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가고 싶지 않은 곳

변두리1 2015. 5. 15. 14:46

가고 싶지 않은 곳

 

 

  불안하고 긴장이 된다. 아무도 겁주지 않고 분위기가 험악하지 않은데. 순서를 앞당겨 주어도 반갑지가 않다. 철지난 월간지를 읽어보지만 잘 들어오지 않는다. 누군가 나오고 내 이름이 불려진다. 이 나이에 겁먹을 일이 무언가. 주눅들 일 없고 죄지은 일도 아니다. 지정된 의자에 앉으면서 겁이 난다. 담당 의사가 와서 빨리 진료해주기를 바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안 왔으면 좋겠다.

 

  수평에 가깝게 누워 밝은 불빛을 본다. 내 입안에 각도가 맞추어지고. 입을 크게 벌려 놓고 금속제 도구를 가지고 다가온다. 마스크 속에 표정을 감춘 채 입안을 뒤지며 치아의 한 곳을 치면 찌릿한 통증과 함께 얼굴이 찡그려진다. “많이 상했네.”혼잣말 하듯 한다. 끝없이 들려오는 소리 치이 치이 치이. “마취할 거예요, 조금 아파요.” 여전히 입은 부자연스러운데 무언가 찌르는 느낌이 강렬하다. 달리 방법이 없다, 참을 수밖에. 뭔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가끔 찌르르 아프다. 그때마다 참아내기가 어렵다. “신경치료 해야겠네.”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독백 같다. 무언가 기분 나쁜 냄새가 나고, 타는 듯도 하다. 참는 수밖에.

 

  오고 싶지 않았다. 한번 오면 계속해서 시키는 대로 와야 한다. 마치 원치 않는 긴 터널의 입구를 제 발로 걸어들어 가는 것 같다. 겁이 난다. 경제적 지출도 많을 것 같다. 충치가 있어서 때운 것이 빠지고, 세월이 지나 간격이 커지더니 구멍이 났다. 점점 견디기 힘들어 지더니 욱신욱신 쑤시며 살짝 닿기만 해도 신경이 곤두서고 아프다.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잠을 잘 수도 없다. 너무 고통스러워 전화로 예약을 했다.

  통증이 심하니 체념이 되고 포기가 된다. 어떤 것을 해도 이보다는 낫겠다 싶다. 예전의 선조들은 이가 아플 때 어떻게 했을까. 동물들도 이빨이 있으니 질병과 문제가 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해결하며 살아갈까. 고통이 오면 찾아갈 수 있는 전문가들이 있으니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아픔이 가시지 않아 예약시간이 기다려진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감정은 미묘하다. 기분 좋게 가는 곳도 많은데 왜 여기는 그럴 수 없나.

 

  일차 진료를 마쳤는지 나를 일으켜 앉히고 의사와 간호사가 옆의 환자에게로 간다. 유리창 너머로 헬스장이 보이고 얼핏얼핏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그곳에 간다. 근처에 있는 노래방에도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갈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치과의사도 쉬운 직업이 아니다. 누가 자주 보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 같고 기쁜 얼굴로 대면하기도 어려울 듯하다. 찾아오는 이들의 목적도 단순하고 하는 일도 정해져 있다. 자기 잘못이 전혀 아닌데도 환자들 치아의 문제를 자신의 모든 기술과 경험을 동원해서 해결해 주어야 하고 그것을 환자들은 당연하게 여긴다.

 

  긴장 속에 힘겨운 치료를 마쳤다. 그래도 다행이다. 3일 후에 오세요. 누가 안온다고 할 수 있을까. 우산을 챙겨 나오며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혀가 닿으니 따끔거리고 까끌까끌하다. 냄새도 유쾌하지 않다. 터벅터벅 걸으며 많은 생각에 잠긴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 가는 일도 많아질 터인데 그 모든 일들을 어떻게 겪어야 하나. 이런 일이 잦아지고 고통이 심해지면 더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 진담일 수도 있겠다. 노인들이 예전보다 더 위대해 보인다.

 

  멀게만 여겨졌던 노년의 삶이 갑자기 걱정스럽게 다가온다. 최근에 신문광고에 내 나이가 모집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을 보았다. 이제 서서히 현장에서 밀려나는 것인가. 나는 현장에서의 은퇴를 인정하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일선에 머물 것이다. 나이 들어 한두 명의 아이들을 앉혀 놓고 한문을 가르치든 삶의 경험과 생각을 담아 책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아이들을 위한 성경동화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긴 세월을 대비해야 한다. 신체의 기능들이 약해지고 질병이 찾아오는 것이 다반사니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스런 미래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스스로 내 몸의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이앓이[齒痛]를 겪으며 이제는 작은 문제도 전처럼 간단히 넘겨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건강관리를 해야겠다. 내가 계획하는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꾸준히 하고 걷기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지. 이번 일이 오히려 기회가 닿는 대로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당장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지식을 쌓고 시야를 넓히며 건강을 유지해야지 하는 마음을 새롭게 갖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치과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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