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야곱

내 너를 따라 가리라(야곱 : 요셉의 흉사를 듣고)

변두리1 2016. 5. 16. 13:15

내 너를 따라 가리라(야곱 : 요셉의 흉사를 듣고)

 

   어제 오후에 양을 치던 아들들이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어딘가 낯설었다. 한 순간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누군가 주저하면서 물건 하나를 내 앞에 내밀었다. 오다가 들판에서 주운 것인데 요셉 것인지 몰라서 가져왔다고 했다. 놀라움에 그것을 펼쳐 보았다. 아들 요셉의 옷이 틀림없었다. 며칠 전 요셉에게 입혀 심부름 보냈던 바로 그 옷이 피가 배고 찢기어 눈앞에 놓여있었다. 무슨 일인가.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들들은 쭈뼛댈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그 상황이 파악되었다. 내 아들 요셉이 죽었을지 모른다, 아니 죽었을 것이다, 죽은 것이 틀림없다는 판단이 연이어 내 안에서 내려지고 있었다. 내 앞의 아들들은 그것을 이미 알고서 애매하고 주저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들들에게 그 옷을 발견한 경위를 자세히 물었다. 그들은 세겜에서 벧엘로 오는 길에서 그 옷을 보고 그냥 지나치려다가 요셉 옷일지 모른다고 누군가 말을 해서 유심히 살펴보다가 부친께 가져오게 되었다고 했다. 주변에 어떤 흔적이 없었느냐고 물었지만 기억나지 않는단다.

   그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옷을 주웠다는 곳을 다녀왔다. 오후 내내 그 일만 했지만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형들에게 다녀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는데 정작 형들은 돌아오고 요셉은 흔적이 없고 그의 옷만 피에 얼룩지고 심하게 찢기어 돌아온 것이다. 맹수에 찢기어 죽임을 당했음이 분명하다.

   종들을 보내든지 아니면 내가 갔어야 하는 것인데 큰 잘못을 저질렀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 아이가 눈앞에서 맹수와 맞닥뜨렸을 때의 공포가 내게 전해져 왔다. 어쩔 줄 모르고 두려움에 아버지를 부르다 사나운 짐승에게 물리고 살점이 뜯기고 피가 흐르고 고통 속에 정신을 잃고 숨이 끊겼을 장면이 떠올라 견딜 수 없었다. 어떤 짐승을 만나 다른 옷가지 흔적 하나 없고 뼈하나 남지 않았단 말인가. 이 흉측하고 끔찍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동생을 낳다가 죽어 베들레헴 근처에 묻은 그 아이의 어미를 장시지낼 때 내가 했던 맹세가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그녀가 낳은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을 온 힘을 다해 사랑과 정성으로 훌륭하게 키우겠다고 했는데, 그 아이가 맹수에게 찢겨 죽임을 당했다니 저승에서라도 그녀를 무슨 얼굴로 볼 것인가. 그녀가 그 아이를 얼마나 애지중지 했던가가 떠오른다. 나는 또 그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의지했던가. 그 아이가 없는 내 삶이 무슨 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인가. 차라리 내가 지금이라도 죽어서 그 아이를 찾아가고 라헬을 만나서 용서야 받을 수 없겠지만 잘못을 비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그 아이 어미에게 생각이 미치자 내 속 깊은 곳으로부터 나도 모르게 통곡이 터져 나왔다. 내 자신이 억제할 수 없었고 주변에서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통곡과 눈물과 사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어느덧 아들들과 아내와 이웃들이 모여들어 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미 내 행동은 나와 무관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정신을 차려보니 안방에 눕혀져 있고 아내가 근심스레 주시하고 있었다. 이웃들은 모두 돌아갔고 아이들도 그들의 거처에서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아내가 무언가 걱정스레  얘기하려는 것을 제지했다.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으니 그냥 자자고 했다. 아내는 옆에서 잠이 든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 질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눈앞에 그 아이가 갔을 뙤약볕 긴 길이 펼쳐진다. 그 살 떨리는 일을 당했을 곳까지 이백여리 가까운 길을 아무 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콧노래 부르며 갔을 것이다.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다. 그 아이가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 너무도 답답하다. 일어나 앉아 생각에 잠긴다.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갑자기 바보가 된 것 같다. 양들을 돌보는 일도 종들에게 맡긴 일들도 생각나지 않는다. 방을 나와 집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어둠이 짙고 사방은 적막할 뿐이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설핏 짐이 들었었나 보다. 새벽녘에 꿈을 꾸었다. 그렇게 보고 싶어도 나타나지 않던 라헬이 슬프고 엄한 얼굴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표정의 싸늘함과 책망하는 듯한 눈초리가 떠나가지 않는다. 이어진 꿈에서는 맹수를 만나 쩔쩔매는 요셉을 보았다. 필사적으로 이리저리 피하다 발을 물리고 팔을 물리고 아버지를 부르며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내가 달려들었지만 요셉은 이미 생명을 잃은 후였고 맹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사라지고 있었다.

 

   날이 밝은 후에도 아무도 내 방으로 오지 않는다. 모두의 눈과 귀가 내게로 쏠려 있을 텐데 겉으로는 너무도 평온하고 고요하다. 옆에서 누워 자던 아내마저 곁에 없다. 배가 고프다. 아이가 죽었는데 내 자신이 싫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