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중간점검
살아온 날들이 적지 않다. 한두 세대만 앞서 살았어도 노인으로 여겨질 나이다. 남은 날들이 얼마나 될지 몰라도 반 이상을 산 것은 분명하다. 예전 사람들은 채 사십을 못 산 이들도 자기 분야에 일가를 이루고 빼어난 작품과 책들을 남기곤 했다. 오늘날보다도 훨씬 열악한 시대에 어떻게 그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그들의 삶의 바탕과 생활문화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선인들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이들도 대단하기는 마찬가지다.
남들과 비교해 이로울 것이 없으니 내 스스로 돌아보고 앞날을 위한 자극으로 삼을 일이다. 가난한 가정에 막내로 태어나 청년 때까지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부모님과 형제들의 사랑과 인정 속에 학교교육을 오랫동안 받으며 자랐다. 결혼하여 세 딸을 낳고 여러모로 그들은 독립할 나이가 되었다. 이 험한 세상에 이 정도라도 가정을 유지하고 있으니 내 비록 경제적으로는 무능하지만 비난받을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정이 오늘까지 지탱되어 온 바탕에는 아내의 수고와 노력이 컸다.
이 나이가 되도록 큰 수술 한번 없이 건강하게 살아온 것도 다행스런 일이다. 몸에 속한 여러 부분의 기능을 부실하게 가지고 태어났다. 그것을 늘어놓자면 한참 걸릴 것이다. 이미 결정된 것을 어쩌랴. 그 나마라도 잘 간수하고 조심하며 살아갈 밖에. 수십 년 해오던 탁구를 최근 들어 쉬고 있다. 우선순위를 조정해서 규칙적으로 지속해야 하는데 여전히 숙제다.
예 ․ 체능 면에서의 재능이 거의 없어서 민망할 때가 적지 않다. 가능하면 그런 자리에 가지 않으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는 정말 난감하다. 나를 잘 모르는 이들은 남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고 지나치게 몸을 사린다고 하지만 전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고역이다.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데 아직은 그것이 쉽지 않다. 할 줄 아는 운동도 없었고 노래 한 곡 춤 한번 제대로 부르고 추어본 적이 없다. 이것이 단체생활과 인간관계를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르리라.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내게 주어진 일을 감당해 나간다. 내 일이 목회니 그 일을 전문가답게 해나가야 하는데 쉽지 않다. 내 삶의 영역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다. 직업은 삶에서 가장 본질적인 의미가 있는 부분이다. 이 일을 한 것이 벌써 30년을 넘었다. 일의 열매는 미미하고 자신 있게 내 놓을 것은 없으니 답답하다. 돌아보면 나와 같은 처지의 동료들이 많으니 그들의 어려움을 알리고 서로 돕는데 내 할일이 있겠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품게 되었다. 다른 모든 것을 잘하고 자기의 본업을 제대로 못한다고 해도 변명이 되거나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물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으니 나 스스로 대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내가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 있다. 잘하든 못하든 목회의 일을 30년이 넘도록 해 오고 있다. 내 자리를 지키자는 신념이 있어서다. 건강을 위해서 한 가지 운동을 또 그만큼의 세월동안 해왔다. 한자(漢字)와 영어도 짧지 않은 기간을 지속해 왔다. 최근 들어서는 오카리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이런 일들의 밑바탕에 본업으로부터 뒷받침이 되지 않으니 매사에 자신감이 붙지 않는다. 내가 믿고 오늘의 나를 만들어 오신 그분이 내 삶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계실 것을 믿으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자타(自他)가 나를 “주의 종”이라 부르니 종이 걱정할 것이 무언가. 모든 일의 결정권은 주인에게 있고 종은 그때그때 맡겨진 일을 하는 것이다. 주인의 모든 일을 혼자 하려고 나서도 안 되고 남의 일에 지나치게 끼어들어도 안 된다. 뒷문 관리를 하든지 볏섬을 지키든지 주인이 맡긴 일을 하면 족하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니 하나님을 알았으니 가장 중요한 일을 한 것이고 그분의 종이 되었으니 더욱 귀한 일을 하는 것이다. 더하여 부르신 이가 준비하게 하시는 것으로 알고 몇 가지를 꾸준히 준비하고 있으니 주눅들 일이 아니다. 남들과 견주어 못하는 일들이 많지만 그분은 비교하여 책망하시는 분이 아니다. 이런 모습으로 나를 만드셔서 꼭 맞는 일에 쓰시는 분임을 믿기에 지나온 날들이 백 점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팔십 점은 넘지 않을까 스스로 평가한다.
내가 팔십 점 가량의 삶을 살아왔다면 주변의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자신들이 잘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열등감과 죄의식에 잠겨 있을 일이 아니다. 그분이 만드시고 재능에 따라 일을 맡기신 것이니 능력 이상의 일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괴로워하지 마라. 전반기를 보면 후반기를 얼마간 예측할 수 있다. 후반기를 대비하기 위해 사용할 도구들을 잘 벼리어 놓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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