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서울 나들이
수 년 동안 서울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막내 졸업식 이후에 사흘 만에 또 간다. 지난번에는 아이들과 함께 여서 조금도 불편함이 없이 물 흐르듯 다녀올 수 있었다. 드러내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도 헤매지 않고 목적지까지 넉넉히 갈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전날 저녁에 낮 열시 정도의 차표를 예매해 달라고 했더니 카드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면서 그냥 가도 차들이 많아서 5-10 분 기다리면 탈 수 있다고 했다. 대여섯 해 다녀 본 아이의 말이니 어련하랴 싶었다.
그래도 조금 여유를 두고 터미널에 도착했다. 매표소에 가서 물어보니 예상과 달리 11시 10분 출발하는 차가 제일 빠르단다. 예식이 12시인데 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 매표원에게 하소연을 해도 소용이 없어 출발하는 차 앞에서 기다리다가 빈 좌석이 있으면 타고 가기로 했다. 계획성 없이 사는 것 같고 칠칠맞아 보이기도 해 차 앞에 서있기가 민망하다. 연이어 두 대가 빈자리 없이 출발을 하니 쓸데없는 일 같기도 하다. 이런 때는 아는 이가 없었으면 하는데 익숙한 분이 다가온다.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척 하니 그 분이 아내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신과 일행은 5분 후 출발하는 차라면서 뭔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한다.‘그러면 그렇지’매표소로 가보니 그분들이 운이 좋아 취소된 표를 받은 것이란다. 대기한 차 승객들의 검표가 끝나고 자리는 남는데 단말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기다리는 이들을 태울 수 없단다. 몇 사람이 강하게 항의를 했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자리가 비고 기다리는 이들이 있는데 안 될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검표원도 이해가 되는지 빈자리에 기다리던 이들을 태웠다. 차표의 시간보다 20분 일찍 떠나서 차를 타고 가는 내내 하나님께 감사했다. 까딱했으면 예식시간에 늦고 인사도 하지 못할 뻔 했으니까.
차는 생각보다 느리게 갔다. 그나마 버스전용차선으로 줄기차게 달렸지만 토요일이어서인지 정해진 시간을 다 채우고야 도착을 했다. 버스내린 곳에 서 지하철까지가 멀게만 느껴졌다. 문제는 환승역에서 불거졌다. 생각보다 복잡하니 미노스의 미궁이 따로 없다. 급하다고 바늘 허리매어 쓸 수는 없는 법. 우리부부는 급해도 기계는 하나도 급하지 않았다. 그 녀석은 어떻게 우리가 촌에서 온 것을 아는지 우리를 통과시켜주지 않아서 방법을 거듭하다 결국은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어디가나 텃세가 만만치 않다고 하더니 기계까지 우리를 무시하며 위세를 부린다.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간신히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혼주 얼굴보고 식장을 잠깐 기웃거리다 식당으로 간다. 여러 번을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결혼식 참석에 하루가 다 가는데 정작 그곳에 가서는 혼주의 얼굴보고 허겁지겁 밥 먹고 오기 바쁘다.
돌아올 때도 지하철의 환승역에 있는 기계는 우리를 또 골탕 먹였다. 왜 자기를 자주 찾아오지 않느냐는, 자신의 위세를 드러내 보이는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부부를 서울 사람들의 평균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불쌍하고 무식한 이들, 완전 촌사람으로 취급하는 듯하다. 사실은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다. 나도 직장이든 친척집이든 같은 곳을 연이어 사흘만 다니면 조금도 헤매지 않고 왕래할 자신이 있다.
서울을 벗어나니 거대한 혼잡의 소용돌이에서 해방된 것 같다. 늦가을 찬바람에 한곳으로 쓸려 가는 가랑잎들처럼 땅속으로 몰려 들어갔다가 장마철 열린 수문으로 물 쏟아지듯 쫓기며 살아가는 그들. 일상의 삶에서 조차 빠르게 걷다 못해 뛰면서 사는 사람들. 그들이 더 많은 일을 할까. 사람답게 살까. 여유 있게 살까. 나는 서울과 서울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산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불쌍히 여긴다.
우리의 터전으로 돌아오니 숨이 트이고 마음이 푸근하다. 번잡하지 않은 도로와 사람들의 느린 걸음걸이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이곳은 기계가 많지 않고 나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서울 사람들은 속도를 가졌음을 은근히 내세우지만 나는 속도를 갖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우리부부가 지금 살고 있는 곳도 한가한데 아내는 야트막한 산이 자리하고 그 안에 골짜기가 있어 물이 졸졸 흐르는 자연으로 가자고 한다. 그것이 바람이긴 하지만 우리처지에 언제나 그런 곳에 들어가 살 수 있을까. 하루가 다르게 산과 들을 파헤쳐 길을 내고 공장들을 세우니 가까이에 그런 곳이 남아 있어는 주려나. 변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산사람[山人 → 仙]이 될 수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내 성(姓)이 최(崔)씨다. 그것을 파자(破字)하면 산속에 사는 새[山 + 隹]니, 그렇게 유유자적(悠悠自適) 노래하며 살날이 와 줄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 한 번 갔다 오고 산타령을 하니 외국을 다녀오면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들어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