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창틀에서 오는 소리

변두리1 2015. 9. 15. 01:36

창틀에서 오는 소리

 

  며칠 전만 해도 한낮 매미들의 그악스런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 틈에 슬그머니 사라지고 해지면 창틀에 붙어 밤새 울어대는 귀뚜리소리 들린다. 매미소리는 소란스러워도 환한 대낮이라 그 소리에 온 신경이 모이지 않는데 귀뚜리 소리는 사위가 조용하고 깊은 밤, 귀를 울리고 마음을 채워 쉽게 잠들 수 없게 한다. 그렇다고 어둔 밤 찾아가 쫓아내거나 목숨을 뺏을 수도 없으니 견디며 함께 사는 것이 지혜다.

 

  잠들지 못하게 저리 섧게 우는 건 무슨 사연이 있음인가. 자신을 소진시키며 반드시 내게 전해야 할 메시지가 있는 것인가. 어쩔 수 없이 그의 소리를 견뎌야하니 무슨 말인가 추측이라도 해보면 좋겠다.

그의 소리가 클클클클들린다. 예의가 아니다. 나를 향해 비웃는 소리로 들린다. 내 처지를 아는가보다. 열심히 산다고 했어도 돌아보니 이룬 일 하나 없고 남들에게 그저 민망할 뿐이다. 내 나름으로야 변명도 할 수 있고 신념이 있다지만 만나는 이마다 묻기도 전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을 수는 없다. 다 제멋에 사는 것이니 서운해 할 일도 주눅들 일도 아니다.

  이번에는 쯧쯧쯧쯧들린다. 변명하는 것마저도 안됐고 불쌍하다는 투다. 그렇지, 한낱 벌레요 미물인 네가 무얼 안다고. 그 소리에 일희일비하는 내가 문제지. 한번 그렇게 들으니 한동안 같은 소리뿐이다. 마음이 상한다. 그렇지 않아도 환절기에 건강을 지키기가 만만하지 않은 터에 잠이라도 잘 자야하는데 머리맡에서 신경을 돋우다니.

  불편한 마음에 정신은 더욱 또렷해지고 귀뚜리는 쉬지 않고 소리 지른다. 띨띨띨띨. 작정을 하고 나를 열 받게 하려나 보다. 충고들이 대개는 본인이 아는 것이다. 상대가 조심조심 몇 번을 벼르다 하는 것이고 본인을 아껴 하는 얘기임을 알아 더 없이 고맙지만 바보가 아니면 아주 모르지는 않는다. 알아도 잘 고치지 못하거나, 노력해도 잘 안 되는 타고난 약점인 것이다. 나의 아픈 곳을 녀석이 찌르고 있다. 내가 띨띨하다는 것쯤은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뼛속까지 안다. 웬만한 주변사람들도 그런 나를 알아 이제 그런 말은 하지도 않는다. 기분이 상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 쫓아가고 싶다. 불을 비추어 몰아내고 싶지만 미물과 상대해야 하는 내가 더 비참해질까 싶어 애써 참는다.

 

  생각을 정리해 보아야겠다. 설명해 주지 않는 자신을 향한 초월적 소리를 들을 때는 스스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 그 해석에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잘못하면 같은 말을 듣고도 정반대의 해석을 하고 잘못된 대응을 할 지도 모른다. 던져진 객관적 상황이 현실을 나타낸 것일 수도 있고, 다가올 미래를 미리 보여준 것일지도 모르고, 미래에 대한 기원이나 희망사항일 수도 있다. 또 그것을 전달받는 이의 상황이나 선입견에 따라 객관적 상황에 왜곡이 생길 수도 있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도 창밖의 소리는 멈췄다 이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여전히 귀뚜리는 클클클클소리 내고 있다. 하지만 내 해석이 달라진다.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커갈 것이라는 좋은 소리로 들린다. 커지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 말 속에는 바람직하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만 같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긴다. 참 신통하다. 어떻게 고생 속에 살아온 내 삶의 여정을 알아서 앞으로는 잘 될 것이라는 걸 내게 반드시 전해주려고 밤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온몸이 부서져라 소리치는 것인가.

  이번에는 짧게 멈추더니 쭉쭉쭉쭉소리를 낸다. 한 때는 대나무 마디를 통과하듯 꽉 막히고 캄캄하고 답답한 채로 앞을 볼 수 없었지만 마디를 돌파하면 거침없이 쭉쭉 벋어가듯 잘 벋어갈 거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고맙다. 결과와 관계없이 새 힘이 솟는다. 다 함께 어려운 이런 시기에 누가 덕담으로라도 쉽게 쭉쭉 벋어나갈 거라고 말할 수 있나. 실낱같아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이 땅의 삶인데 서로 힘나는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가.

  밤을 새려는 심산인지 이번에는 뜰뜰뜰뜰소리를 기쁨에 겨운 듯 힘차게 쏟아 놓는다. 그 소리가 머지않아 뜨리라는 소리로 들린다. 이제 내가 뜰 일이야 무엇이 있겠나, 그래도 따져보니 그렇지 않다. 죽어서 관속에 들어가서 운구당할 때라도 반드시 뜰 것이다.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도 또 뜰 기회가 올 것이다. 구태여 내게 한정시킬 일이 무엇이 있는가. 우리 집에 찾아와 전달해 준다고 치면 떠야할 아이들이 셋이나 있다. 어디까지 뜨는 것이 답인지 몰라도 자신들의 분야에서 원하는 성과를 이루어라.

 

  때 되면 변함없이 찾아주는 그들이 반갑다. 누구나 가을 손님들에게 듣는 소리는 가을이 왔다, 빠른 세월을 아껴 자신의 일에 정진하라, 서늘 쓸쓸해지는 가을 초입에 이웃과 고향과 자연을 돌아보라는 정다운 소리다. 하지만 올해는 그것에 더해 더 좋은 힘나는 소리로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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