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행복한 사회
-김찬호저, 교육의 상상력-
인터넷에 무한한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고 했다. 그 세계에 합류해 보려고 컴퓨터를 배우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시원치 못하다. 극히 제한적이고 속도가 느리지만 컴퓨터와 친해졌고 컴퓨터에 관한 대화에서 이방인 같은 소외감만은 느끼지 않게 되었다. 오십대이다 보니 학창시절에는 컴퓨터가 일반화되기 이전이어서 학교에서 컴퓨터를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상생활에 컴퓨터가 깊숙이 파고들어 사용법을 모르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컴퓨터의 예에서 보듯, 발달해 가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학습이 필수적이다. 돌아보면 우리 사회 전체가 거대한 학습의 공간이요 그 자체로 학습사회이다. 그런데도 효율적이지 못하고 만족도가 낮고 비인간적이어서 대다수가 행복해하지 않는다. 우리사회의 종래의 인식에서 학습은 학교 울타리 안에서 학생 시절에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지금도 학생들은 현재가 고통스러워도 더 나은 성적과 상급학교 입시를 위해 행복을 유보하고 학습을 강요당하고 있다. 더욱이 그런 배움을 거쳐 얻은 지식도 실천을 통한 삶의 지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현실은 함께 경험을 나누고 대화하고 정서를 공유하면서 삶의 지혜를 배워가는 교육의 중심으로서의 가정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교육은 모두 학교와 학원에 맡기고, 자녀들에게 가정 일을 시키지 않고, 재정적 지원만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 부모 역할의 모든 것으로 여긴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어도 각자 자신의 연결망에 닿아 있어 가족 간의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그러다보니 딱히 나눌 대화도 별반 없고, 대화의 기술도 빈약하다. 저자는 이것을 호텔가족이라고 부른다. 함께 있어도 기러기가족과 큰 차이가 없다.
학생들 학습의 대부분이 학교성적과 상급학교 입시에 닿아 있어서 자발성과 흥미가 약하고 그것은 예술과 체육을 포함하여 모든 부분에 관련되어 있다. 나의 한 자녀는 “아빠, 나 학교 안 다니면 안 돼, 자퇴하고 싶어.”라는 말을 고등학교 2학년 말 까지 입에 달고 살았다. 성적과 입시에 무관한 것은 철저히 통제당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들 세대의 음악과 게임에 몰두한다. 그들은 경험의 폭이 좁아 실패해 볼 기회도 적다. 역경에 처해서 그것을 극복한 경험이 많지 않으니 일에 대한 자신감도 갖기 어려워, 익숙한 이론적인 공부와 시험 한 번으로 직업을 얻는 각종 고시를 선호하고 낯선 일에 도전하는 모험을 두려워한다.
최근에 동료 몇 명과 한 친구에게서 오카리나를 배우고 있다. 성적과 입시에 전혀 무관한 배움은 삶을 윤기 있게 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이 함께 즐겁다. 조금씩 늘어가는 기능과 지식 그리고 교육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경험과 정서의 공유가 모두 소중하다. 예술성이 갑자기 늘어나지는 않지만 그 가운데 삶을 나누고 서로의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한다.
공자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라고 했다. 고전 특히 한문은 해석의 폭이 넓은데, 지은이는 영역(英譯)과 신영복씨의 해석을 인용하면서 ‘시(時)’를 ‘지속적으로’ 혹은 ‘적절한 시기’로, ‘습(習)’을 ‘적용(適用)’으로 풀어준다. 지속적으로 배우고, 혹은 배운 바를 적절한 때에 적용하면서 얻는 즐거움을 표현한 것으로 평생학습사회에 어울리는 구절로 들고 있다.
평생학습은 학교라는 제한된 시ㆍ공간을 넘어서 생활의 터전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학교의 담장을 넘어 지역사회 곳곳에서 세대와 직업을 초월하여 서로가 배우고 가르치는 거대한 흐름이 형성되어 함께 행복한 사회를 이루는 것은 멋진 일이다. 타율적인 공부의 틀에서 벗어나, 즐거운 놀이도 되고 경험의 축적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삶의 격을 높이는 신나는 학습의 장이 열려야 한다. 시대는 발전하고 있는데 교육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듯하다. 삶의 의미가 약화되고 가정이 흔들리고 인간관계는 파편화되고 정서는 메말라지고 지역공동체는 사라지고 있다.
이 교육의 위기 속에 습득해야할 지식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해 배움의 기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기능교육이 강조되면서 인성교육은 더욱 위축돼 가고 있다. 모두가 무한경쟁에 돌입하여 상대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바쁜 모습이 마치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을 연상하게 한다. 그 결과 서로를 향한 경계와 불신, 미래에 대한 끝없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 부모들의 교육열은 뜨겁고 학생들의 교과에 대한 지식의 습득은 많으나 학구열은 싸늘한 것이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이다. 게다가 습득한 지식들도 시험에는 유용하지만 현실에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현실의 문제는 영역이 파괴되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학문의 칸막이로 경계 지워지고 기본적인 원리만을 따르는 단순한 지식의 이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나마도 배운 지식의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져서 학교교육의 효용성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학교교육의 위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 상황은 심각하다.
교육을 학교와 가정이 모두 감당할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학교를 넘어, 사회구성원 모두가 참여해서 교육의 짐을 나누어야 한다. 학교는 기초적인 지식과 교육의 방법을 알려주고 실제적인 교육은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평생토록 실행해야 한다. 여러 지자체에서 “평생학습도시”를 내세우며 많은 실험들을 하고 있다. 이미 해오던 것을 흉내 내는 것이나 프로그램을 옮겨 놓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인적자원을 발굴하고 현실적이면서 지속가능한 여러 가지 형태를 개발해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더 좋은 모델들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만들어 가면서 끊임없이 발전시켜 가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책무이다.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지역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평생교육사회가 시대적 과제로 우리 앞에 나타나 우리의 응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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