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야곱

팥죽과 형(야곱의 걱정)

변두리1 2015. 5. 27. 00:03

팥죽과 형(야곱의 걱정)

 

 

  아버지는 유순하고 가정적이며 조용한 성격이시다. 우리 집은 농사를 지으며 넉넉한 형편으로 큰 어려움도 없고 가족들은 다른 집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할아버지는 적극적으로 생활을 개척하며 사셨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대단한 분이셨다면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그 분은 내 나이 열다섯에 돌아가셨다.

 

  형은 좀 유별나다. 한 집 식구인데도 언제부턴가 같이 있는 시간은 별반 없다. 눈만 뜨면 혼자 아침을 먹고는 들로 산으로 떠돌아다닌다. 마을 사람들도 그런 형을 들사람이라 부른다. 형과 나는 쌍둥이여서 형 동생의 의미가 약하다. 그러나 우리 족속의 관습상 많은 권리와 책임이 장자에게 있으니 첫째를 가릴 수밖에 없었고 조금이라도 빨랐으니 형이었다.

  아버지는 형을 좋아한다. 자신에게 부족한 남자답고 거친 면을 내 형이 갖고 있고 맏이기도 하니 그런가 보다. 형은 사냥을 특히 잘하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들짐승 요리도 기막히게 잘한다. 아버지는 형의 요리를 즐기신다. 형이 돌아오면 아버지는 기대감에 신나 하시고 형은 순식간에 요리해서 아버지 앞에 가져간다.

  어머니는 내편이다. 내가 어머니를 많이 돕기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있으니 집안의 어려운 일을 내게 의지하고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부모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실 때에도 형보다는 내가 주로 듣고 의견을 내 놓는다. 두 분이 가문에 관한 대화를 나누실 때에는 분위기가 어둡다. 매 번 되풀이되는 그분들의 의견은 큰 애가 남자다운 것은 좋은데 집안일에 너무 관심이 없어 큰일이라는 것이다. 부친도 나도 형에게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해도 그때뿐이다. 형의 관심은 늘 들판에 있고 사냥감에 꽂혀 있다.

 

  가문의 영적인 일과 가업에 대해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정말 중요한 일인데 형은 별관심이 없는 것 같다. 가끔 내가 불평 겸 부탁을 하면 형은 그렇게 마음이 쓰이면 네가 하라고 몰아 부친다. 형의 성정을 아니 내가 하고 싶기도 하지만 원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지난 번 일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날은 집에서 팥죽을 쑤었는데 형은 웬일로 사냥에서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빈손으로 지쳐서 돌아왔다. 오자마자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참을 수 없다는 듯 팥죽을 달라고 했다. 형에게 내 딴에는 심각하게 장자권을 내게 넘기면 주겠다고 했더니 너무도 간단하게 난 아무 관심 없어. 그게 밥을 주니, 떡을 주니라며 관심 많은 너나 가지라 했다. 큰 그릇에 가득 팥죽을 담아 주었더니 순식간에 비우고는 아, 잘 먹었다 하고 트림을 하고 자기 방으로 가더니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든 모양이다.

 

  그날 밤에 망설이다가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모친도 한 걱정을 했다. 아버지도 나날이 쇠해 가시는데 가문의 일도 맡아야하고 무엇보다도 영적인 족장이 되어 하나님 신앙을 이어가야 하는데 그런 일은 관심이 없고 온 마음이 들판을 내달리며 사냥감을 쫓는데 가 있으니 정말 큰일이라고 염려하시며 아무래도 아버지와 진지하게 상의를 해야겠다고 하셨다. 낮부터 형은 세상모르고 코를 골며 떨어졌고 부모님은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시고 한숨 섞인 대화를 나누셨다. 나도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형이 부럽기도 하다. 그 짧은 시간차가 뭐라고 많은 일들이 출생과 함께 정해지고 순차는 뒤집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형이 가진 부러운 것들이 많다. 형은 성격이 남자다워 화끈하고 뒤끝이 없다. 근력과 민첩성도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다. 체격이 단단하고 풍채가 우람하다. 한 가지 일에 쏟아 붓는 열정도 대단한데 지금은 그것이 사냥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그들과 관계도 좋다. 형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버지는 늘 사냥만 덜 하면 다 좋은데를 입버릇처럼 되뇌신다.

가정 일과 하나님 신앙과 관련된 영적인 일은 어머니에게 주로 들었지만 내가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고 큰 일이 아니면 거의 내가 처리를 한다. 필요할 때에 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일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내 스스로도 형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합법적 방법이 있다면 하고 싶다. 긴 안목으로 보면 우리 형제뿐 아니라 가문을 위해서도 그게 나을 수도 있으리라.

 

  아버지는 요 몇 해 사이에 몸과 마음이 급격히 약해지셨다. 내가 죽으면 어떡해야 하느냐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시력이나 기력도 눈에 띄게 쇠약해지시는지 최근에는 바깥출입을 잘 안하신다. 나야 항상 집에 있어 부르시면 좇아가지만 형은 그렇지 못하니 형을 더욱 가까이 두고 싶어 하신다. 어찌하든지 형을 집안에 잡아두려는 노력 같아 안타깝지만 조금이라도 틈만 나면 형은 용케도 빠져나가 들과 산을 헤매다 사냥감을 메고 나타나 기막힌 요리로 아버지 화를 누그러뜨린다. 우리 가문의 앞일을 도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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