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거미의 다짐

변두리1 2014. 9. 19. 00:18

거미의 다짐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거미가 되어보자. 백여 년 전에 프란츠 카프카 라는 이가 사람이 벌레로 변한 이야기를 쓰기도 했으니 상상으로 못할 바도 아니다.

 

  나는 한 마리 거미가 되어 이층집 난간에 며칠째 자리 잡고 있다. 지상으로부터 사오 미터 되는 곳에 집터를 잡았는데 이곳을 누구든 자기 소유라고 우길 순 없으리라. 사람들이 가끔 자기 땅이라고 하는데 그건 말 그대로 땅이지 공중까지는 아니다. 공중은 말할 것도 없이 땅도 자기들이 몇 년이나 산다고 자기들 것이라 하나. 그들은 사라져도 땅은 여전하다. 사람들이 종이를 건네고 사고판다 하지만 자연은 누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재능으로 한 나절 고생하여 견고하고 통풍이 잘되는 집이자 일터를 건축했다. 일을 마치고 얼마 안 되자 먹이가 제 발로 걸려들어 배를 채우고 늘어지게 한숨을 잤다.

  두런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어 보니 늦은 저녁 무렵. 바람도 한 줄기 불어오고 이글거리던 태양도 서산을 넘고 있어 상쾌하다. 모녀가 계단을 내려오며 나누는 대화를 들으니 벌레들이 난리인데 내가 일부라도 그들을 처리해주니 고맙다는 얘기다. 그 끝에 나를 익충(益蟲)이라 했다. 그들의 이기성(利己性)이 귀에 거슬린다.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판단이다. 내가 저들을 위해서 벌레를 잡는다는 것은 전혀 사실도 아니고 사리(事理)에 맞지도 않다.

  가끔은 내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온다. 그들은 나에게 인간들을 조심하라고 얘기한다. 인간들은 지극히 기분대로 행하기 때문에 언제 우리들 건축물을 망가뜨릴 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우리를 눈도 깜짝하지 않고 죽이기도 하고 그러고도 전혀 죄책감은 물론 미안한 기색도 없단다.

  나는 친구들에게 진찬(珍饌)을 대접하며 모녀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런 말을 믿고 안심했다가는 언제 어려움을 당할지 모른다고 하면서 집을 망치고 생명을 잃은 가족과 친지들의 경우를 수없이 열거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 모녀는 착하고 순해 보였다.

 

  다음 날 저녁. 딸이 어디를 갔다 오는 듯 했다. 모녀는 사이가 좋은지 매번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때는 바람이 건들 불어서 뭔 얘긴지 정확히 듣지 못했는데 딸은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채로 몇 번을 툴툴거렸다.

  쪼르르 방으로 들어가나 싶더니 길쭉한 통을 들고 우리 집 가까이로 오더니 갑자기 치익 하고 어떤 액체를 뿌려댔다. 그 짧은 순간에도 견디기 힘든, 죽을 것 같은 고통과 온몸의 마비가 엄습해 왔다.

  강한 바람과 나의 발 빠른 대처로 큰 어려움은 면했다. 또한 한창 때라 오래지 않아 몸도 정상으로 회복은 되었지만 인간들에 대한 나의 신뢰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들은 전혀 이성적(理性的)이지도 않고, 모든 생명체가 지구라는 초록별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식도 없었다. 자기들끼리라도 오순도순 사이좋게 살아 가는 가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속고 속이고 치고받고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하며 이 땅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스스로 만든 돈이라는 물건 때문에 자신들이 어려움을 겪고, 자신들을 오히려 해하고 있다. 그들은 철저히 이중적 잣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하다. 그치지 않고 전쟁을 하면서도 평화를 지키자고 큰 건물을 짓고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돈을 위해 아이들을 동원해 무분별하게 개발을 하면서도 자연을 보호하자고 목청을 돋운다.

 

  우주의 재판장이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고 침묵해서 그렇지, 생명 있는 모든 것을 동등하게 인정하고 갑을관계(甲乙關係)없이 판단을 한다면 가장 무거운 형벌을 받아야 할 존재는 인간들일 것이다.

  아마도 인간들에게 그런 처벌이 내려진다면 우주의 수많은 생명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마당 한쪽 구석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내 집이 있던 곳에 또 다른 우리족속이 어느 새, 자신의 새 집을 짓고 편히 쉬고 있다. 저기가 집터로 길지(吉地)일까 흉지(凶地)일까….

 

  이제 나는 저들 눈에 띄지 않는 한적한 어딘가에 또 다시 튼튼하고 멋진 집을 지으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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