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쿵푸스》를 읽고
-공부 무엇을 어떻게-
저자 고미숙은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했다. 그녀는 책에서 김흥규라는 평론가의 강의를 들었는데 그것이 ‘고전소설 강독’이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몇 달 간의 직장생활을 덮고 한 달 동안의 ‘무대포식’시험 준비를 거쳐 순전히 그 선생에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국문과 대학원에 입학한다. 대학원과 박사과정을 거치고 써낸 책들이 “열하일기”와 “동의보감”을 바탕으로 하는 것들이었다.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한 듯한 공부공동체 〈수유+너머〉를 지나 〈감이당〉과〈남산강학원〉에서 활동하면서 인간에 대한 탐구인 “달인”시리즈와 시대적 흐름의 연구인 “근대(近代)”시리즈 등 많은 저서가 있다.
저자는 근대에 시작된 학교제도가 퍼뜨린 몇 가지의 치명적 거짓말을 언급하고 있는데 ‘공부에는 때가 있다.’ ‘공부와 독서는 별개다.’ ‘창의성이 문제다.’ 라는 것들이라고 한다. 뒤집어보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드러나지 않을까. 공부에는 때가 없다. 평생 -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 하는 것이 공부다. 언제나 할 수 있는 것, 나이가 들수록 할 만한 것이 공부다. 공부와 독서는 하나다. 독서가 곧 공부요, 독서 없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창의성이 문제가 아니라 기본이 중요하다. 원칙과 정석이, 시대의 흐름과 무관한 진리가 중요하다 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러면 근대에 시작된 학교는 왜 그런 거짓말을 퍼뜨린 것일까. 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말의 근본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근대가 요구한 기능인을 효과적으로 양성해내기 위해 같은 연령대의 동질집단을 교육과 훈련의 대상으로 삼았고 외부의 목표를 이루려니 타율적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기능인은 활용에 목적이 있으니 가장 효용성이 높은 시기가 청년기이고 그 전에 교육이 이루어져야 했다. 장년기나 노년기의 교육은 효용가치가 별로 없는 것일 수밖에 없고 권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공부와 독서는 별개라는 것은 특정영역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필요가 없고 무엇인가를 전체적으로 아는 것보다 여러 분야를 얇게 필요한 만큼만 알면 족하다는 것이다. 철학과 역사 문학으로 상징되는 인문학적 소양보다 현재에 써 먹을 수 있는 기능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창의성은 왜 대두된 것일까. 그것은 자유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영향이다. 제품의 판매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신상품의 개발인데 그것은 디자인이나 기능이 조금이라도 달라지고 차별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눈에 띄기 위한 차별화 그것을 창의성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창의성이 지속적으로 계발되려면 탄탄한 기본이 밑바탕에 있어야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했다. 현재까지의 축적된 지식을 토대로 하지 않으면 그러한 새로움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일 뿐이다.
저자의 역설(力說)은 무엇인가. 자율적인 공부를 하자는 것이다. 필요한 공부, 즐거운 공부, 스스로가 성장하는 공부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 능동적으로 하는 공부요, 그 재료는 오랜 세월동안 좋은 책으로 이미 검증된 고전이 좋다는 것이다. 고전은 누구에게나 의미가 있는 책이요, 접근하는 방향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책이다. 현대인들은 독서에 많은 감각 중에 시각만을 주로 사용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감각들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특이하거나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긴 세월동안 선인들이 해 온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몸을 움직이며 소리 내서 읽고 그것을 귀로 듣는 낭송을 하자는 것이며, 서당에서 배운 것을 다른 이들 앞에서 외우듯이 구술을 해보자는 것이다.
더욱이 공부는 함께 하는 것이 즐겁고 효과적이니 스승을 찾고, 도반(道伴)을 찾듯 뜻 맞는 이를 찾아서 “배우는 공동체” - 앎의 코뮌 - 을 이루어 함께 가라는 것이다. 뜻이 같은 이들이 연령과 환경과 직업의 차이를 넘어 함께 배움의 길에서 만나 서로의 성장을 확인하고 격려하는 것은 개인을 위하는 일일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큰 기여가 된다. 올곧고 속이 꽉 찬 개인과 사회가 이루는 국가는 얼마나 건강할 것인가.
이런 배움의 공동체가 곳곳에서 만들어져 인류의 고전들을 토론하고 서로의 삶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살맛나는 사회가 조금이라도 앞당겨지면 정말 좋겠다. 공부는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짐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탐구해서 더 넓고 높은 성숙의 세계로 나아가는 오솔길을, 같은 목적지를 가진 이들과 함께 삶을 나누며 가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즐거운 놀이요 산책 같은, 사람이 가장 할 만 한 것이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신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실천하면 더없이 행복한 삶이 되리라.
때에 맞는 동기(動機)와 적절한 자극을 주는 《호모 쿵푸스》는 내 삶에 선물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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