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에게 드리는 감사(진실을 알게 된 야곱)
오전과 오후가 분주하게 지나갔다. 성공한 아들의 초청으로 이집트로 가겠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모인 중에 발표했었다. 아침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헐값에 사려고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 시간을 끌거나 사람을 가릴 일도 아니어서 웬만하면 순서대로 원하는 것들을 허락해주었다. 내 마음이 급하고, 잘되어 가는 일이니 인심을 후하게 썼다. 중요하거나 값나가는 것들은 거의 다 주인이 정해졌다. 정 급하면 나머지 것들은 그냥 놓고 가도 크게 문제가 되거나 아쉬울 것들은 없었다. 여러 아들들 형편도 나와 크게 다를 것 없이 분주하리라 생각되었다.
해거름에 맏이와 넷째가 내게로 왔다. 요셉에 관해 듣고 싶은 이야기가 끝이 없으니 나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거동이 이상했다. 전혀 즐거운 표정이 없이 무언가 거북하고 힘든 듯 했다. 따듯하게 그들을 맞았다. 맏이는 주저주저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꼭 드려야할 말씀이 있다고 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내가 긴장되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얘기가 무엇일까. 혹시 요셉에 관한 일들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인가. 그것은 물릴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요셉에 관한 것이냐?” 그들은 순간 서로를 바라보며 움찔 놀라더니 그렇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세를 고치며 해보라고 했다. 맏이와 넷째는 밑도 끝도 없이 죄송하다며 내게 용서를 구했다. 이 저녁에 사실대로 털어놓지 않을 수가 없어서 형제들을 대표해서 자신들이 왔단다.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걱정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충격은 더 컸다. 둘의 말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22년 전 요셉이 그들에게 왔을 때 형제들이 요셉에 대한 시기심에서 혼을 내 주고 싶었단다. 채색 옷을 벗기고 물 없는 구덩이에 넣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캐러밴들이 그곳을 지나는 것을 보고,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며 그들에게 넘겼다고 한다. 내게는 그대로 말할 수 없어 채색 옷에 염소피를 묻혀 오던 길에서 발견했다고 하자고 말을 맞춘 것이란다. 하지만 단순한 일이 아니어서 그 옷을 발견한 곳으로 다시 갈 때에도 사실을 얘기할 수 없었고, 그토록 상심하며 슬퍼하실 때에도 진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단다. 아무 일이 없었으면 무덤까지 비밀을 가져가려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집트로 가면 분명히 요셉에게 물으실 것이고 마음의 준비 없이 요셉에게 들으시면 너무 큰 충격을 받으실 것 같아서 형제들이 상의 끝에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었다. 덧붙이기를 자신들도 그동안 많이 괴로웠고,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모두가 그 일에 대한 벌이라 여겼다고 했다. 한두 해가 지나니 아무는 상처를 새삼스레 헤집는 것 같았고 여러 번 형제들이 상의했지만 사실 자체가 거북하고, 내가 더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미룬 것이 이렇게 되었단다.
정신이 아득하고 하늘땅이 빙글빙글 마구 도는 것 같았다. 어안이 벙벙할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찌 내 아들들이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저 아이들이 하나님을 알기는 하는가. 자신들의 어린 동생에게 그토록 가혹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인가. 혼을 낼 수는 있지만 어찌 물 없는 구덩이에 넣을 수 있을까. 그곳에 갇혀서 얼마나 살려달라고 호소했을까. 더구나 동생을 외국 상인들에게 파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것은 외국으로 팔려가 평생을 노예로 사는 것인데 남에게도 할 수 없는 일을 동생에게 했다는 것인가. 상인들에게 팔려 끌려가면서 얼마나 애타게 구해달라고 소리쳤을까. 멀어져가며 그가 겪었을 절망을 생각하니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인 양 가슴이 너무 아팠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내가 그동안 그렇게 슬퍼하는 것을 보면서 열이나 되는 녀석들 중에 하나도 내게 귀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곧이곧대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요셉이 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라고만이라도 얘기하는 아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 말을 들으니 아이들이 다시 보였다. 무섭다. 너무나 무섭다. 저 아이들이 어떤 일인들 하지 못할까. 이제까지 내 아이들은 믿을 수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20년이 더 지난 일이지만 그들은 이야기를 끝내고도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듣는 중에 눈물이 흘렀다. 어디서부터 눈물이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닦을 생각도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내 감정을 추스르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들에게 이집트에서 본 요셉은 어떻더냐고 물었다. 잠시 서로를 보더니 처음에는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휘황한 복식과 절차로 가까이 가볼 수도 없었는데, 요셉이 자신을 밝히고 가까이 오라고 한 후에 보니 헤어질 때 얼굴이 남아있더란다. 온 이집트인들이 우러르고 존경하는 위치에 있으니 경호하는 이들과 섬기는 이들이 엄청났다고 했다. 두 아이에게 좋게 말할 수 없었다. 그냥 돌아가서 조속히 떠날 준비를 서두르라고 했다. 그들은 들어올 때와는 달리 속이 다 후련하다는 듯 가벼워진 표정으로 돌아갔다. 최근에 품고 있었던 한 가지 의혹이 풀린 셈이다. 적어도 그 아이가 사나운 짐승에게 찢긴 것은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어떤 경로를 거쳐 대국 이집트의 총리자리에 오른 것일까.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다니 더욱 염려가 된다. 외국인으로서 그것도 팔려온 노예출신으로 얼마나 어려움이 많을까. 자신의 편이 되어줄 그 어떤 이들이라도 있었을까.
결국은 그분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그분이 아니면 누구도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사람들의 실수도 그분의 손길이 닿으면 아름다운 기회가 된다. 저 아이들이 요셉을 상인들에게 팔았지만 그분은 그렇게 해서 그 아이를 이집트로 데려가셨고 필요한 과정들을 거쳐 총리로 쓰시는 것이다. 가서 보리라. 만나리라. 내가 그 아이 어미에게 했던 약속이 그분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으로 지켜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 최선으로 바뀌었다. 속히 내려가, 그 아이가 찾아와 자신의 지난 일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의지처가 되리라. 지난 일들을 잊고 다시 형제로서 서로 도와주고 살아가는 새 출발의 계기를 삼게 하리라. 나는 원망하고 이해하지 못해도 그분은 성실히 자신의 할 일을 하고 계신다. 오늘은 억지로라도 깊은 잠을 자 두어야겠다. 먼 길을 가려면 건강해야 한단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 가문이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을 지켜주세요,” 그분을 향한 감사와 간구가 내 입을 통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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