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야곱을 도운 이유(리브가)
두 아들과 남편에 대해서도 나만큼 아는 이는 없을 것이다. 남편과는 거의 백여 년의 세월을 같이 살아왔다. 야곱과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에서에 대해서도 알만큼은 안다. 이제 남편의 건강이 많이 약해졌다. 체력이 쇠진하고 눈도 급격히 나빠졌다. 최근 들어 부쩍 죽음이야기를 많이 하고 서둘러 가문의 후계자를 세우고 싶어 하더니 낮에는 에서에게 사냥요리를 만들어 오라고 했다. 먹고 복을 빌어 후계자로 세우겠다고 했다. 불안했다. 에서가 아닌 야곱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차오르고 있었다.
맏아들 에서에게는 가문의 지도자에게 필수적인 진지함과 침착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에 야곱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진지하고 침착하다. 야곱은 결단력과 추진력이 약하고 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그 면이 강하다. 집중력과 해결능력은 단기적으로는 에서가 강하나 장기적으로는 야곱이다. 두 아들 모두 일장일단이 있는데 종합적으로 보면 야곱이다. 그렇지만 관습을 따르면 에서에게 후계를 물려줘야 한다. 남편도 오래 고민을 했을 텐데 더 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가문의 운명이 달려있다. 심장이 점점 빨리 뛰고 왠지 불안하다. 야곱에게 알리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서둘러 야곱을 부르니 아무 영문도 모르고 달려왔다. 막상 야곱을 대하고보니 상의해서 될 일이 아니다. 대범함과 결단력이 없는 야곱에게 상황을 이야기해 봐야 우물쭈물하다가 에서에게 양보하고 말 것이 뻔했다. 내가 결정해서 밀어붙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내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실패가 되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막으실 것이다. 판단이 서자 야곱에게 좋은 것으로 염소새끼 두 마리를 가져오도록 해서 요리해 들리고 에서의 옷을 입히고는 염소 털로 팔뚝과 목을 가려 부친의 방으로 밀어 넣었다. 들어가기 전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 채고 위험성을 얘기하면서 축복은커녕 저주를 받을지 모른다고 머뭇거렸다. 그 저주는 내가 받겠다며 강하게 밀어붙이니 쭈뼛쭈뼛 부친의 방으로 들어가 에서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어설픈 일이다. 에서의 자신감에 찬 크고 탁한 목소리를 야곱이 낼 수는 없었다. 일이 되지 않을 듯했다.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남편과 아이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잡았느냐고 하는 것 같다. 머뭇머뭇 우물거리면 탄로가 나고 어그러질 것이다. 역시 자신 없는 어조로 느릿느릿 대답을 한다. 에서와는 전혀 다른 태도다. 아이가 아버지에게로 나아간다. 아이에게 네가 에서냐고 묻는 소리가 들린다. 움찔하면서 겁먹은 듯 대답을 하고 남편은 아이의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내게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 ‘음성은 야곱인데 손은 에서로구나’문틈으로 보니 아이는 땅으로 눈을 내리깔고 어쩔 줄 몰라 불안해하고 남편은 천천히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져 금방이라도 에서가 들이 닥칠 것만 같았다. 남편은 이번에는 아이를 불러 자신과 입을 맞추도록 했다. 분명히 온몸을 후들후들 떨며 이빨조차 덜덜거릴 야곱이다. 아이는 벌써 몇 번을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까하고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간신히 축복을 받고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아버지 방에서 물러나왔다. 내가 잘했다며 등을 두드리자 원망어린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면서 앞으로가 더 걱정이란 표정을 짓고는 피곤한 듯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에서가 사냥요리를 들고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며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자신감이 넘치는 특유의 탁하고 큰 목소리였다. 남편의 놀라는 듯한 외마디 소리와 잠시의 침묵, 그리고 커다란 흐느낌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지는 에서의 울부짖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 에서의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흥분하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울음 중간 중간에 외마디 소리가 섞여있다. 두런두런 남편의 비감한 기도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졌다. 분이 풀리지 않은 듯 가끔씩 ‘두고 보자 내가 가만 두지 않는다’는 말이 후렴구처럼 여러 번 들렸다. 걱정이다. 어쩌란 말인가.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잘한 것인지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에서는 그 순간은 퍼르르 하지만 뒤끝은 없다. 하지만 흥분한 순간에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며칠만 지나면 이 어려움도 지나갈 것이다. 잘못하면 집안이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 좋지 못한 일이 생긴다면 두 아들이 틀어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부부도 무척 곤란해 질 것이다. 그분께 은총을 구하는 방법밖에 없다. 낮에 내가 느낀 바로는 남편도 야곱이라는 것을 알고 축복한 것 같다. 두 아들의 그 큰 차이를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 상황이 잘 수습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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