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문화

맨송맨송한 성탄절

변두리1 2015. 12. 27. 18:24

맨송맨송한 성탄절

 

  2015년의 성탄절이 지나갔다. 뭔가 빠진 것처럼 허전하다. 눈도 내리지 않고 날씨도 포근한 채로 들뜬 분위기 없이 차분하게 지나간 성탄절이 서운하다. 늘 차분하고 경건한 성탄절을 보내자고 주변에 말해왔으니 잘된 것 같은데 서운한 것은 왜일까. 한마디로 성탄절 같지 않은 우리사회가 기독교계에 어떤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2000년대가 되기 전에는 성탄절이 되면 교회는 조용한데 오히려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이 기분을 낸다고 생각했었다. 마치 교회의 명절이 아니라 백화점과 시장사람들의 대목 같았다. 12월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성탄장식을 하고 캐럴을 울렸다. 성탄카드를 파는 이들도 여기저기에 등장했었다. 성탄절에 주인공인 예수님은 어디로 가고 산타크로스와 루돌프만 판을 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 북새통에도 교회에서는 어린이들을 필두로 발표회를 준비하고 각 기관들은 밤을 새우며 추억을 쌓고 선물을 준비하여 교환하곤 했다. 성탄전날 밤에는 통금이 해제되고 각 교회들은 새벽 찬양을 하며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셨음을 알렸다.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에게 성탄의 계절은 언제나 바쁘고 피곤했었다. 성탄전날 밤을 새우고 정작 성탄예배에서는 꾸벅꾸벅 졸거나 아예 잠들어 예배를 드리지 못하기도 했다.

 

  이러한 풍속도가 주거형태의 변화와 개인주의의 확산을 타고 급격히 바뀌더니 이제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에는 예수님은 없고 캐럴만 넘치는 계절이더니 이제는 캐럴도 듣기가 어렵다. 12월이 되면 곧바로 쏟아지던 캐럴이 올해는 20일이 넘어서야 그것도 간간히 들려올 뿐이었다. 교회에서 아이들이 사라져 간 것이 언제였던가. 그 빼곡하게 모여들던 성탄절에도 아이들은 교회로 오지 않는다. 교회학교가 줄어들고 그 자체가 없는 교회가 늘어난다. 성탄절에 교회가 소란스럽지 않다. 성탄절 새벽이 되었는데도 찬양이 울려 퍼지지 않는다. 이런 이상 징후가 성탄절에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알게 모르게 어떤 시대적 질병처럼 우리사회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예민한 이들은 그 증상을 자각하고 소리도 지르고 호소도 했다. 그러나 시대의 격랑에 밀리고 먹고 사는 문제에 치여서 그래서 어떡하라고식의 반응이 돌아올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다수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느낄 만큼 상황이 심화되었다.

 

  교회는 저녁시간을 스스로 세상에 내 주었다. 그 많던 교회의 저녁모임들이 사라졌다. 수요예배와 구역모임, 금요철야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주일모임의 형태가 하루 종일 교회서 지내던 모습에서 오전예배를 마치고 함께 점심을 먹고 성경공부를 하고는 주일모임을 마치는 것으로 자리 잡아간다. 처음의 의도야 집이 먼 분들에 대한 배려도 있고 다시 모이는 것보다 참여율이 높기도 하여 애찬을 나누며 더 친밀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려는데 있었을 것이다. 이런 모임을 몇 차례 가져보니 오후시간이 홀가분하고 여유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들은 주변에 이런 형태를 이야기하고 시대에 앞서가는 것인 듯 유행처럼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마치 오랫동안 어디론가 사라졌던 시간들이 다시 찾아와준 기분이었다. 성도들도 목회자도 모두 좋아했고 교회생활이 좀 더 여유로워진 것 같았다. 주일날 오후에 모이는 그리스도인 모임도 여럿 생겨나기도 했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자 예상치 않았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교회 일에 쏟던 열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 있었다. 홀가분한 주일저녁 탓인지 바빠진 세상 때문인지 세상이 저녁 시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성도들을 향한 교회의 힘이 약해진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생활을 함께 하던 교회가 이제는 일주일의 지극히 적은 부분을 공유할 뿐이다. 성도들을 유혹하는 것들은 너무도 빠르게 늘어났고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교회와 함께 하던 삶의 중요한 매듭들을 이제는 세상과 함께 한다. 결혼식은 웨딩홀에서 장례식은 장례식장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몸이 아프면 머뭇거림 없이 병원이나 약국으로 향한다.

  거의 모든 이들이 많은 시간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산다. 교회는 핸드폰과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이제 성도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를 제공하면서 여유를 부리며 게임이 끝났음을 즐기고 있다.

 

  교회와 교회문화를 추월하여 저만치 앞서가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세상은 앞서가는 것들을 따라간다. 성도들도 세상과 그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뒤처져 있지만 교회니까 따라오라고 설득해서 될 일이 아니다. 현실을 분석하고 정확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문제는 영향력이 있는 이들은 이 상황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들에게는 조금 늦게 이 상황이 나타난다. 시간은 많지 않고 문제는 심각하다. 마치 응급실에서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는 환자를 보는 느낌이다. 맨송맨송한 성탄절에 교회의 심각한 위기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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