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변두리1 2016. 9. 28. 16:4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지은이 조세희(趙世熙)는 소설가로 경기도 가평군 출생하여 1963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1965년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경향신문신춘문예에 소설 <돛대 없는 장선(葬船)>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문단의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난장이 연작의 첫 작품인 <칼날>을 발표하면서부터다. 1976년 난장이 연작 <뫼비우스의 띠> <우주공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을 발표하였으며, 1977년 역시 난장이 연작 <육교 위에서> <궤도회전> <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등을 발표하였다. 1978<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를 이전의 난장이 연작과 함께 묶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작품집으로 출간하여, 문제작으로 주목받았다. 19786월 초판이 발행된 이래 19964100쇄를 돌파하기까지 18년간 40만 부가 팔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최인훈의 <광장>과 함께 우리 문단 사상 가장 오래도록 팔린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1979난장이 연작으로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열두 편의 연작소설로 되어있다. 난장이 김불이네 가정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들은 낙원구 행복동에서 사는데 철거되어야 할 지역이다. 난장이와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막내딸로 가족이 이루어지는데 모두가 쉬지 않고 일해도 생활이 쉽지 않다. 맏아들 영수는 고장 난 라디오로 방송통신고교 강의를 듣는다. 생활형편으로 학교를 그만둔 그들은 공장에 취직한다. 은강자동차, 은강전기, 은강방직. 직장생활은 힘겹고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지 않고 이윤을 제대로 배분해 주지 않는다.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의 이야기를 한지섭에게 전해 듣고, 난장이는 달나라에서 천문대 일을 하고 싶다는 환상을 품는다. 난장이는 벽돌공장 굴뚝에 올라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굴뚝 안으로 떨어져 죽는다. 그 사실은 밝혀지지 않다가 벽돌공장이 헐리면서 드러난다. 어쩌면 그는 그런 방법으로 달나라에 가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난장이의 딸인 영희는 철거민들의 입주권을 싸게 사서 많은 이득을 남기고 되파는 사나이를 따라 간다. 영희는 그에게서 입주권과 돈을 빼돌려 집을 확보하려 한다.

   전체 흐름의 주도적 인물인 맏아들 영수는 은강자동차에서 쫓겨나 다시 은강방직에 취직한다. 노동자교회에서 목사를 만나 노동운동을 배우고 과학자와 한지섭을 만나며 더욱 견고해진다. 현장에서 열다섯 개의 서클을 만들어 이끌며 전체를 배후에서 지휘한다.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회사 측의 횡포에 맞서다 그는 그룹회장을 살해하려다 회장과 닮은 계열사 사장을 칼로 살해한다. 재판정에서 변호인이 우발적이었음을 내세우려하나 의도적이었다고 진술한다.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죽는다.

   가장 두드러진 인물 중 하나가 한지섭이다. 유명대학 법대를 중퇴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노동현장에서 손가락 두 개를 잃으면서도 일만 년 후의 세계를 희망한다. 대단한 결과를 이루어내면서 노동자들과 함께 한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 후반은 노동자들의 피땀위에 산업계의 비약적인 발전과 고도성장을 이루어내던 시기다. 정부의 시정목표조차 경제성장에 맞추어지고 수출만이 살길처럼 여겨지던 때로 급격한 성장의 그늘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었다. 오래 지속된 독재의 관성이 각 부문에 퍼져있었고 국가는 그대로 커다란 하나의 병영이었다. 예민한 이들은 견디지 못해 소리쳤고 많은 이들은 무감각했다.

   사용주로 상징되는 지배층들은 정부의 합법적인 지지를 누렸다. 노사분규는 있어서는 안 되었고 대기업의 회장은 애국자들이었다. 근로기준법과 인권은 상징적인 표현일 뿐 실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디에서도 정의를 구하기는 힘겨웠다. 종교계도 정부의 방향에 순응할 뿐, 마땅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소수의 예언자적인 이들이 노동자편에 섰고 상황을 개선하려 몸부림쳤지만 결과는 늘 만족스럽지 못했다.

   위장취업과 제3자의 부당개입이 자주 문제되었다. 부당한 대우와 현실에 견디지 못한 이들은 생명을 다해 싸웠지만 언론, 정부, 사법 어느 하나도 그들의 편은 아니었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억압받는 약자가 하늘로 쏘아올린 그 작은 공은 무엇이었을까. 난장이가 이 땅을 떠나가 살려하던 달나라였던가. 어떤 지리적인 공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꼽추와 앉은뱅이가 마침내 확인한 반딧불이로 상징되는 자연이 살아있는 곳인가. 영희가 끝내 확보하려했던 자기 집이 있는 곳이었나. 그 시대로부터 40여년이 지났다. 우리사회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글속의 상황들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지섭이 읽던 그 일만 년이 지나지는 않았다.

   이제 우리사회에 절대 가난의 시대는 지나갔다. 그렇다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고 할 수도 없다. 이분법으로 확연히 나누어지는 세계가 아니라 사람뿐 아니라 자연도 온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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