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인간 그리고 공존의 이야기
- 조홍섭의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환경과 과학 분야의 기사와 칼럼을 30년 가까이 써 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라 불리는 조홍섭은 이제는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자연과 후손들과 지구의 미래를 위한 성찰을 해보자고 한다. 개발의 시대를 거쳐 보존과 공존의 시대를 살고 있다. 너도 나도 환경과 자연을 말하는 때가 되었다. 책은 지식과 재미를 더하고 자연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든 들여다볼수록 신기하고 흥미롭다.
1. 살아남기
생물은 살아남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탐바키라는 물고기에게 먹혀 종족의 확산을 이루어야 하는 나무열매들과, 새들의 소화기관을 통과하여 번식과 종족보존을 하는 작은 크기의 달팽이들. 생존을 위해 먼저 사람을 선택하고 가축의 길로 들어서서 현재 350품종 4억 마리의 개로 인간과 공존하고 있는 늑대의 후손들. 탁란(托卵)을 사이에 둔 뻐꾸기와 뱁새의 치열한 속이려하고 속지 않으려하는 오랜 경쟁이 흥미롭다. 어린 도룡뇽과 버들치, 잠자리 애벌레와 블루길, 메뚜기와 거미 등에서 보이는 포식자로 인한 피식자(被食者)들의 처지는 슬프고도 냉엄한 생존의 세계를 보여준다. 포식자의 존재로 두려움을 느끼고,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먹이 섭취가 어려워 성장이 억제되고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늘어나 면역력이 약해져 잦은 감염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농촌보다 도시녹지에서 심지어 자연보호구역보다도 도시지역에 다양한 생물이 분포한다는 것은 자연의 역설(逆說)이요 경이(驚異)로움이다. 비옥한 땅에서는 강한 종(種) 한둘이 전체를 점령하지만 척박한 곳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결핍을 극복한 종들이 작은 영역을 차지하며 살아가는, 곧 생물의 다양성이 비옥함이 아니라 결핍의 결과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2. 미생물
곰팡이로 감염되는 병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합친 것보다 생태계에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분석은 공포감을 준다. 곰팡이가 매년 6억 명분의 곡물수확의 감소를 초래하고 5대 작물이 동시에 타격을 입으면 42억 명이 굶주릴 기근이 되리라는 경고는 섬뜩하다. 생물 멸종을 초래하는 병원체의 70 %가 곰팡이며, 2억 5천만 년 전 세계의 숲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주역이 곰팡이라고 한다. 더구나 버섯 하나가 날리는 곰팡이 포자가 지구 인류보다 많고 잔나비불로초 버섯은 6개월 동안 생산하는 포자가 5조 4천억 개에 이르고 포자는 어떤 악조건도 견뎌낸다고 하니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이들뿐만 아니라 세균들도 만만하지 않다. 1만 미터 상공에서도 미생물이 번창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정한 조류와 곤충들이 일정고도로 장거리 이동을 하지만 어떤 미생물들은 이들보다 훨씬 높은 고도까지 열대폭풍을 타고 이동하며, 이들은 기후와 기상변화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인류는 철새들에 의한 질병의 확산뿐 아니라 열대폭풍에 의한 전염병의 창궐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1만 미터 상공의 공기 1㎥에 15만 마리의 세균이 검출되고 그들 중 60% 이상이 살아 있었다는 점이다. 미생물은 주변만 아니라 우리 몸에도 약 100조 마리 가까이가 산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 몸 세포의 10배이며 무게로도 1-2㎏에 이르며 확인된 것이 1만여 종에 그들의 유전자만 800만 개가 된다고 한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퇴치의 대상으로 삼던 이제까지와는 달리 인체 미생물과의 공존을 지향한다.
