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꼭 맞는 일

변두리1 2015. 3. 22. 00:13

꼭 맞는 일

 

 

  삼십대 후반의 생질이 수원에 산다. 시대적 현상 탓일까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어머니와 살고 있다. 성격이 조용하고 온순하면서도 특이하다. 작은 일 하나를 해도 꼭 허락을 받고 한다. 다 큰 녀석이 화장실 좀 잠깐 사용해도 돼요”, 정수기를 앞에 두고는 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하는 식이다. 독립성이 약한 것인지 결단성이 없는 것인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직업도 여러 가지를 해 보았다. 예전 같으면 평생직장의식이 있어서 한 곳에 진득하니 버티지 못하는 것이 흠이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평생직장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직장을 옮기는 것은 흉이 아니다.

 

  집에서나 주위사람들이 적잖이 걱정을 했을 게다. 전자회사에 다닌다고 했다가 한 반 년 지나 물어보면 회사가 바뀌어 있곤 했다. 언젠가는 생뚱맞게 육체미선수를 하겠다더니 그것도 한동안 해보다 안 되겠는지 그만두고 보험설계사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늘 그렇듯이 교육을 받을 때야 안 될 것 같은 일이 어디 있나. 잘 안돼서 그 일을 포기한 이들이 그 시간에 나와서 경험담을 들려 줄 리는 없다. 성공의 바늘구멍을 뚫은 이들이 격려 고무하면서 좋은 언변과 설득력으로 계속 성공담을 들려주는데, 누가 자신감을 갖지 못할까. 친인척이나 친지들에게 간청을 해서라도 초반에는 어느 정도 실적 올리기도 가능할 것이다.

  한 번 내게 찾아왔을 때 그 일에 어울릴 듯한 적성과 성격적 특성을 이야기해 주었다. 스스로는 자신이 그럴 것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니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그 일을 그만두고 후배가 하는 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설을 한 주간 쯤 앞두고 누이 집을 들렀다. 앞서의 생질이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서 이번엔 웬 식당인가 하고 의아했다. 식구들도 혹시 폐()가 될까 싶어서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하는 걸 어차피 어느 식당이라도 가야하니 함께 생질이 일하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가서보니 표정도 밝고 말과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예전에 불편하고 이상하게 여겨졌던 행동들이 그곳에서는 손님에 대한 정중한 예의와 배려로 여겨졌다. 손님들도 처음에는 어색해 하다가 매사에 손님들의 동의를 구하고 설명을 하니 생질을 친절한 직원으로 여기고, 자신들이 섬김과 존중을 받는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본인도 그 일을 즐거워하고 만족한다니 이제야 맞는 일을 찾은 것 같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는 것은 행운이다. 그런 일을 만나는 것만도 즐거운 일이다. 어떤 이들은 인생의 후반부에 그런 일을 찾아내어 열정과 노력을 쏟아 스스로를 꽃피우는 것을 보곤 한다. 자신에게 잘 맞는 일에 심취해 만족한 결과를 얻으면, 주위 사람들도 즐겁다. 반대로 어울리는 일을 찾지 못해 이 일 저 일을 기웃거리며 오랜 세월을 허비하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고통이다. 결과를 떠나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방향이 다른 두 길을 동시에 갈 수는 없다. 그것이 육체를 가진 인간의 한계다. 자신에게 꼭 맞는 일을 스스로 찾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본인의 적성과 재능을 주위사람들, 혹은 전문가가 자신보다 더 잘 알아보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 혼자서 고집을 부릴 일도 아니다. 생질이 언제까지 그 일을 지속할지 알 수 없다. 자신의 일로 알아 즐겁게 몰두하다가 독립하여 평생의 직업으로 삼을지, 아니면 그 일도 얼마 못가 그만 둘지 모른다. 하지만 주변의 한 사람으로서 보기에 그 일이 생질에게 최선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차선은 되는 듯하다.

  비록 내 생질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이들이 꼭 맞는 일들을 찾아서 그 일에 몰두하며 즐거이 살았으면 좋겠다. 내게도 이 나이에 지금보다 더 꼭 맞는 일이 나타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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