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의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은 1,893권 888책. 필사본·인본. 정족산본과 태백산본 등이 일괄적으로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1997년에는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비록 지배층 위주의 관찬 기록이라는 한계성이 있지만,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자료가 되는 사적(史籍)으로 권질(卷秩)의 방대함과 아울러 조선시대의 정치·외교·군사·제도·법률·경제·산업·교통·통신·사회·풍속·천문·지리·음양·과학·의약·문학·음악·미술·공예·학문·사상·윤리·도덕·종교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어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귀중한 역사 기록물이다.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조선왕조실록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지만, 그 분량이 방대하고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접근할 수 없었다. 그 엄청난 양을 한권으로 줄인다는 것은 대단하면서 무모해 보인다. 나 같이 역사에 기본지식과 유전인자가 전혀 없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로 적당할 듯하다. 실록자체도 후대의 평가이며 승자의 기록이다. 한 왕의 치세만 해도 중요한 일들과 왕과 신하들의 갈등과 부침이 많았을 것이지만, 전체에서 인상 깊었던 몇 부분을 얘기해 보련다.
조선이 열리고 얼마 되지 않아 두 번에 걸쳐 왕자의 난을 겪는다. 그것은 초기만 아니라 또 어느 나라, 어느 정치형태에서든 권력을 향한 다툼은 치열하고 살벌하다. 친척, 형제, 부자간도 예외가 아니다. 승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른다는 점에서 한없이 비정하다. 권력뿐 아니라 이익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다툼이 생겨난다. 이 일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은 아예 초야에 몸을 묻는다.
조선을 통틀어 아니 우리 민족의 전체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자라 할 세종대왕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언어 천문 과학 경제 농업 의약 정치 음악 언어 국방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적으로 발전과 진보를 이루고 좋은 영향을 끼쳤다. 한글 하나만 하더라도 우리민족이 지속되는 한 그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세종이야말로 인류사의 천재이며 지도자의 본이 될 만한 분이다.
건국 후 백여 년이 흐르자 초기의 열정이 사라진다. 연산군의 등장과 함께 일어나는 사화는 근 50여 년 조선사회를 흔들어 놓는다. 훈구와 사림으로 또 붕당으로 이어지는 날카로운 대립은 정권과 관직의 수요와 공급의 심한 불균형에서 생겨났다고 볼 수도 있다. 조선사회의 양반 자제들에게 숙명 아니면 의무처럼 여겨진 것이 글공부였고 그 결과는 과거로 이어지고 정계와 관직의 진출로 귀결되었다. 지연(地緣)과 학연(學緣)으로 인맥(人脈)은 형성되고 적은 자리를 두고 각 계파는 대립하는 모양세가 되었다. 신하들의 사정이 이러할 때, 왕은 이들의 역학관계를 이용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신하들을 견제했다. 학맥과 명분을 따른 치열한 논쟁들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물의 소속을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을 듯하다.
두 차례의 큰 전쟁은 조선 사회에 변혁을 불러오고 평민들을 깨어나게 한다. 양반들의 무능을 확인하고 평민들이 일어나 어려움을 극복한다. 이로서 신분제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선조는 의주까지 피난을 가고 한양은 20일 만에 함락되고 만다. 병자호란 때에도 보름도 못 되어 청군(淸軍)이 한양에 진입하고 왕자들과 세자는 강화도로 피난을 가고 미처 강화도로 피하지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했다가 40여일 후에 삼전도의 굴욕을 겪는다. 오랑캐의 나라로 여기던 청과의 관계가 형제를 지나 군신의 관계로까지 나아간 것이다.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고 성리학적 대의명분만을 내세울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뼈저리게 체험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역사에 있어서 실학이 융성하고 민족적 각성이 고조되었을 때 그 흐름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지 못했음이 너무도 아쉽다. 그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면 우리의 쓰라린 역사를 겪지 않았을 것이고 아시아의 선도하는 국가로 일찍 발돋움할 수 있었으리라.
조선말의 외척과 세도정치는 인간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정에 기울고 원칙이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 어렵다. 스스로 바로 설 힘이 없을 때 위기는 비껴가지 않는다. 작은 위기에도 제대로 대처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나라가 어려운 순간은 그 여파는 서민들에게 가장 빠르고 직접적으로 미친다.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그들은 화산처럼 일어나 들불같이 번져간다. 서민들의 삶이 극도로 피폐해진 때마다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 같은 무리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지배층의 무능이 불러낸 이들이며 역사의 경고등이자 최대의 희생자들이다. 그 흐름은 홍경래와 전봉준을 통하여 이어져 간다.
삼국지에 보면 수뇌들이 어떤 일을 추진할 때면 책사들이 옛 역사를 들이대며 간언을 한다. 어제의 역사는 오늘을 비춰보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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