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진정한 왕입니다.(아비새가 본 다윗)
나는 아비새다. 내 형은 요압이고 동생은 아사헬로 다 용감한 다윗군의 장수들이다. 다윗은 우리 어머니와 남매 사이다. 그러니까 나와 다윗은 삼촌과 조카 관계다. 다윗은 어머니의 막내 동생이고 나는 둘째 아들이라 나와 삼촌은 몇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윗이 장수가 되고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할 때부터 늘 함께해 왔다. 내가 본 다윗은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정이 많고 다방면에 재능이 출중하다. 상황판단이 정확하고 결정의 이유가 분명해서 그 설명을 들으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고 독선이나 고집이 없어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이 있다. 부하를 믿어주고 인정해 주어 최선을 다하게 하는 설명 못할 마력의 소유자다.
사울에게 쫓기며 그날의 식량이 없어도 주민에게 폐해가 될 일은 하지 않았고 부하들의 불만은 마음으로 접근하여 설득으로 풀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놀라워서 결정하기 어려운 순간은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불가능해 보여도 순종한다. 가끔은 마음이 뜨겁고 열정이 불같아 위험한 선택을 해도 곧 이성을 되찾고 철저히 회개한다. 자신도 위험한 형편에서 불리한 결과를 알면서도 그일라에 머무는 블레셋을 칠 때는 무척 신이 났었다. 본인이 겪는 위기의 순간에도 부모들을 안전한 모압 땅으로 모시는 극진함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두 번에 걸쳐 사울왕을 살려 준 것이었다. 그것이 군사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잘한 것인지는 우리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하나님 중심의 분명한 삶의 기준이 있다. 다윗을 제거한다는 오직 한 가지 목적으로(사울왕에게는 다른 이들은 관심도 없다) 십여 차례나 줄기차게 살해를 기도(企圖)하는 위험한 인물을 처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정당화할 수 있으며 백성들도 인정할 수 있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거듭 살려 줄 수 있는 배짱과 아량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지나친 자신감 곧 만용이 아니면 하나님중심의 신앙 둘 중 하나였다. 늘 가까이에서 다윗을 보아온 나에게는 사울왕과는 비할 수 없는 그릇의 차이요 신앙의 차이로 이미 다윗이 왕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다. 마음이 넓고 힘 있는 사람이 왕인 것인데 죽이려 하지만 못하는 이와 죽일 수 있는데 살려주는 이의 마음크기는 논할 여지가 없고 죽이려는 이와 살려주는 이 중 누가 강자인가는 너무도 분명하다.
사울은 민심도 읽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관심도 없다.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는 이들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과 왕의 권력에 기대어 이득을 보려 는 몇몇 모리배 외에는 없다. 권력에 눈먼 사울로부터 나라와 백성들이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왕의 죽음이다. 다윗진압작전을 수행하는 군인들도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윗은 첫 번째 사울왕을 살려주고 나서 우리에게 설명을 했다. 엔게디 광야 들염소 바위굴에서 단 몇 명만이라도 굴의 끝부분까지 수색을 했더라면 우리는 독안에 든 쥐와 같은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수천의 군사들을 동원한 작전에서 그러한 초보적인 실수는 귀찮고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려는 보신주의(補身主義)적 행동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으며 그것은 단 한 명의 장수도 진지하고 심각하게 작전에 임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다윗의 명쾌한 설명을 듣고 그 사건 이후로 우리는 사울왕이 전군이 아니라 모든 백성을 다 동원해 우리를 잡으러 온다고 해도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십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사울왕 진영에서의 상황도 다윗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확증해 준 사건이었다. 경계도 완전히 형식적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뚫을 수 있었고 지휘부를 경호하는 이들도 없고 왕에게 접근해도 누구 한사람 제지하는 이도 없고 외부인이 침입했다는 사실 자체를 아는 이도 없이 모두가 자고 있다는 것은 전쟁터에 있는 군사들이라고 할 수 없었다. 오합지졸(烏合之卒)도 그럴 수 없고 아이들이 하는 골목전쟁놀이도 그렇게 는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기가 완전히 저하되어 있고 전혀 의욕이 없는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다윗이 원하기만 했으면 오대 일이 아니라 백대 일의 싸움이라고 해도 우리가 반드시 승리했을 것이다.
다윗은 같은 백성들끼리의 싸움을 원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동족의 피해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윗은 사울왕의 마음도 꿰뚫고 있었다. 아무리 눈앞에서 잘못을 시인하고 죽이지 않겠다고 해도 수시로 마음이 달라지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왕임을 알아서 자신이 유대에 있는 한 성과 없는 출병이 되풀이되고 국력이 크게 허비될 것을 헤아려 쉽지 않지만 자신이 블레셋으로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윗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은 그 정도는 다 안다. 우리 몇몇은 알지만 나서지 않고 다윗의 결정을 존중하고 진심으로 따른다. 다윗은 사울과 비교할 수 없는 믿음직한 우리의 지도자고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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