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장례에(야곱의 회상)
며칠 전 헤브론의 아버지 집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올해 180세 이신 아버지께서 위중하시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꼭 필요한 일을 처리하고 서둘러 왔다. 최근 들어 아버지는 건강이 극도로 좋지 않으셨다. 눈도 거의 보이지 않고 청력도 약하셨다. 우리를 거의 알아보지 못하고 정신도 오락가락하셨다. 내가 하란으로 갈 즈음에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하셨는데 그 후로 사십년하고도 삼년이 더 되었다. 그래도 살아계실 때 자주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일 년에 두세 번 찾아뵙는 게 고작이었다. 모두가 이번은 쉽게 넘기시기 어려우리라고 생각했다.
형은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우리는 의례적이고 일상적인 말 몇 마디를 나누고 침묵했다. 아버지의 임종을 위한 준비는 꽤 오래전부터 마무리 되어 있었다. 위독하다는 일이 여러 번 거듭되다 보니 웬만한 준비는 말할 것도 없고 크게 놀라지도 않는 눈치들이다. 모두가 서로를 챙겨 올 사람들이 다 왔는지 점검했다. 내가 도착한 이튿날 저녁에 우리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는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우리는 눈시울을 붉히고 잠시 회한에 잠겼다. 일사분란하게 장례준비에 들어갔다.
나는 아버지의 방에서 잠시 벗어나 지난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아버지는 마흔에 어머니와 결혼하여 스무 해를 자식을 낳지 못하다가 예순에 형과 나를 쌍둥이로 두었다. 그러고는 그만이었다. 그 스무 해 동안 어머니와 아버지가 겪었을 고통과 압력을 짐작해 보는 일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했다. 조부모님 대에도 노령이 되도록 자녀가 없었다. 이 손이 귀한 가문이 내 대에 와서나마 자녀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뭔가 가문에 크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해낸 듯한 기분이다. 본인들도 마음이 자주 흔들렸을 테고 주변에서도 자녀를 둘 방도를 찾아보라고 은근히 독촉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가문의 어른들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생각하니, 아버지가 태어났을 때에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되었을 것이고 많은 기대를 받았으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할아버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모리아 산에서 제단에 바쳤다. 그 아들을 바치는 할아버지나, 다 성장한 청년의 몸으로 그 일을 받아들이는 아버지나 대단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우리 가문과 하나님의 관계를 강조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비하면 조용한 일생을 사신 셈이다. 모든 면에서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려하셨다. 형이 사냥에 마음을 쏟고 밖으로 돌면서 집안일을 소홀히 할 때 크게 걱정하시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내가 하란으로 가는 빌미가 되었던 축복기도를 어머니나 나의 욕심에 따라 아버지가 속아서 내게 해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내가 형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아셨을 것이다. 옷차림을 속일 수는 있어도 목소리를 위장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더구나 그 때에 나는 긴장과 두려움으로 덜덜 떨고 있었다. 아버지는“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라고 그때 말씀하셨다.
내가 하란에 가서 지내던 20년 동안 부모님들은 어떻게 지내셨을까. 내 아이들이 여럿이니 그분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특히 요셉과 베냐민을 생각해 보면 너무도 확실하다. 요셉이 내 곁을 떠난 것이 열두 해가 지났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 아이를 잊어본 적이 없다. 그 20년 동안에 그분들도 한시도 나를 잊을 수 없으셨으리라.
이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생명보다 귀하게 간직해온 믿음을 지키는 일이 내 몫이 되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냐민을 바치라 하시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베냐민은 그 상황이라면 내 행동을 이해하고 나를 신뢰해 줄까. 우리 집안의 믿음전수를 위해 더 마음을 써야겠다.
누가 아버지의 부음을 알렸는지, 아니면 우리의 울음을 들었는지 동네 사람 몇이 우리 집을 향해 오고 있다. 그들 눈에 띄지 않게 친척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긴다. 사람들은 이제 확인수준이 되어버린 장례이야기들을 긴장감 없이 주고받고 있다. 어느 새 여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기까지 마을 사람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가 한 가족이요 삶의 공동체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공동체의 구성원, 이웃을 떠나보내는 의식을 아픈 마음으로 치르게 되리라. 밤이 깊어 가면서 조문객들이 더욱 늘어난다. 내 친구들도 적지 않다. 많은 이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고는 내게로 와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다.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보다 최근의 내 생활을 더 많이 이야기한 것 같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내외가 쉬시는 마므레 굴에서 그분들을 만나고 침묵으로 영원의 세월을 함께 하실 것이다. 베들레헴에 묻고 온 아내 라헬이 그리움으로 사무쳐 온다. 사람들은 오고가고 집 안팎으로 불 밝혀 왁자지껄 하는데, 아버지가 그중에 안계심이 슬프고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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