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의 꿈
새벽녘에 어린 시절 추억이 고여 있는 곳의 꿈을 꾸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곳은 산 아래 꼭대기 집이었다. 없는 길을 낸 듯, 외돌아 앉은 집으로 마당 가운데 장독대가 있고 그 너머로 평소에는 흐르지 않다가 장마 때에나 물이 흐르는 작은 도랑이 있었다.
꿈속에는 그 도랑에 넘실넘실 물이 흐르고 있었다.
도랑에 가까이 우리 집 펌프 우물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 다수가 공동 우물을 이용했는데 언제부턴가 한 집씩 단독 우물을 파기 시작해, 공동우물이 무색해져 얼마 가지 않아 눈치가 보여 우리도 판듯했다.
공동우물보다 훨씬 편리했다. 물 긷는 시간도 들지 않고 물을 힘들여 운반하지 않아도 되었다. 펌프는 언제나 한 바가지 물을 붓고 쿨럭쿨럭 펌프질을 하면 콸콸 물이 쏟아져 나왔다.
마을 사람들은 펌프 때문에 만나는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었을 게다. 취수도 세탁도 가정에서 해결하고, 텔레비전이 가정마다 생기면서 집집마다 그 앞에 모여앉아 많은 시간들을 보냈다.
가정마다 펌프가 놓이기 전에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다른 집 얘기도 많아서 직접 대하지 않아도 근간의 형편을 알 수 있었고 친숙했었다. 그 때는 각 가정과 아이들도 적지 않게 알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기억나지 않으니 자연스레 가명일 수밖에 없지만 아랫집 은수네, 그 옆집 운용이네, 절집 기태네, 돌아 오르는 명숙이네, 인구네. 그 밑에 순구네, 우리 아래아래 집 무희네, 태용이네, 담배 집 주현이네….
그 집들을 부르는 명칭도 재미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꼭대기 집이라고 했고 어떤 집은 바위백이 집, 공동 샘 집, 쌀 집, 목수네 집이라고 불렀다.
한여름 밖에서 뛰어 놀다가 돌아오면 펌프로 달려가 한바가지 물을 퍼 마시고 세수하는 게 순서였다. 그 때는 태반 급하게 펌프질을 해보아도 힘없이 덜컹거리곤 했다. 그러면 습관적으로 옆에 놓인 함지박의 물을 떠 붓고는 빠르게 펌프질을 했다. 어떤 때는 한 바가지로 해결이 됐지만 경우에 따라 서너 바가지의 물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펌프 곁의 예비 물은 항상 넉넉했다.
최근에서야 그 물이 꼭 필요했던 것과 그것이 마중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었고 이름을 몰라도 불편함이 없었지만 새삼 그 역할의 중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꿈에 나타난 유년의 추억이 고여 있던 곳들에서 아물아물 살아난 기억들이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 주면서 잊었던 것들 가운데 의미가 있는 것은 없느냐고 내게 묻는 듯하다.
잃어버린 이웃들, 헐렁해진 인간관계, 내 가정 중심으로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은 아닌지를 사십여 년의 세월을 더듬어 돌아본다.
마을에서 알고 있는 이들, 관계가 형성된 가정들을 꼽아보니 내가 현대판 산골마을이나 작은 외딴 섬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나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내심 좋아했는데 그것이 커다란 착각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 꿈은 내게 무엇을 알려 주려했을까.
펌프 옆에 항상 그득히 담겨 있어 언제나 퍼 쓸 수 있었던 마중물. 그 원리는 몰라도 깊은 땅속의 물을 마중해 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씨앗 물 같은 역할이 내 할 일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 마디의 위로와 격려로, 따듯한 관심과 삶에 대한 인정으로 지치고 힘이 바닥난 이들에게 근원의 에너지와 맞닿을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일까.
오늘 내 주변에서 마중물 같은 사람이 되어 콸콸 물이 솟게 하고 그 물을 넘실거리며 흘러가게 하라는 것이 새벽녘 꿈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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