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마을

집 앞의 나무

변두리1 2014. 7. 31. 18:00

집 앞의 나무

 

  집에 있으면 주로 머무는 책상 앞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길 건너 아파트단지 화단에 심겨져 있어 담 너머로 몸통부터 잔줄기의 중간까지가 보인다. 그 나무를 제일 많이 보고 생각하고 교훈을 얻는 이가 나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관리인들이 힘들여 나무를 가꾸고 돌보아 주니 나는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셈이다. 그 나무는 아파트로 보면 앞마당도 뒷마당도 아닌 좌측면 화단에 있고 다른 곳에서는 일부러 보려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아도 내가 있는 곳에서는 쉽게 잘 보이니 나를 위한 의도하지 않은 배려인 셈이다.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지 두 해가 다 되어 가는데 지난겨울까지 그 나무는 내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고 그곳에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겨울에 잎들이 다 떨어지고 나무의 몸통과 몇몇 가지만 앙상하게 남으니 오히려 그 형체가 더욱 선명하게 내 앞에 드러났다. 게다가 자주 오랜 시간 그 나무를 보게 되니 다른 사물들을 연상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나무는 중간부터 둘로 나누어졌고 남녀가 서로 사랑표현을 하고 있는 듯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배 부분이 임신 팔 개월 정도로 보일만큼 불룩한 채로 서로 마주 보고 몸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다. 다른 이들은 그 나무에 그다지 관심이나 볼 기회가 없으니 의미가 없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이미 의미 있는 나무가 되어서 자주 그곳으로 눈길이 간다.

 

  오늘의 사회현실이 삼, 사십대 부부들에게 녹록하지 만은 않다. 삶의 위기는 그들이라고 해서 비켜가거나 봐주지 않는다. 사랑과 격려로 힘든 고개를 넘어야 한다. 어느 부부도 위기를 겪지 않을 수는 없다. 서로 참아주고 믿어주는 것이 함께 가는 비결이다. 그들에게 건네는 상징적인 의미를 그 나무의 모습에서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나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더니 며칠사이에 가지마다 초록색 싹들이 소복하게 올라왔다. 신기하고 경이롭다. 아무 변화도 없어 죽은 줄만 알았더니 생명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면 부부가 활기차게 살라는 자연의 깨우침인 듯하다. 이제 시절 따라 꽃피는 모습과 짙은 녹음 속에 감추어진 채로 서로 사랑하는 그 나무의 또 다른 모습을 눈여겨보고 싶다. 내 방에서 보는 정겨운 나무의 모습으로 인하여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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