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야곱

축복이 뭐라고(에서)

변두리1 2015. 7. 23. 19:26

축복이 뭐라고(에서)

 

  우리 가족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 출생순서를 어떻게 인위적으로 바꿀 수가 있는가. 엄연히 내가 우리 집의 맏아들이라는 것을 마을에서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연히 가정의 지휘권을 갖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꼬였다. 가족들이 하나같이 나를 따돌리고 동생인 야곱에게 축복을 하고 동생을 끼고 돈다. 내 잘못이 무언지 모르겠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고 그냥 넘어가자니 나만 바보가 된 기분이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빈정거림과 놀림을 받을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에 큰 관심도 없고 동생이 갖는다고 해도 아쉬울 것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을 바보취급하지는 말아야 하는데 그게 마음이 상한다.

 

  동생 야곱이 밉다. 사내가 돼 가지고 어미 치마폭에 싸여 사는 것도 꼴불견인데 욕심은 많아서 내 복을 빼앗으려고 끝없이 잔꾀를 쓰고 있다. 얼마 전에는 사냥에 지쳐 돌아온 내 앞에 팥죽을 끓여서 내 회를 동하게 하고는 장자권을 내 놓으라고 흥정을 하기에 팥죽을 주면 주겠다고 했더니 정색을 하고는 한 그릇을 주었다. 그게 어디 흥정해서 될 일인가, 출생의 순간에 끝이 난 것이지. 그러더니 이번에는 나라고 속이고는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았다. 하늘 무서운 지도 모르고 내 성격도 파악하지 못한 저 죽을 짓을 하는 녀석이 불쌍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족 모두에게 이번에는 확실하게 보여주어야겠다. 아버지가 언제 조상들에게로 가실지 모르니 그 순간이 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내가 기다리리라.

 

  어머니에게도 마음에 맺힌 것이 적지 않다. 이번 사건만 해도 그렇지 어떻게 동생 녀석만 끼고 돌아 연로하신 아버지와 맏아들인 나를 속이고 그 녀석에게 축복해 주도록 할 수가 있나. 어머니의 협조 내지는 지시가 없이는 절대로 되어 질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약점에 내 옷을 더해서 그토록 천연덕스럽게 옳지 못한 일을 할 수가 있을까. 그동안 내가 어머니를 도와주지 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빈둥거리며 놀면서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누가 더 결단력이 있고 사내다운지 사람들과 어울려 대외적인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지는 마을사람 중에 누구를 잡고 물어보아도 같은 답이 나올 것이 뻔하다. 집안에서만 지내는 이들의 생각이 우리가문을 망칠지도 모른다. 왜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판단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아버지께도 서운하다. 어찌 보면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제공자는 아버지다. 연세가 들어 몸이 약해지고 눈이 어두워지는 거야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를 축복하실 거였으면 그 자리에서 하실 일이지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또 뭐 그리 대단한 것을 얼마나 드시겠다고 내게 먹을 것을 요구하셔서 그런 실수를 하신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실수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를 일단 돌려놓고 동생에게 축복을 하려고 내게 음식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리 눈이 어두워도 둘뿐인 아들을 혼동하실까. 나와 동생이 여러 면에서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니 남들이 보아도 헷갈리기는 쉽지 않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외모와 목소리 중 바꿀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나를 따돌리고 바보로 만들었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부모님에게야 어쩔 수 없으니 야곱에게 본때를 보여서 내가 만만한 바보가 아님을 만천하에 보여주리라. 아버지는 자신의 뜻이 아니었다는 반응을 보이셨다. 그러면 내가 울면서 내게도 축복을 해달라고 했을 때 굳이 못해줄 것은 무언가. 그 몇 마디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금방 벙어리가 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기껏 해준다는 것이 축복이라기보다는 저주의 말들이 아니었던가.

 

  먼저도 이야기했지만 축복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가문의 재산을 하나도 물려받지 않아도 좋다. 나는 사냥기술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화가 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맏아들을 바보로 만들고 따돌려서 얻을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우리가문의 명예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뒤통수에 걸리고 마치 그들 모두가 우리가문을 깔보고 무시하는 듯하다.

  우리 가정을 위해서도 그냥 지나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듯하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 제대로 본을 보이지 않으면 후대에도 좋지 않은 분란이 계속 일어날 수 있다. 이 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나를 제외한 가족들에게 있다. 한 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내 생각을 지나가는 농담처럼 몇 번 던져보았다. 가족들이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특히 어머니는 경계하는 빛이 확연했고 약삭빠른 야곱 녀석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여러 면에서 조심스러워 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사나이로서 한 가문을 책임져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