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받을 용기』를 읽고
-아들러의 용기의 심리학-
“미움 받을 용기”, 책 제목부터 강렬하다. 누가 미움 받기를 즐거워할까. 원하지 않는 일을 하려니 용기가 필요하다.‘미움 받는’것의 반대는 ‘칭찬받는’,‘인정받는’,‘사랑받는’것이다. 저자는 남들로부터 칭찬, 인정, 사랑을 받으려 할 때 삶의 기준이 남이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극히 수동적이고 불안하다. 그 기준이 일정한 것도 아니며 조금씩 다 다르니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 힘들고 불가능한 삶을 살려 하기보다 자신의 기준을 세워 살아가는 게 필요하다. 그것이 주체적인 삶이요 행복한 삶이다. 남에게 인정 칭찬 사랑을 받으려는 삶이 이기적인 이유는 그들에게서‘나에 대한(긍정적인)’ 평가만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열등감’은 주관적인 해석이다.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반적 시각으로 열등감일 수 있는 것이 관점을 달리하면 장점이 될 수 있다. 작은 키를 열등감으로 여겼던 이에게 친구는 그것은 다른 이를 편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에 키가 크고 우락부락해서 남에게 위압감을 주는 것보다 키가 작아 경계심을 풀고 편안함을 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가치전환을 한다. 열등감은 비교의식과 경쟁에서 온다. 그것들은 열등감 아니면 우월의식을 주는데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경쟁적으로 보면 모두가 ‘나의 적’이다. 그러나 경쟁의식을 버리면‘친구들’이다. 이 열등감을 뒤집으면‘과시’와‘우월성 추구’, 혹은‘불행자랑’으로 나타난다. 경쟁에서 벗어나면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을 수용하고 나아가 타인을 신뢰하며 그들에게 공헌하는 삶이 건강한 삶이다. 이것을‘자립과 조화’라고 한다. 그것을 이루는 삶의 기본적 자세가‘내게는 능력이 있다.’,‘다른 사람들은 내 친구들이다.’라는 확인이다.
이 책을 읽는 어느 순간부터 공자의‘극기복례’가 생각나더니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지속되었다.‘극기복례’는 스스로를 바로 세우고 자신을 넘어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에 들어간다는 뜻이니, 자립하여 사회와 조화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 단계에 이르는 길이 자기를 알고 계발하는 자기수용과 타인을 인정하고 믿어주는 타인신뢰 그리고 그들과 자신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의 공헌이다. 이것을 유교적 표현으로 바꾸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된다. 이 말은 나폴레옹처럼 되어서 세상에 군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닦아서 공동체를 이롭게 하겠다는 희생과 섬김의 선언이다.
저자는 모든 고민의 근원이 인간관계라고 규정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원칙으로‘과제분리’를 제시한다. 자신의 일과 타인의 일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영화 제작자를 예로 든다면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의 몫이고 그에 대한 평가는 관객의 몫인 셈이다. 곧 자신의 할 일을 했다면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녀를 비롯한 인간관계에 있어서 칭찬이나 야단을 치지 말라고 한다. 그러한 것은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으로 본인이 결정하고 실행하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후원할 수는 있지만 상대를 조종하려는 칭찬과 야단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칭찬이나 야단은 상벌에 길들게 하고 그런 보상이 없으면 스스로 하려는 동기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칭찬과 야단은 상하관계 곧 수직적 언어다. 우월한 위치가 아니면 칭찬이나 야단은 할 수 없다. 대등한 인격체라면 수평적 관계와 수평적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서로 바로서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길이다.
인생은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줄로 연결된 선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독립된 점들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과거가‘지금 여기’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라는 거다. 인생을 선적인 것으로 보아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에 목적을 두면 그것을 이루는 이가 드물고,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대부분 실패인 셈이다. 등산이 정상에 서는 것이 목표라면 그 짧은 순간 외에는 의미가 없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삶은 언제 막을 내릴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정상에 오른 후의 삶은 사족에 지나지 않는가. 하지만 등산 그 자체가 목표가 되고 즐거움이 되면 정상에 오르지 못해도 가고 오는 모든 과정이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마치 ‘인생의 기쁨은 대학에 가서 누리고 지금은 그저 공부만 하라’는 식의 학생들을 향한 ‘인생의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거다. 대학에 가도 또 취직이 있고, 결혼 승진 등 과제는 죽을 때까지 끝이 없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를 춤추듯이 살라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한 발을 내딛는 용기’가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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