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실패도 힘이 된다.

변두리1 2015. 8. 2. 21:48

실패도 힘이 된다.

 

 

  전화벨이 울린다.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든 수화기를 통해 귓속으로 파고드는 소리.

 

    “아빠, 저 떨어 졌어요…… .”

    “조금 전에 발표 났는데 제 이름이 없어요.”

 

  숨이 막힌다. 이번에는 될 줄 알았는데……, 스르르 온 몸에 힘이 빠져 나가는 것만 같다. 그러나 어쩌랴, 아직은 아니라는 것을.

 

    “그래?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준비하셨을 거야, 좀 쉬어.”

    “, 엄마한테도 얘기해 주세요.”

 

  모두가 힘이 없다. 내가 이런데, 너는 오죽하랴. 한 평생 살면서 어떻게 좋은 일만 있을 수야 있나, 화창한 날만 계속되면 옥토도 사막이 된다는데. 궂은 날이 안 좋은 것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날인걸. 이것도 길게 보면 우리 모두에게 약이 될 거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으니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다. 내 지론이 실패가 우리를 성숙하게 한다는 것이다. 성공은 긴장을 풀어지게 하고 때로는 우쭐하게도 하고 세상을 쉽게 보게도 만든다. 반면에 실패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끈을 다시 한 번 조이게 하며, 매사에 신중하게 만들어 주고 마음 아픈 이들을 한 번 더 헤아리게 해 준다. 그렇다 해도 잘 되면 얼마나 좋으랴.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실패가 많았다. 남들은 쉽게 붙는 운전면허도 기능시험을 얼마나 떨어졌던지 새로이 원서를 써야 했었다. 이제 생각하면 부끄러울 것도 없는 한낱 이야기 거리에 지나지 않아도, 그 당시는 왜 그리도 심각하고 민망하고 짜증나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남들은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 가족도 실패의 경험이 결코 적지 않다. 그것이 그다지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반대로 창피한 일은 더욱 아니다. 많은 것을 시도해 보고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는 반증도 될 수 있다. 자신의 실패도 마음 아프지만 자녀들의 실패는 더욱 조심스럽고 마음이 아프다. 자녀와 함께 재수의 시간을 보내고, 이른 아침 수능시험장 정문에서 알지도 못하는 학생들의 응원가를 들으며, 한해의 고통을 날 저물도록 시험지에 풀어 놓기 위해 수험생들의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가는 아이에게 긴장하지 말고 잘하라고 한마디 던지고, 그 아이의 뒷모습을 좇아가며 오히려 긴장하는 부모들. 시험이 끝나고 어두워져 가로등 켜질 때까지, 시험장을 떠나지 못하고 마음 졸이는 안쓰러움을 겪어 보지 않은 이들은 실감하기 어려우리라.

 

  삶은 실패를 통해 단단해 진다. 몇 번 실패하고 나면 자신이 대단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런 좌절의 경험은 빠를수록 좋다. 모두가 다 천재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실패는 사실은 성공으로 가는 여러 갈래 길 중의 하나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옷이 있고 신발이 있다. 자기 것을 찾아서 오랫동안 성실하게 정진하면 된다. 우리 전통의 일상 놀이 중에 목적지에 가면서 하는 놀이가 있다. 그 때 하는 말이 어디까지 왔니?, 아직까지 멀었다.’이다. 그러나 계속 가면 어느 한 순간 다 왔다, 여기가 거기다.’라는 말을 듣는다. 실패하는 이들은 열정이 없다고도 하는데 열정이 없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열정이 없는 이들은 실패하지 않는다.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열정을 쏟을 곳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어떤 악기나 오락, 게임에 몰두하는 이들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푹 빠져 살다가,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어떤 것에 몰두하면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키지 않아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 분야에 통달한 사람이 많은 사회,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고수들이 즐비한 사회가 힘이 있고 건강한 사회이다.

 

  실력이 있어서 정해진 과정을 한 번에 통과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실력이 아닌 요행으로 혹은 편법으로 통과하기 보다는 한 번 더 갈고 닦아서 탄탄한 실력을 갖추는 것도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계속 성공만 하는 사람은 없다. 이른바 엘리트코스로 달려온 이들이 알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도 많다. 반면에 그들이 모르고 못하는 것들을 채워 줄 수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실패에는 성공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덕목과 기회가 있다.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편안함과 포용력이 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은 재미없고 단조로울 수도 있다. 뛰다가 걷기도 하고, 길가 경계석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조금 늦게 가는 것이 더 의미 있을 수가 있다. 어쩌면 실패로 가득한 삶이 더 다채롭고 영롱한 진짜 성공한 삶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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