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야곱

대를 잇다(아브라함)

변두리1 2015. 1. 5. 01:02

대를 잇다(아브라함)

 

  기쁜 날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주신 날이다. 아들 이삭이 가정을 이룬지 20년, 그동안 자녀가 없어 한걱정이었는데 오늘 며느리가 드디어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아들 녀석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내왔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건 며느리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으리라. 나도 드러내 말은 못했지만 무척 힘이 들었다. 그것도 무슨 가정 내력이라고 아들 대까지 애를 태우는가했다. 아들 나이 60에 두 아들을 얻었으니 제 몫을 얼추 한 셈이다. 내가 다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아들은 믿음이 있다. 아마도 모리아산의 경험이 평생을 갈 것이다. 무엇이 가장 소중한 지를,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愛之重之)했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려 했던 의미를 생명을 걸고 배웠으니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자녀를 허락하기를 아들은 그분께 애타게 간구했다. 하나님의 응답으로 수태(受胎)가 되자 그때는 며느리가 힘들었나 보다. 쌍둥이가 태속에서 심하게 다투어 힘들어 하는 아내 때문에 그분께 고하니 “두 국민이 태중에 있다. 두 민족이 뱃속에서 나뉘리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라고 하셨단다.

  오늘 출산을 했는데 내가 다 식은땀이 났다. 어찌나 긴장이 되는지 이를 오랫동안 꽉 물어서 턱이 얼얼하다. 첫째 놈이 먼저 나오는데 산파가 “아이고, 붉어라, 털도 많구만”하고 소리를 쳤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네 이름은 에서다”라고 생각했다. 곧이어 “아, 이놈은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오네”하는 소리가 들린다. “너는 야곱이다”라고 둘째 에게도 내 마음대로 이름을 붙였다.

  이런 때 그 녀석들 할머니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고 보니 아내가 떠난 지도 스무 해 하고도 세 해가 지나가고 있다. 내가 할아버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기는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이 자녀가 있으니 할아버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아이들과는 자주 왕래하지 않고 그렇게 불리기도 애매하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도 손자를 얘기할 수 있고 저들도 나를 에서나 야곱의 할아버지라고 부르리라. 한동안은 축하인사 받기에 바쁠 것 같고 한턱내라는 주문에 잔돈푼 남아날 날이 없을 듯하다.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아들이 다가와서 아들 쌍둥이라고 얘기를 해서 수고 많이 했다고 하니 애 엄마가 고생을 했지 저는 한 게 없단다. 말은 맞지만 나도 이렇게 힘이 들었는데 넌들 편했겠냐는 말이 목울대까지 나오는 것을 그냥 밀어 넣으며 며늘아기한테 정말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하더라고 전하라고만 일렀다.

  마음 같아서는 뛰어라도 가서 녀석들 얼굴을 보고 싶지만 체면도 있고 며느리에게 몸과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니 참을 수밖에 없다. 긴장이 풀리니 다리에 힘이 빠지고 갑자기 허기가 밀려온다. 그래도 입에서는 그분을 향한 찬양과 감사가 나도 모르게 흘러 나왔다.

 

                         아들놈은 안절부절

                         며느리는 악을 쓰고

                         산파들은 들락날락

                         내 입술도 바짝바짝 마릅니다

 

                         털 붉은 첫째 놈

                         제 형 발꿈치 잡은 둘째 놈

                         그 놈들 울음소리에

                         나 혼자 몰래 웃습니다

 

                        좋으신 나의 하나님

                        단번에 둘씩이나

                        손자놈들 내게 안기시니

                        이십 년 한(恨)이 풀리나이다

 

  행복하다. 홀가분하다. 아들 낳은 것은 며느리고, 애들 애빈 아들이지만 제일 기쁜 건 나다. 먼저 간 아내에게도 얼굴이 서고, 나홀성 사돈댁에도 소식을 전하고 싶다. 궁금해 하지 않아도 높은 언덕에 올라가 동네 사람들 향하여 아브라함이 쌍둥이들 할아버지가 됐다고 소리치고 싶다. 누구를 만나든 밥 사줘 가며 우리아들 육십에 아들 쌍둥이 낳았다고 얘기하고 싶다.

  갑자기 삶에 의욕이 솟는다. 아내가 하나님께 간 후로 그럭저럭 살아온 것이 이십 년이 넘게 흘렀지만 삶의 재미 잘 모르고 아내에게 가길 원했는데, 손자들 태어나니 녀석들 크는 것 보아야겠다. 고것들 장가드는 것도 보고 싶다. 아들과 며느리가 지들 자녀 키울 텐데 나를 위해 내 손자들을 맡아 키우리라는 착각마저 든다. 방안에 혼자 있어도 길을 거닐다가다 자주 그냥 웃음이 새어 나온다. 하나님께 기도꺼리가 하나 늘어났고 시간도 길어졌다. 아무 일도 없이 그놈들 있는 방 앞을 수시로 어슬렁거리게 된다.

  정말 기쁘고 기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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