3. 인간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은 덩치가 크고 숫자가 많으며, 입이 작고 턱 근육이 약하며, 오래 산다는 등의 몇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인류는 지구의 농산물 생산의 25-40%와 해양 식물 플랑크톤의 광합성의 25-35%, 지구표면 대지의 30-50%와 담수(淡水)의 절반가량을 사용하고 있다. 이로인한 결과가 질소의 과다한 사용과 영양과잉으로 나타나고 있다. 질소는 단백질의 주요성분이고 식물의 필수 영양소이지만 오늘날 인류는 자연계에서 만들어내는 이상의 질소를 쏟아내서 플랑크톤이 번창한 바다는 산소고갈로 죽어간다. 인류는 자원ㆍ에너지의 고갈과 영양분ㆍ이산화탄소 과잉이라는 전례없는 지구차원의 위기를 스스로 초래한 첫 생물로 홍적세를 잇는 지질시대에 그 이름을 붙일 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인류식량문제의 해결책으로 곤충이 떠오르고 있다. 우리는 이미 알든 모르든 곤충을 먹고 있다. 쌀바구미 애벌레는 비타민을 공급하고 건강에 영향이 없다는 곤충이 밀가루 100g당 150개, 초콜릿 100g당 60개, 국수 225g에 225개에 이른다. 적어도 전세계 20억 명이 곤충을 먹고 있다. 오히려 곤충을 먹지 않는 나라가 예외일 정도이며 1,900여 종이 식용으로 쓰인다. 곤충은 단백질, 지방, 비타민, 섬유질, 미네랄 함량이 높은 건강식으로 사람이 직접 먹거나 가축사료로 할 수 있는데 환경에도 도움을 주고 가난한 나라에서도 기술과 자본 없이도 영양과 소득원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식량문제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세계종자저장고가 노르웨이 정부의 지원으로 2008년에 지어졌다. 이곳에 종자를 보관하면 보리 2,000년, 밀 1,700년, 사탕수수는 20,000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한 채로 보관된다. 세계에 종자은행 또는 유전자은행이 1,400개가 있지만 그 은행들도 귀중한 종자를 900만 달러가 소요된 이 스발바르 저장고에 맡기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내작물 13,000종을 이곳에 맡기고 있다.
4. 공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이야기할 때 아마존 열대우림만큼 적절한 예는 없으리라. 그에 상응하는 아마존에 대한 오해도 적지 않은데, 대표적인 것이 이곳에서 방출되는 산소가 지구전체의 80%라는 것이나 이 주장의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아마존처럼 오래되고 성숙한 숲에서는 생산된 양만큼의 산소가 소비된다는 것이 과학계의 상식이다. 산소의 생산으로는 오히려 바다 속 플랑크톤이 지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아마존에 대한 더 심각한 오해는 “사람의 손길을 차단해야 아마존을 지킬 수 있다” 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존에 대한 권위 있는 연구자들은 “인간은 아마존을 그대로 둔 적이 없다. 1만년 이상 된 열대우림 대부분은 순수하지도, 원시적이지도 않았다. 초기 문명이 성공적으로 아마존에 정착했다면 다시 성공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라고 묻고 있다. 아마존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상당부분 환상으로, 아마존은 지구의 허파가 아니며, 지구를 위해 아마존 주민들의 삶을 유보하고 개발을 억제하자는 주장은 심각한 주권침해다. 자연으로부터 사람을 내쫓는 방식의 자연보호는 성공한 적이 없다. 자연의 현명한 관리가 중요하다.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자연을 지혜롭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자연은 사람과 분리되었을 때보다 자연 속에 사람을 받아들일 때 더 ‘자연적’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을 현명하게 이용하고 보전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5. 이야기와 숲
지리산 바래봉 산철쭉 군락은 양떼가 만든 이야기가 있는 숲이다. 이 산철쭉 군락은 1968년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도 면양을 길러 농가소득을 올려보자고 말한 데서 비롯된다. 1972년 운봉에 한국ㆍ호주 면양시범농장이 설치되어 5월부터 10월까지 양들을 바래봉 일대에서 방목했는데, 양들이 다른 풀이나 나무는 모조리 뜯어먹었지만 독성이 있는 철쭉은 먹지 않아 살아남은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경제성이 떨어져 양들의 방목은 중단되었지만 무성해진 산철쭉은 전국제일의 군락지로 알려졌고 한 달도 안 되는 개화기동안 약 20만 명의 인파가 꽃구경을 온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1만 2000명이던 인구는 이제 4,300명이고 그 절반은 노인이다. 가진 것은 그동안 애써 지키고 가꿔 온 철쭉뿐인데 양떼가 떠나고 세월이 흐르니 산딸기와 미역줄나무 등 다른 식물이 침입하여 산철쭉 군락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잡목을 제거하고 산철쭉을 심어 경관을 유지하려하고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정상 숲으로 가는 징조인 산딸기를 베어내고 제자리가 아닌 산철쭉을 심는 것은 국립공원 능선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라며 정상적인 숲으로 되돌리려 한다. 목양이 이룬 대규모 산철쭉 군락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없을 것이며 그것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동적인 모습도 가치가 크다. 이처럼 이야기가 있고 학술적 가치도 있는 숲을, 산철쭉만 잔뜩 있는 흔한 숲보다 격조 있는 구경거리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자연은 신비하고 우리와 후손이 지속적으로 살아가야할 생명의 품이다. 그러나 인간중심의 사고와 안락한 삶을 위해 산업화, 현대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자연을 지나치게 훼손해 왔다, 이제는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지속가능한 개발과 자연을 향한 보호를 넘어 생명과 공존을 깊이 있게 성찰할 때가 우리 모두에게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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