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그 때 그 곳 그 사람

변두리1 2015. 12. 10. 08:42

그 때 그 곳 그 사람

 

  이 땅의 오래고 긴 삶 가운데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언제일까. 그 순간 그 현장에 있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어쩌면 그 주인공들은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덤덤하게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 순간이 존재했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노자가 함곡관(函谷關)을 지나 사라지려는 그 순간이 인류문명사에 한 획을 긋는 현장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나의 이런 느낌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으리라.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 장면을 기록해 놓고 있다. 그 현장이, 그 장면이 보고 싶다. 누군가는 자주 되풀이되는 장면이라고 귀띔해 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의도적으로 그 현장으로 가보자.

 

  나이를 어림할 수 없는 조금 남은 백발과 붉은 얼굴의 노인이 한 사람만 막아도 만 사람이 지나갈 수 없다는 험준한 함곡관을 소를 타고 지나고 그곳의 관리는 아쉬운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노인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있다. 내륙으로 들어가는 이는 영원한 노인, 지혜의 사람 노자(老子), 그를 배웅하는 이는 그곳의 관령(關令)인 윤희(尹喜)라는 이다.

  수일 전 윤희는 자신이 지키고 있는 산관(散關)이라고도 부르는 함곡관문을 지나려는 분이 이 땅의 지혜의 사람, 혼란스런 세속을 떠나 선계로 가려는 노자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자신에게 무슨 말씀이든 남겨줄 것을 간곡히 청한다. 노인은 윤희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곳 관사에 며칠 머물며 마음에 머물던 것들을 오천 자 정도로 기록해 전해준 것이 도덕경(道德經)이다. 이천오백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누구라서 그 경전을 온전히 깨우쳤다 할 수 있으랴 하물며 삶으로 그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으리라. 지식과 문명,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오늘, 온갖 제책(製冊) 능력과 지식정보의 과잉시대에도 감당하기 벅찬 것들을 모든 것이 열악했던 그 때에 어떻게 며칠 만에 써내려 갈 수 있었을까.

  도덕경을 써내려가는 노자의 모습을 상상력을 발휘해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그는 윤희가 차려주는 소박한 밥상을 받아 즐거운 마음으로 비우고 말술[斗酒]을 가져다 놓으라고 시켰을 것이다. 밥이야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그만이지만 술이 들어가지 않으면 흥이 나지 않았을 게다. 웃옷 훌렁 벗어 던지고 먹 듬뿍 갈아 놓고 중얼중얼 읊기도 하고 때때로 이런 것을 써 놓은들 누가 이해나 할까, 일삼아 읽어보기나 하려나, 마음속에 누군가 제 글을 읽어주기 바라는 마음, 그것이 자신의 철학에 맞는가를 생각하며 쓸데없는 일 하고 있다고 여기기도 했을 것이다. 평소에 마음에 품고 삶으로 살던 것을 풀어내는 것이니 앞뒤를 따지고 고치는 일도 별반 없이 흥얼거리며 놀이하는 모습으로 적었으리라.

  팔이 아프면 술 한 잔 마시고 사람이 무언가를 배울수록 자연과 본성에서 멀어진다고 한탄하며, 뭔가를 안다고 하는 이들에게 질타하던 일을 자신이 하고 있음을 자책도 했으리라. 뭔가를 끝없이 배우고 주장하고 가르치는 이들을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스스로도 지키기 어려운 것들을 겨우 깨우치고 체계화해 다른 이들에게 가르쳐 평생의 짐을 지우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배워서야 할 수 있는 것이 어찌 본성이랴. 본성이 아니라면 평생을 어찌 행할까. 하늘과 땅을 채우는 자연은 본성을 지켜 전혀 무리 없이 수수만년을 아무 탈 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그러니 무위(無爲)고 자연(自然)이며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하지 않는 일 하나 없이 모든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무위자연의 좋은 본보기가 물이니 물처럼만 산다면 더 바랄 것이 무언가. 낮은 곳으로 흐르고 막히면 쉬어가고 더러운 것 품고 가면, 다투고 시기할 것이 무언가. 높은 곳을 차지하려 다투기만 할뿐 정말로 굳세고 힘 있는 것은 낮은 곳의 부드럽고 약한 것들임을 모른다. 모두가 유용해지려 골몰하나 진정한 쓸모는 무용에 있음을 알지 못한다. 가르쳐주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적실(適實)한 때에 선문답처럼 지나가듯 던져놓아 귀 열린 이들을 깨우쳐 주었다. 길게 써놓음이 번폐스러운 일 하나 더함인 줄 모르지 않으나 함곡관의 관령처럼 마음에 원()이라도 있거나 혹시 그 후손 중에 삶을 답답히 여기는 이 더러 있다면 한두 마디 도움이나 위안이라도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간곡한 청을 물리치지 못하고 몇 자 적어 전할 뿐이다.

 

  아마도 노자는 점심때 설핏 지나 써내려가기를 마치고 윤희 불러 별거 아니라며 건네주고 남은 술 뱃속에 털어 넣은 후 마당에 앉은 소 올라타고 옥체보중하시란 말 들으며 험한 골짜기 사이를 유유히 사라져 갔을 것이다. 그 후로는 그를 본 사람 없고 더러는 신선이 되었을 거라고 한다.

  오랜 세월 지나 지혜자의 흔적 찾을 길 없으니 그가 마지막으로 지나간 땅이름이나 마음에 담아보자. 함곡관(函谷關) - 골짜기를 품은 관문, 옥문관(玉門關) - 옥으로 가는 관문, 산관(散關) - 산산이 흩어지는 관문. 그는 그 관문을 지나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가서 천도(天桃)를 상식(常食)하는 신선(神仙)이 되었는가. 우리에게 사물의 뒷면을 보여주고 여름날의 그늘과 계곡 같은 여유, 그리고 참 삶을 가르쳐준 지혜의 사람 노자가 서서히 사라지던 그 때 그 곳이 내 눈에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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