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우리 속의 영선이

변두리1 2014. 12. 3. 17:22

우리 속의 영선이

 

  영선이는 세 달쯤 전에 우리에게 한글을 배우러 온 꼬마다. 이제 초등학교 이 학년이 되는데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쓸 줄 모르고 우리말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한족(漢族)이고 아버지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서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익힐 환경을 갖지 못한 탓이다. 아이의 고단하고 힘든 삶이 느껴진다. 몸피도 작고 말과 글도 잘되지 않으니 친구들과 어울리기가 만만하지 않으리라. 그 아이의 잘못이 무엇이 있나.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너의 어머니도 숱한 어려움을 겪었고 또 겪고 있으리라. 너를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우랴.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음이 더욱 속상할 것이다.

 

  이제 아홉 살의 아이가 마치 넓은 바다에서 홀로 거친 파도와 싸우는 것 같다. 어른과 아이들이 별 생각 없이 툭툭 던지는 눈빛과 말들이 아이에게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짐일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릿해진다. 한글과 우리말이야 나이 들면서 불편을 모를 만큼 해결되겠지만 어려서 받은 숱한 상처들은 지워지지 않고 평생을 가리라. 영선이가 삐뚤빼뚤 작게 사람과 집을 그린다. 아이가 그리는 그림의 의미는 무얼까. 소외감일까, 내재된 불안감일까. 세 달의 세월이 흘러가고 여럿이 함께 있어도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하다. 힘이 없는 이들에게 의도적으로 피해를 주려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평생 마음의 상처로 남게 될 아픔을 사회적 약자들에게 줄 수 있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우리사회가 보다 큰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영선이네 같은 다문화가정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성폭력이나 남여차별에 쏟는 관심의 반 정도만 기울여도 그들의 많은 아픔이 줄어들고 사회적 갈등과 고통이 예방될 수 있으리라.

 

  영선이 어머니는 적당한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와서 아이를 태우고 간다. 어리기도 하거니와 아이에게 어머니의 애정을 보여줄 좋은 기회도 되어서 인듯하다. 아이든 어른이든 가족들이 수시로 서로의 사랑을 보여줌이 바람직하다. 충분한 사랑을 받고 사는 것이 행복일 뿐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그리고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게, 쌓이는 힘이다. 반면에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하면 자존감을 높게 갖기도 어렵고 다른 이들의 도움을 감사함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가정에서 넘치게 사랑을 주고 받음이 너무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들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게 된 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한 세대 전만해도 세계 어디에서 대한민국을 그리 알아주었고, 우리 기업 중에 세계인이 기억하는 것이 하나라도 제대로 있었을까. 많이 안다고 해도 중국의 변방쯤으로 알고 한국전쟁과 지독한 가난, 민주화되지 못한 나라, 남북한을 구분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우리가 다문화가정을 얕잡아 본다면 그야말로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하는 것”이다. 이제는 예전 우리가 아메리카드림을 꿈꾸듯이 주변국 사람들이 코리아드림을 꿈꾼다. 우리 것 가운데 세계화되는 것이 늘어나고 세계적인 위치에 오르는 기업과 개인들이 많아져 간다. 여러 면에서 도움을 받던 처지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경제적인 면, 종교적인 면, 문화적인 면 등 다방면으로 강자(强者)의 위치로 한발자국씩 나아가고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우리를 보고 용기를 얻고 그들의 성장모델로 우리를 꼽는다. 자랑스러운 일이나 동시에 책임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할 일이다.

 

  우리사회의 발전과 함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주변의 여러 나라로부터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다가 온다. 약자가 되기 쉬운 그들을 어떻게 품는가가 우리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尺度)다. 졸부들은 과거를 잊고 빈자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오만한 극단성(極端性)을 보인다. 양식 있는 이들은 강자에게 당당하고 약자에게 겸손해서 누구를 대하든 차이가 없고 삶에 여유와 상대를 위한 배려가 있다. 우리사회가 더욱 살기 좋아질수록 더 많은 영선이가 생겨날 것이어서 미리 지혜를 모아 대비하면 함께 사는 좋은 세상을 이루어 서로의 설움과 눈물이 줄어들 것이지만, 준비하지 않으면 약육강식(弱肉强食)이 판치는 들짐승들의 세계처럼 살벌하고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불안한 세상이 되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우리사회 전체에 커다란 고통이 될 것 같아서 적잖이 걱정이 된다.

 

  우리사회에 이주민이 오늘날처럼 많아진 때도 없었으리라. 항상 단일민족을 우리의 특징이요 자부심으로 내세워 왔는데 이제는 그 점이 세계화에 걸림돌로 여겨진다. 조화로운 다민족 국가는 큰 어려움 없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문화적 충격도 그다지 받지 않는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지구촌을 외치는 시대에 다문화가정은 우리의 이웃이라기보다 이제 그냥 우리 속에 포함된 한 가족이다. 우리말과 외래어가 공존하고 원산지의 구별 없이 꽃과 나무가 함께 피고 자라나듯 서로 어울려 한 세상을 살아감이 행복이 아닐까.

'변두리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탄절- 그때와 지금  (0) 2014.12.20
첫 눈 오는 날에  (0) 2014.12.07
어느 시각장애인의 고백에서  (0) 2014.11.26
유연성(柔軟性)을 지키려  (0) 2014.11.21
새벽녘의 꿈  (0) 2014.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