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마을

늦게 핀 장미

변두리1 2014. 9. 1. 12:44

늦게 핀 장미

 

  집 앞에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 담에 장미 몇 송이가 새삼스레 활짝 꽃을 피웠다. 오며가며 보는 그 꽃들이 곱다. 장미꽃들이 앞 다투어 피는 육칠월을 지나 구월 중순에 보는 그들은 조금은 늦은 듯, 게으른 듯, 그래도 반갑다. 반면에 학교 담 아래와 아파트 울타리 밑에 벌써부터 수북이 쌓여 뒹구는, 때 이른 낙엽은 측은하다. 하기는 그들이 무슨 선택의 권한이 있으랴, 자연 조건이 맞으면 꽃도 피우고, 잎도 지탱할 힘이 부치면 떨어지는 것 일 테지.

 

  사물마다 제 때가 있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이른바 전성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부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고, 가끔은 예외도 있다. 가을하면 생각나고 가을꽃의 대표처럼 알고 있는 코스모스가, 원산지가 멕시코인, 연중 피는 꽃이라는 것을 언젠가 방송에서 듣고는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번은 인터넷검색을 하다 코스모스의 개화시기가 유월에서 시월이라는 것을 보았다. 우리의 지식이 온전하기는 어려운가 보다. 멕시코의 위도가 우리보다 낮으니 어쩌면 그곳은 코스모스가 연중 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성탄절하면 겨울을 연상하지만 남반구의 나라들은 여름에 해당한다.

  절대적인 시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대관령과 진안고원 일대는 고랭지재배로 채소수확시기가 평균보다 더 빠르다. 온실의 활용으로 채소와 과일을 계절과 관계없이 손에 넣을 수 있고, 냉동기술의 발달로 상하기 쉬운 식품을 오랜 기간 보존할 수 있다. 시간의 벽이 조금씩 무너져 간다. 인간의 수명도 의학의 발달과 생활환경의 향상으로 점점 길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환갑잔치를 했지만 요즘은 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제는 육십 대는 노인이라고 여기지도 않는 분위기이다. 자신의 사회적 기능과 신체적 건강상태에 따라, 시기(時期)의 사회적 통념을 바꾸어가고 넓혀가는 삶을 살 수 있다. 팔십 가까운 노인들이 청년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하고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제까지의 상식이 깨어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일본 등을 예전에는 극동이라고 하다가 이제는 주로 동북아시아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유럽중심의 생각이 굳어진 것이지, 절대적 지식은 아닌 것이다. 기후도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아열대기후의 특성을 점차 지닌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벼의 이기작이 가능한 곳이 확대되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한층 유연한 사고가 요청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만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누구나 어디서나 실시간 지식검색이 가능한 현실은, 어설프고 고집스런 권위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증언한다.

  배움에 있어서도 고정관념의 장벽이 걷혀가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배움의 길에 새롭게 들어서는 이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학습의 여건이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좋아졌다. 이제는 시간과 거리에 관계없이 원하는 것을 선별해서 배울 수 있는 수요자중심의 학습시대가 열려 있다. 또한 시장경쟁원리에 따라 학습을 위한 사전 자격들도 점차 폐지되어져 갈 것이다. 앞으로는 졸업장이 아니라 해당 분야 자격증이 더 필요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빠른 것도 없고 늦은 것도 없는 사회를 사는 것이요, 누구의 눈치를 보아서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배우고 사용하는, 실질을 더욱 우선하는 풍토가 조성될 것이다. 자신에게 당장 필요도 없는 자격증을 수십 개씩 획득하는 이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다고 여기는 사회를 속히 보고 싶다.

 

  온갖 편리한 생활도구로 많은 시간이 절약되었지만 삶의 여유를 누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삭막해진 것 같다. 문명의 눈부신 발전으로 우리가 한결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간다고 확실히 말할 자신이 없다. 온갖 기능이 담긴 스마트폰으로 말미암아 삶에 큰 변화가 왔듯이, 우리의 사고체계에도 이제는 적잖은 전환이 필요하다. 밤 새 많은 비가 내렸다. 가을을 재촉하는 이 비로 기온이 내려가고 많은 잎들도 떨어지리라. 시절은 가을을 알리고 겨울을 준비하라고 하지만 어떤 이들은 마음으로부터 또 다른 인생의 봄을 준비하리라. 늦고 이름은 지극히 상대적일 뿐이다. 꽃 피고 잎 지는 것은 모두가 그 일에 적당한 때가 되었음이니, 곧 그 때가 적기인 것이다. 적기와 전성기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이른바 전성기가 아니라는 것은 오히려 희귀성이 확보되고 많은 이들이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능력을 펼칠 자신만의 무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길 건너 늦게 핀 장미가 무언(無言)으로 나에게 전해준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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