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읽고

《자전거 도둑》을 읽고

변두리1 2016. 6. 3. 23:10

자전거 도둑을 읽고

 

   소설가 박완서가 쓴 동화다. 주인공인 수남은 청계천 세운상가 뒷길의 전기용품 도매상에서 일하는 점원으로 사람들은 그를 꼬마라고 부르며 툭하면 알밤을 먹이는데 그것이 수남을 귀여워하는 그들의 방식이다. 그는 시골에서 올라온 고등학생 정도 나이의 청소년으로 목소리가 굵어져 있다. 가게 주인이 자신을 아낀다는 것을 알고 몸을 사리지 않고 착하고 부지런히 일해 두세 사람 몫을 해낸다.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주인의 칭찬을 잊지 못하고 야학이라도 갈까하고 책도 뒤적이며 준비 중이다.

 

   어느 날 세찬 바람이 분다. 이웃가게의 간판이 떨어져 지나가던 아가씨가 다쳐 가게 주인은 치료비를 물어주고 많은 이들은 세찬 바람에 심란해 한다. 수남이 일하는 가게에 배달을 원하는 소매상의 주문이 들어와 수남은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간다. 주인아저씨의 조심하라는 부탁이 있어, 신경을 써도 어딘가 께름칙하다. 물건을 갖다 주어도 상인 특유의 행태를 보이며 수금을 잘 해주지 않는다. 수남도 그동안 겪어 익힌 감으로 기어이 기다려 대금을 받아낸다. 자전거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바람에 자전거가 넘어져 있어 일으켜 타고 떠나려 하니 소리를 치며 잡는 이가 있다. 강한 바람에 세워둔 자전거가 넘어져 차에 흠집을 남겼다는 것이다. 신사복을 입은 차의 주인은 수남을 동정하는 척하며 반반 손해 보자고 오천 원을 요구한다. 구경꾼들도 많이 모여 있는데 한 번 용서해 주기를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오히려 차의 주인은 운전기사에게 자물쇠를 사오게 하여 자전거를 잠그고 오천 원을 가져와 찾아가라고 하고 사라진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수남을 향해 몇몇은 도망가라고 부추긴다. 자신의 내부로부터 같은 욕망을 느낀 수남은 자전거를 번쩍 들고 쏜살같이 내달아 가게로 돌아온다.

 

   일의 내막을 전해들은 주인아저씨는 수남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치며 통쾌해하고 촌놈인줄 알았더니 제법이라며 오히려 칭찬을 한다. 그렇지만 수남은 주인아저씨에게 실망을 하고 자신이 느꼈던 짜릿한 쾌감의 정체를 괴로워하며 자신이 도둑질을 한 것이 아닌가를 돌아보게 된다. 고향의 바람은 게으른 나무를 흔들고, 잠든 뿌리를 깨우고, 생경한 꽃망울들을 피어나게 하며, 화창하고 아늑한 날을 만들고, 보리밭으로 물결치게 하지만 도시의 바람은 간판을 날리고 먼지와 쓰레기를 몰고 올 뿐이다.

   불현 듯 서울로 떠나올 때 병으로 누우셨던 아버지가 문지방을 잡고 일어나 앉으시며 띄엄띄엄 무슨 짓을 하든지 그저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 알았쟈.”하고 타이르시던 말씀이 생각나고, 형 수길이 돈 벌러 간다고 집을 나간 후 이 년이 지나 읍내 양품점에서 도둑질을 해 많은 것들을 사왔다가, 순경에게 붙잡혀 수갑을 차고 끌려가서 도둑질을 되풀이하던 장면을 몸서리치며 보던 걸 기억했다. 자전거를 들고 뛰던 순간의 짜릿한 쾌감을 회상하며 앞으로 자신이 도둑질을 할지도 모르고 형 같은 일이 자신과 무관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수남은 아버지가 그리웠다. 자신의 도둑질,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고 견제해줄 어른이 계셔야 하는데, 주인아저씨는 오히려 손해 보지 않은 것만 생각하고 오늘 운 텄다.”며 좋아했었다. 그렇게 말하던 주인아저씨의 누런 이가 똥색으로 보여 지기까지 했었다. 위험하다. 도시는 아버지가 그렇게 부탁하시던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자신을 붙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짐을 꾸렸다. 물결치는 보리밭을 그리며 내일도 바람이 불기를 바라면서 도시를 떠날 결심을 굳힌다. 그때 수남의 얼굴에서 누런 똥빛이 말끔히 가시고, 소년다운 청순함이 빛난다.

 

   동화는 수남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고향은 아버지가 계신 곳이고 아버지는 자식이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을 방치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들의 고향이 예전과 같지는 않으리라. 지역민들의 관계가 살아있는 마을공동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외형적으로도 마음속의 고향 같은 곳은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시골에서 올라간 청소년들이,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도시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자연이 차단되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콘크리트 바닥 같은, 생명이 움트지 못하는 곳에서 벗어나 바람과 햇살과 풀과 나무들이 반가이 맞아주고 그들과 몸으로 부딪치는, 도시의 반대편에 있는 시골에서 살아볼 일이다. 우리 삶에 돈으로 해결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귀한 것들이 아직도 무수히 존재한다. 그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 마음의 본바탕이다. 자연의 가르침을 받고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속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등바등 경제적 이익을 따라 살아가는 것에 비해 손색이 없는 삶일 수 있다.

   돈에 물들지 않는 순수한 마음을 지켜가는 것이 동심을 잃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는 한 방편일지도 모른다. 어른이기를 포기하면 철저히 어린 아이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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