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야곱

내가 가서 보리라(야곱: 요셉의 소식을 듣고)

변두리1 2016. 5. 19. 00:28

내가 가서 보리라(야곱: 요셉의 소식을 듣고)

 

   저녁 즈음 갑자기 바깥이 시끌벅적했다. 소리가 유쾌하고 왁자하다. 이집트로 갔던 아이들이 돌아온 모양이다. 방안에 있어도 내 모든 신경이 그들에게 쏠려있으니 지체하지 않고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아들들의 얼굴이 밝다. 표정만 보아도 모든 일이 잘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눈은 그들 속에서 막내를 더듬어 찾고 있었다. 있었다. 그리고 인질로 잡혀있던 아이도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우리가 돌아왔습니다. 모든 일이 아주 잘 되었습니다.” 씩씩하고 자신감에 찬 맏아들의 목소리였다. 내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오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들이 새어나왔다. 막내와 눈을 맞추고 한동안 못 보았던 아이를 끌어안고 고생했다고 위로했다.

 

   아들들이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흥분된 얼굴로 서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며느리들과 손자 손녀들이 오고 동네 사람들도 적지 않게 모여들고 있었다. 이런 날은 우리 집 넓은 마당이 좁다. 발개진 얼굴에 들뜬 목소리로 맏이가 요셉이 아직 살아있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고 내게 말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들은 줄 알았다. 아이들은 일제히 내게 마당에 들어와 있는 나귀 스무 필을 가리켰다. 그 나귀위에는 이집트의 아름다운 물품들과 곡식과 떡들이 실려 있었다. 요셉이 내게 보내준 선물들이란다. 영문을 모르는 내게 아이들은 자기들도 어떻게 된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총리라는 사람이 요셉인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우리 집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어린 시절 기억도 분명하다고 했다. 나는 머릿속이 어지럽고 땅이 도는 듯 했다. 눈을 떠 보니 내가 졸도했었다고 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나를 둘러싸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절로 힘이 났다.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니 아이들이 수레를 내 앞으로 가져왔다. 온 가문을 이끌고 이집트로 오라고 부탁하면서 내가 타고 갈 수레를 보낸 것이란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화려하고 품격이 있어보였다.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것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오늘의 상황을 설명할 방도가 어디에도 없다. 아이들이 가지고 간 돈을 다해도 수레 하나를 살 수 없으리라. 또 그런 수레는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무슨 수로 나귀를 스무 마리나 사오며 온갖 진귀한 물건을 가득가득 실어올 수 있단 말인가. 인질로 잡혀있던 아이가 돌아오고 막내도 무사히 함께 왔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그렇다고 얘기하지 않는가. 내 아들, 우리 막내가 살아있을 뿐 아니라 대국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서 나를 잘 모시겠다고 초대를 하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총리가 아니라 어느 집에 노예라고 해도 찾아가고, 살아있다고만 해도 세상 끝까지라도 맨발에 걸어서라도 갈 것이다. 내가 가서 내 눈으로 보고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스물두 해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를 물어보리라. 그 아이가 총명하고 지혜로워서 좋은 수레와 많은 선물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보아야 이 사실이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것을 내가 믿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가능한대로 빠르게 이곳을 정리하고 다시 그곳으로 갈 것인데 그렇게 많은 것들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자신의 처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이집트인들에게 우리 가문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에 틀림없다. 온 동네 사람들과 가문의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서 이곳의 모든 것들을 조속히 정리해서 요셉이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니 모두 준비하라고 일렀다. 알 수 없는 흥분과 열기로 언제까지나 마당에 머물 것 같은 이들에게 다들 돌아가서 일단은 쉬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까지도 걱정에 싸여 있었는데 한순간에 모든 것이 풀어지고 즐거움이 온 가문에 넘치고 있다. 어제는 걱정으로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오늘은 설렘과 기대로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밤이 깊어 자리에 누워도 정신은 또렷하다. 마당으로부터 나귀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쉬 그치지 않는다. 다른 이들도 깨어있는지 뒷간을 들락거리는 기척이 자주 들린다. 내 인생의 네 번째 장면이 펼쳐지려 하고 있다. 칠십이 넘도록 살아온 헤브론, 이십 년을 살았던 하란, 다시 돌아와 삼십 년 넘게 터 잡아온 가나안 그리고 나이 백 서른에 펼쳐질 찬란한 이집트. 그동안 지나고 보면 모두가 그분의 은총이었지만 고향 집을 떠난 후로는 힘든 일도 많았었다. 하란에서 열 번이나 계약을 변경당하면서 장인에게 어려움을 겪었고,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에는 길르앗 산에서 너무도 긴장되는 순간이 있었다. 세겜에서 있었던 아찔한 일도 잊을 수 없다. 형과의 재회도 극적이었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기도 하고 아들 요셉이 사나운 짐승에게 잃었다고 생각하고 스물두 해를 살아오기도 했다. 이 땅에서 정리할 것들을 가능하면 원만하게 처분하고 싶다. 이 동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왔던 것도 있지만 잘되어서 좋은 일로 간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날이 밝으면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먼저 이야기를 해 보아야 하겠다. 어쩌면 그들이 먼저 요청을 할지도 모른다. 빨리 요셉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