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조갑상의 《밤의 눈》

변두리1 2016. 10. 10. 00:23

조갑상의 밤의 눈

 

   전쟁의 비극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대진으로 설정된 지역의 민간인 학살사건그 중에서도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의 진실을 고발하는 소설이다. 우리의 현대사가 얼마나 고통으로 얼룩졌는지,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가족들에게 게다가 대를 이어 풀지 못한 한과 불이익이 지속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국가의 이름으로 잔인한 폭력이 행해질 수 있고 의도적으로 가려지기도 한다. 전투가 행해지는 전선에만 전쟁의 상흔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후방에서 자신들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이들에 의해 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전쟁에 대한 내 생각이 참으로 단순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전쟁은 주로 전선에서만 이루어지고 민간인들은 피난 가는 과정과 불편한 삶이 어려운 것이고 전쟁에 희생당한 군인들의 친인척들이 많아 비극적이라고 판단했다. 전쟁의 과정에서 실수로 민간인들이 희생당하고 폭격으로 건물이 무너지고 경제가 파탄 나니 국가발전이 몇 십 년 후퇴하고 남은 이들이 살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전쟁의 피해요 참상인줄 알았다.

   더 무서운 것은 전선 후방에 있는 내부의 또 다른 전쟁이었다. 내부의 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으로 혹은 집권세력과 성향이 다르다는 것으로 그것도 몇몇 인사들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된 비공식기구를 통해 합법적인 절차도 없이 많은 이들이 처형을 당했다는 것이 너무도 야만적이다.

   우리 민족 현대사의 맥락에서 보면 일제에 강력하게 맞서 독립운동을 하거나 일제하의 견딜 수 없는 폭압에 저항하던 이들이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집권세력에 대한 반발로 사회주의에 호의적이거나 공산주의의 이론에 동조했을 수 있다.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과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동경이 그들을 집권세력에 저항하거나 맞서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고 그들은 집권 행정과 치안, 군 세력에 밀려 죽임을 당하고 와해되거나 잔당으로 전전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들을 도와주거나 그들의 가족들은 요시찰 인물이 되고 통제의 대상이 되어 또 다시 억울한 일을 겪는다.

   반대로 늘 양지만을 택하여 살아가는 이들, 힘의 논리에 따라 집권층에 붙은 이들은 부귀와 안일과 권세를 대를 이어 누려왔다. 친일의 청산이 분명히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여전히 힘을 휘두르는 요직을 차지하고 숨었던 이들이 복귀했을 때, 광복의 햇살을 흐려지고 해방의 공기는 신선할 수 없었다. 미처 민주사회가 자리 잡기도 전에 전쟁이 발발하고 자유와 공산의 양 진영이 전반적인 밀고 밀리기를 반복하면서 민간인들이 양 진영사이에서 큰 희생을 치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용범 옥수한 민지태 한시명 옥구열 이들의 한 많은 삶을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그들의 가족들도 모멸과 무시와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희생자들의 누명을 벗겨주지 못하고 긴 세월을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장마속의 햇살처럼 순간으로 끝나버린 4 195 16의 막간의 세월, 그들이 너무도 간절히 기다려온 시절이었다. 마산에서 보게 된 침묵시위. 옥구열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대금지역민간인피학살자유족회를 꾸리고 결성식을 하고 유골을 수습하여 합동묘를 조성한다. 얼마나 후련했을까. 양 어깨를 긴 세월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벗는 느낌이었으리라. 다시 5 16이 터지고 그들은 죄인이 되어야 했다. 체포와 고문과 구금과 감시가 이루어졌다. 그들 자신뿐 아니라 자식 대()까지 그 한스런 멍에가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의 절망은 어느 정도였을까. 5 16 혁명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시월유신을 거쳐 영구집권으로 이어져 갔다. 절망의 세월이 한동안 이어지다 극한으로 치달아 부마사태가 일어난다.

   소설은 그 시점으로 끝나지만 그 해 시월 대통령 시해가 일어나고 민주화의 요구가 들불처럼 번지는 서울의 봄을 맞는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군부가 다시 집권하고 만다. 7년이 지나 학생들을 위시한 온 국민의 투쟁으로 쟁취한 대통령직선제로도 민주정부는 들어서지 못하고 또 다시 5년을 기다려야 했다. 1993년 마침내 고대하던 민주정부가 서고 나라는 한층 자유로워졌다. 그 장구한 세월, 반짝 시원한 바람이 불었던 4 19 혁명의 기운을 덮어버린 5 16 군사정변 이후로 32년 만이었고 보도연맹사건과 민간인 학살이 일어 난지 43년여의 기나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1910년의 나라를 잃은 때부터 계산하면 83, 무법한 깡패 같은 일제에 의해 계획적인 괴롭힘을 당하던 1876년 강화도조약부터 따지면 120여년의 세월이 된다. 우리의 현대사가 읽는 후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한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국민을 무시할 때 비극은 시작된다.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나라는 위기를 맞고 국민들은 불행을 피할 수 없다.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할 때,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 억울한 이들의 한이 풀리지 않으면 국민의 마음은 안으로부터 하나가 될 수 없다. 과거는 잊을 것이 아니라 철저히 밝혀내고 기록하여 거울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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