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그때와 지금
성탄절이 코앞인데도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십이월만 되면 거리에 쏟아져 흐르던 캐럴이 이제는 휴대전화 매장과 쇼핑몰정도에서 흘러나올 뿐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가. 예전에는 성탄카드도 보내고 받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문자메시지나 그림과 사진이 온다. 손으로 직접 쓴 글들이 보고픈데 우편함에는 온갖 광고물과 고지서만 쌓이고 손 편지나 성탄카드는 점점 더 접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예전의 어딘가 낯설지만 한편은 정겹고 따듯하던 그 시절의 성탄절이 그립다.
성탄 무렵에는 눈도 많이 오고 춥기도 했다. 특별히 올 사람도 없고 받을 선물이 없어도 약간은 들뜬 분위기가 좋았다. 동네에 몇 되지 않는 교회 그것도 작은 교회에서는 십이월이 되면 성탄 전야의 발표회 준비로 바빴다. 큰 의미는 몰랐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참가하여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신 나고 교사들은 어린이들의 부모이자 어른들 또 전교인들에게 자신들이 지도한 아이들의 솜씨를 보여주는 것이 즐거웠다. 발표회라고 해야 성탄캐럴의 찬양과 율동 동시(童詩) 같은 성시들 조금은 서툰 연극과 웃음을 주는 얘기와 연기가 다였다.
열두시를 넘기면 조를 나누어서 새벽 찬양을 하곤 했는데 추위 속에 눈길을 밟으며 인솔자들은 조용히 하라고 하고 참여자들은 두런두런 거리며 떼 지어 걸어가서 경건하고 소란하게 “저들밖에”와 “고요하게”를 아기예수의 탄생을 전하는 사명감과 새벽을 깨우는 자부심으로 부르고는 “메리크리스마스”를 큰 소리로 외친다. 지등(紙燈)을 들고 오가는 길에 다른 교회 찬양팀 을 만나고 서로 격려를 한다.
다른 무리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그저 그런 얘기로 밤을 새운다. 내용도 없고 긴장감도 없는 함께 보낸 시간들이 세월 흐르면 추억이 되고 돌아가고픈 순간들이 된다. 밤을 새운 피곤 속에 눈뜨면 오후 서너 시, 중요하다는 성탄축하예배를 드리지 못해도 후회는 없었다.
생활이 풍요로워져 산타들의 고민이 많을 듯하다. 선물을 받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고 무엇을 받아도 시큰둥한 아이들, 낭만을 잃은 지 오래된 어른들, 어떤 것도 우리를 흥분시킬 수 없는 현실이 슬프다. 성탄이 되어도 캐럴도 없고 성탄카드도 없고 새벽송도 없는 밋밋한 풍경이 이미 너무도 익숙하다. 아기 예수는 이천년도 더 넘는 아주 오래전에 이 땅에 “사랑과 평화”를 전해 주러 오셨는데 아직도 그 “사랑과 평화”를 받지 못하고 누리지 못함이 의아하다. 아기예수 누울 구유, 태어날 마구간, 베들레헴이 모두 예루살렘 호텔의 스위트홈들이 되어서 예수께서 요즘은 낯설어 못 오시는 지도 모른다.
설과 추석에는 얼굴로 만나고 성탄이나 새해에는 엽서나 카드로 만나던 이들이 이제는 매일매일 문자와 카톡으로 만나니 모든 특별함이 일상화되고 말았다. 크게 반가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삶에서 사람들은 더 큰 자극을 찾아 헤매다 못해 현실을 떠나 가상의 세계에서 방황하고 있다. 주변의 이웃들보다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속의 아이돌과 더 친숙하다.
교회의 종소리 새벽송 캐럴을 쫓아버린 성탄절은 쓸쓸하다. 춥고 가난했던 그 옛날의 성탄절이 오히려 더 따듯하고 풍성하게 느껴지는 착각은 무엇 때문일까. 그 시절의 선생님과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가고 내가 영악한 사람으로 변해 있을까. 성탄절이 와도 카드 한 장 쓰지도 받지도 않고 이상함을 전혀 느끼지 못함이 세상이 변해가는 것인지 내가 무디어져 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교회의 거룩함도 목회자의 경건함도 믿어주지 않는 너무도 똑똑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별로 행복하지 않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성도들이 나라와 자신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마냥 행복했는데…. 사회는 점점 좋아져가고 생활은 더욱 편리해지며 재미난 일들은 안팎에 지천으로 널려있고 먹을 것은 냉장고에 가득한데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는 무엇이고 현재도 미래도 아닌 과거로 향하는 그리움은 또 어쩐 일인가. 추위 속에 내복도 입지 않고 맨발로 달려가던 그 옛날의 추웠던 교회를 이제는 온갖 첨단 시설을 갖추고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한다고 해도 더 많은 이들이 외면한다. 따듯한 방안에 누워 수십 개가 넘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며 스마트폰의 화면을 수시로 확인하면서도 허전해하고 부족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문 밀치면 우편함에 아는 이 모르는 이로부터 배달된 성탄카드 가득하고 성탄절 곤히 잠들어 있을 때 모두의 잠을 깨울만한 쇳소리 나는 새벽송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눈이 와서 오늘만 녹지 말아 옛날 성탄 시절의 풍경으로 다시 데려다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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