵手)요 우리끼리는 친형제 이상이니 이상하지 않은가.

 

  내 자네에게 말하지 않아도 어련하랴만 그래도 이 땅을 떠나기 전 한 마디 부탁하려네. 먼저 내 사정을 얘기하는 게 순서일 듯하네. 자네, 놀라지 말게. 난 오늘 죽었네. 이제는 뭐 돌이킬 수도 없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으니 오히려 차분히 설명할 수 있겠네. 낮의 길보아 전투에서 블레셋 병사의 화살에 맞았어. 화살 한두 발이야 갑옷 덕에 버틸 수 있었는데 원체 세력이 밀리니 쏟아지는 화살에 미간도 맞고 인중도 맞았지. 정신이 어찔하더니 땅바닥에 쓰러졌는데 중간급 장수가 칼로 나를 찌르더라고. 피를 많이 흘리고 죽었지. 그 순간 내 영혼이 땅에서 조용히 떠올라 모든 걸 볼 수 있었지. 내 동생들도 둘이나 죽었더라고. 또 얼마 못가 아버지도 죽었어. 참 슬픈 날이었지. 어쩌면 잘 됐는지도 몰라. 아버지의 실정으로 나라가 많이 약해지고 백성들 고생이 너무 많았거든. 이제 자네가 백성들을 잘 살게 해주게. 자네라면 충분히 잘할 거야. 그러니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리라고 생각 하는 거야. 이번 전투에 출전하면서 우리가 이기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느꼈어. 아내와 아들에게도 다짐을 하고 왔지. 약해진 우리 국력도 알고 블레셋이 강해진 것도 알았거든.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엔돌로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아버지의 행동을 보고서야.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고 깨끗이 죽자고 결심했어.

 

  출전하면서 자네도 이번 전투에 블레셋 군으로 참전하리라는 얘기를 소문으로 들었네. 걱정도 되긴 했지만 얼굴이라도 한번 볼 수 있을까 기대도 했었어. 집결지까지 왔다가 장수들의 불신으로 돌아갔다고 하더군. 잘됐지.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아쉬웠어. 나는 전쟁에서 죽으리란 걸 알고 있어서 적어도 자네가 길보아에 있으면 내가 죽을 때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나에게 올 거고 나는 자네 무릎위에서 자네 손으로 눈감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 하지만 자네들에겐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었어. 자네, 내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게. 그분도 안됐고 불쌍한 분이셨네. 능력에 부치는 일을 그것도 치명적인 지병을 가지고 지지자도 몇 명 없이 누구도 믿지 못하고 고독하고 힘겨운 삶을 사셨지. 자네를 그토록 힘들게 한 것도 알고 보면 아버지의 불안과 열등감이었어. 자네가 골리앗을 물리쳐서 우리가 승리하고 기브아로 개선할 때 길가의 많은 백성들이 아버지 보다 자네에게 더 큰 공을 돌리고 자네 얘길 더 많이 하더라고. 그때 나는 가까이에서 아버지 얼굴을 보았어. 불안함과 당황함 그리고 열등감으로 눈살을 찌푸리고 불쾌해하며 표정이 어두워지더라고. 그 후로도 자네 얘기만 나오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셨어. 제사장 아히멜렉과 놉땅에 행해졌던 끔찍한 일을 기억하지. 그 아들 아비아달이 그 일이 있은 후 자네에게 에봇을 가지고 갔다고 하더군. 사실은 그 사건도 그렇게 과잉대응(過剩對應)할 일이 아니었는데 제사장이 자네를 도왔다는 도엑의 보고가 아버지의 열등감에 불을 붙인 셈이지.

 

  육체를 벗어나 영혼이 된 나는 자네가 보고 싶었어. 시글락으로 이동하고 또 브솔시내도 지났지. 자네들이 아말렉 군인들을 무찌르는 것도 보았지. 역시 자네더군. 내가 반가워 아는 척을 해도 자넨 모르더군. 그렇게 눈치 빠른 자네가 나를 몰라보는 것이 이상했네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네. 돌아오는 길 브솔시내에서 자네가 일처리 하는 것을 보았네. 역시 자네더군. 하나님중심의 원칙과 명확한 결정과 신속한 집행 그것이 자네의 장점이야. 모두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 이틀 후 나와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아말렉전사를 처리하는 것도 보았네. 나도 자네가 그의 노고를 치하하지나 않을까 했는데 역시 명석하게 일을 처리하더라고. 게다가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음식을 금하고 애도를 명했을 때 자네를 다시 보았어. 내 아버지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 정말로 대단하네.

  자네를 만나니 말이 길어졌네. 우리사이야 말이 없어도 서로가 다 아는 사인데. 구차한 부탁이고 사족(蛇足)이라고 믿네만 우리 후손들을 생각해주게. 자네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백성들이 가만있지 않을 걸세. 혹시 자네세력과 우리지파 사이에 한동안 왕권다툼이 있을지 모르네. 대세는 이미 자네편이니 피 흘리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게나. 자네가 본래 유능하고 명석하니 걱정은 하지 않네만 또 내가 할 말이 아니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끝까지 온전히 의지하는 거라네. 불쌍한 백성들을 한 번 더 부탁하네. 자네가 있어 정말 행복했네. 하늘에서 만나세. 이제 헤어지세. 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