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변두리1 2015. 2. 13. 00:14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자기다움을 목숨 다해 끝까지 지켜야-

 

 

 

  1. 아지즈 네신(1915-1995)은.

 

  터키 풍자문학의 대가로 본명은 메흐멧 누스렛이다.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며 ‘베디아 네신’이란 필명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신문기자 시절 발표한 사회풍자소설과 콩트가 사랑을 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인간의 결점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풍자를 즐겨 표현했고 다양한 장르에 걸쳐 100 여권이 넘는 작품을 남겼고 많은 언어로 번역 소개되고 풍자문학상도 많이 받았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유명작가가 된 후에도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모은 재산으로 ‘네신 재단’을 설립하고 부모 없는 아이와 가난한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모든 수입을 기증했다. 자유와 평등, 화해와 인간존중, 억압에서의 해방과 새로운 인간상을 추구하는 글들을 주로 썼다. 터키인들은 그에게 딱 맞는, 키는 작지만 그릇은 큰 ‘작은 거인’이라고 그를 부른다.

 

 

  2. 글의 내용은.

 

  열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위대한 똥파리’, ‘어느 무화과 씨의 꿈’, ‘세 가지 물건’ 에서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마치 ‘달걀로 바위치기’에 비견되는 무모한 도전은 비록 성공하지 못하고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멈출 수 없는 희망으로의 달음질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한 걸음 진전되어 무화과 씨 하나가 감옥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별다른 변화를 일으키지 못해도 견고한 담 벽을 무너뜨리며 무수한 씨앗을 퍼뜨리며 이어갈 것을 다짐한다. 배도라치는 20만 년을, 홍합은 15만 년을 땅 속에 묻혀 있었고 대리석 동상은 500년이 되었지만 언제까지나 기다린다. 2500년의 세월이 더 흐르고도 대리석 동상은 인간이 파헤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가 마침내 발굴되어 태양과 공기, 물들을 만나고 책장위에 나란히 자리 잡는다. 희망의 현실화를 절대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거세된 황소가 우두머리로 뽑힌 사연’, ‘기우제와 관절염’, ‘미친 사람들, 탈출하다’ 에서는 인간사회에 만연해 있는 허위의식을 꼬집는 듯하다. 자신이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자신과 맞서는 라이벌이 지도자가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차라리 무능한 거세된 황소가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은 중우정치(衆愚政治)로 상징되는 민주주의의 허점(虛點)과 허세(虛勢)를, 누가 더 신과 잘 통하는가 하는 것이 진지한 영성(靈性)의 우열이 아니라 관절염이라는 전혀 엉뚱한 질병에 있었다고 하는 데에서 종교지도자들의 허위의식을 풍자하고 있음을 본다. 정상인과 미친 이들이 사실은 바뀌어 있다고 하는 것은 현대인들, 특히 정치인들이 얼마나 뼛속까지 허위에 함몰되어 있는가를 역설하고 있다. 정상인들이 했던 것을 거꾸로만 하면 된다거나, 미친 이들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려할 때 간청하는 이들의 모습은 희극적이며 동시에 더없이 비극적이다.

  ‘양들의 제국’, ‘자신을 죽인 파디샤’, ‘바위 밑과 바위 앞’ 에서는 민중들을 속이고 있는 거대한 음모의 세력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 존재하지도 않는 ‘갈라틴톱’을 내세우며 불안을 조성하고 가능하지 않은 양의 제국을 제시하며 양 주의(羊 主義)를 세뇌하여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나, 자신의 허상을 처치하고 다시 왕이 되는 파디샤나, 교묘히 선량한 다수를 속이고 이권을 차지하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 왕이 바뀐 줄 알고 만세를 부르나 꼭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며 그것은 설령 인물이 바뀐다고 해도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진술이다. 바위를 옮겨주겠다는 떠돌이 중도 사기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고통만 안길 뿐, 잔꾀를 부리고 떠나간다. 결국은 아이들에게 희망이 있고 그들 스스로 이사하여 ‘새 동네’를 짓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임을 보여 주고 있다.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내가 제일 운이 나빠’, ‘모래성과 아이들’은 자기정체성, 자기다움을 지키는 것에 우리의 흥망이 달려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신기하다는 것, 남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 대단해 보이는 것이 몰락의 길일 수 있으며, 남의 것이 좋아 보이고 자신의 것이 초라해 보여도 제자리를 흔들림 없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의 자리를 이탈하면 사회가 유지될 수도 어떤 기능을 발휘할 수도 없다. 모래성은 쉽게 무너지는 것이고 아이들은 과도하게 심각하지 않다. 모래로 지은 성은 쌓은 이가 누구든 파도에도 무너짐이 모래성다운 것이다. 심각하지 않은 것에 괜히 심각할 필요도 없다.

  이외에도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과 다름과 조화를 보여주는 글들이 있다.

 

 

  3. 읽고 나서는.

 

  이기적인 목적을 가진 이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본질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허위와 허세를 쫓아내고 자신의 정체성을 흔들림 없이 지키고,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희망을 가지고, 그 희망을 퍼뜨리며 자유와 평등, 화해와 해방, 인간이 존중받는 사회를 향해 느린 걸음이라도 나 있는 곳에서 조금씩 앞으로 가보아야지 하는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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