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프레드릭》을 읽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루는 조화로운 사회-
1.지은이는
레오 리오니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는 1910년 5월 5일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1999년 10월 11일에 사망하였다. 자연주의 교육의 영향으로 미술과 자연 공부에 중점을 둔 초등교육과 예술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자랐다. 건축가이며 도안가였던 외삼촌과 현대미술품을 소장한 이모부의 영향으로 현대 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 미술 애호가였던 작은 할아버지는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여 친척집에 분산 보관하였는데, 그의 집에는 샤갈의‘바이올린 켜는 사람’이 걸려 있었다. 후에 “아마도 그 그림은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상상했던 모든 이야기의 비밀 탄생지였을 것”이라고 회고하였다.
1935년 제노바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나, 1939년 29세에 미국으로 이민, 광고회사에서 상업 디자인을 시작했다. 화가, 조각가, 사진작가, 그래픽 디자이너, 아트 디렉터로 성공하였으며, 1959년에야 그림책 작가 및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시작하였다. 손자들을 위해 즉흥적으로 잡지를 찢어 가본으로 만들었던 그의 첫 그림책 《파랑이와 노랑이》(1959)는 <뉴욕타임스> 최고 그림책상을 받았다.
그는 그림책 작업을 늦게 시작했지만, “내가 일생 동안 한 여러 가지 일 중에 그림책보다 내게 더 큰 만족을 준 것은 없다”고 했으며 “어린이 책을 쓰기 위해서는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반대로 어린이 책을 쓸 때 한 걸음 떨어져 어린이를 어른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란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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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책의 이야기는
너무도 간단하다. 마치 개미와 베짱이를 보는 듯했다. 나오는 이들은 다섯 마리의 쥐들이고 그 가운데 하나가 주인공인 ‘프레드릭’이다. 네 마리의 쥐들은 겨울을 대비해 열심히 일을 하는데 프레드릭은 그들과 같이 일하지 않는다. 그들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햇살을 모으는 중이란다. 비슷한 상황에서 그들이 다시 물었을 때에는 색깔을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한번은 졸면서 꿈을 꾸는 것 같아서 물어보았더니 이야기를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네 마리 쥐들은 프레드릭을 심하게 추궁하거나 그게 무슨 일이냐고 무시하지 않고 일을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겨울은 어김없이 오고 그들이 모았던 양식도 바닥이 났다. 찬바람이 스미고 쥐들은 우울해져갔다. 그들은 춥고 배고프고 우울해지자 프레드릭을 생각한다. 그에게 그동안에 모은 햇살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묻자 그는 따듯한 햇살이야기를 해주고 그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따듯함을 느낀다. 이번에는 조바심을 내면서 모았던 색깔들을 나눠주기를 요청하고 프레드릭은 즐거이 나누어준다. 그들은 다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부탁하고 그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한다. 네 마리 쥐들은 이야기를 듣고 박수를 치며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라고 탄성을 지르자 그는 얼굴을 붉히며 “나도 알아.”라고 수줍게 말한다.
3. 읽고 나니
작가는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미 알고 있는 개미와 베짱이와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모두가 같은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가 보다. 프레드릭이 주인공이니 그에게 초점을 맞춰보자. 다른 모두가 한 가지 일을 할 때 그들과는 다른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는 일을 하는 그가 대단하다. 자기 확신과 주체성이 없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주변의 눈치나 보면서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그들과 함께 같은 일을 했으면 행복했을까. 아니면 적당히 타협해서 함께 같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일을 조금씩 했으면 어찌되었을까. 어떤 경우나 행복하지도 않고 그들이 감탄할 만한 이야기도 들려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인정도 물론 받지 못했을 것이고 그들은 모두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자신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은(마치 일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프레드릭을 비난하지 않는 네 마리 쥐들도 훌륭하다. 그들이 춥고 배고프고 우울할 때 그를 기억하고 불러내는 것은 프레드릭을 무시하고 단지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또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역할과 기여도를 인정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의 이야기에 그들이 감동받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주인공 프레드릭이 해왔던 일과 자세를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행복이 중요하다.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그 일을 하므로 즐거운 일을 해야 한다. 조금 더 노력하면 감동을 주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끝까지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확신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자신의 삶을 다른 이들의 관점과 평가에 의해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하고 서글픈 일인가.
우리사회에도 주체적인 더 많은 프레드릭이 생겨나야 한다. 나도 또 하나의 다른 프레드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