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의 이사
장모님이 이사를 하시니 아침 일찍 아들, 딸들이 모여 관심을 보인다. 아침 아홉 시에 가보니 이미 이사차가 와서 중요가구와 물품들을 모두 옮기고 청소도우미 분들이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치우고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은 것은 이층에서 삼층으로 옮기기 때문이요 그것을 굳이 이사라고 할 것도 없을지 모른다. 장모님은 막내아들과 함께 사시는데 삼층에 세(貰)들어 살던 이들이 나가고 그 집으로 옮기시는 것이다.
처남 가족들은 아이들이 성장해서 비좁고 불편했었나 보다. 또 연세 많으신 어르신이 계시니 자유롭지 못한 면도 있었으리라. 특히 아이들은 아무리 잘 대해 주어도 할머니가 불편했을 수 있다. 이사라고 해도 이층과 삼층이니 거리도 전과 별 차이 없고 거하실 공간도 한 가정이 살던 곳이니 부족함이 없다. 필요한 가구 주방시설 텔레비전 냉장고도 다 있어서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매일 가게에서 함께 일하고 같이 식사하시니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처남가족들은 주거환경이 조금 더 쾌적해질 것이고 가족들의 정도 더 돈독해지고 편해지리라. 자녀들에게 마음 놓고 훈계도 하고 가정교육에도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런데도, 삼층으로 옮기는 장모님의 표정에 쓸쓸함이 묻어난다고 아내는 나에게 말했다. 딸들이 축하한다고 난(蘭)과 여러 가지 꽃들을 사다 방안에 놓아 드렸다. 저녁이 되면 그 난과 꽃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때로는 지나온 날들이 떠올라 울적해 지시거나 분주하고 시끌벅적 했던 날들이 그립지는 않으실까.
내가 장모님이라면 어떻게 느낄까. 얘들이 나를 부담스러워 하는구나. 내 나이 벌써 여든 둘이니 이제 삼층으로 올라가면 다시 내려오긴 어렵겠고 거기서 혼자 있다 죽음을 맞을 지도 모르겠다. 손자들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자녀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는데 이젠 저들이 원하지 않는 눈치구나. 이런 생각들이 많아지고 서운함이 점차 늘어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자신보다 자녀들 위주로 생각하시니 올라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는 않으셨으리라. 그렇다고 흔쾌히 그러면 나도 좋지 같은 반응도 아닌, 나야 같이 있는 게 좋지 정도셨을 것이다. 어렵기는 처남 가족도 비슷했으리라. 게다가 나이 듦의 체험이 없으니 심각하게 느낄 수도 없었을 테고 세월이 흘러 자신이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면 그때야 느끼게 되리라. 그때 어머니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느끼셨겠구나 하고. 이미 어쩔 수 없는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며 스스로 한탄할 수밖에 없는 노년의 아픔을 늦게나마 절감하게 되리라.
누구나 젊어서 삶이 끝나지 않는다면 노년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젊은이가 노인의 심정을 미리 알 수도 없으니 잘하려 해도 쉽지 않다. 세대 간 대화가 활발해지고 문학과 예술을 통해서라도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면 좋겠다. 효를 다하고 싶어도 몰라서 저지르는 불효도 적지 않은 듯하다. 노인들이 마음의 불편함이나 서운함을 마음 놓고 토로(吐露)할 수 있는 통로라도 있다면 문제의 반 정도는 해결되는 것 아닐까.
이사하신 장모님이 넓은 곳에 혼자 계시니 다른 이들 눈치 보지 마시고 딸들이 사다 드린 난과 꽃들처럼 예전 보다 더 향기 있게 밝고 즐거운 모습으로 사시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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