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사람들

이모님 팔순에

변두리1 2014. 7. 7. 09:01

이모님 팔순에

 

  이모님은 원주에 사신다. 청주에서 오랜 세월을 사시다가 서울을 거쳐 이제는 이곳에 자리를 잡으셨다. 사람이 자신의 앞날을 어찌 알 수 있을까. 한평생의 삶 가운데 즐거운 날이 얼마나 될까. 개개인의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해보게 된다. 칠팔 십, 거의 인생의 한 굽이를 사신 분들의 삶의 여정을 들어보면 힘겨운 삶이 너무도 많다. 우리민족 대다수가 격동의 세월을 살아왔으니 어느 누가 평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모도 그 쉽지 않은 삶을 믿음에 의지해서 살아오신 분이다.

 

  이모는 여상을 졸업했다고 하신다. 그 나이 때에는 중학교를 졸업한 여성들도 많지 않으니 고등교육을 받은 것은 대단한 것이다. 예쁘기도 해서 동네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을 터인데 용기 있는 사람이 미인을 차지한다고 그러한 남편을 만났다. 젊은 나이에 옷 신발 연탄 석유 온갖 잡화 등 취급하지 않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의, 지역에서 가장 큰 가게를 경영해서 적지 않은 경제적 수익을 올렸었다.

 

  그런데 그 즈음에 어떤 계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신앙생활을 시작하시게 되었다. 성격이 확실하고 빈틈이 없어서 신앙생활도 그렇게 해 나가셨다. 이모부는 신앙생활을 반대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게를 비우고 예배를 드리러 갈 뿐 아니라 헌금도 갖다 바친다고 하니 극력 반대했을 것을 어렵지 않게 미루어 알 수 있으리라. 후일에 이모의 회상에 따르면 남편의 반대도 심했고 집에 오면 자주 문도 열어 주지 않았고 맞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맞으면서도 주님을 부르면 조금도 아픔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헌금도 특별한 열심을 가져서 열의 하나는 물론 하루의 처음 판매액은 금액의 과다와 관계없이 하나님께 드렸다고 했다. 교회 목사님께서 매주 헌금을 상상 이상으로 드리니, 그렇게 해도 되느냐고 걱정하실 정도였다고 한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긴장하고 어려움을 겪은 일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이시리라.

 

  이모의 신앙생활을 몹시 힘들게 했던 이모부는 많지 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갔다. 이모는 큰 정은 없었지만 그 영혼이 불쌍해서 진심으로 복음을 전했고 이모부는 죽음을 앞두고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이모부가 죽자 이모는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마음껏 교회에 참여하고 기도할 수 있었다. 반면에 가게는 점점 어려워져 갔다. 가게는 신앙에 의해 운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경영의 원리에 따라 성쇠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이모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이미 삶의 가치관이 신앙중심으로 바뀌어서 결과를 예상하고도 그렇게 했었을 것이다. 가게는 최소한의 생계수단이었고 복음전파의 터전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가게를 조금씩 줄여 갔다. 그것은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필연적 결과였고 이모는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때쯤 음성적으로 후원하던 조카가 타지에서 목회를 하다가 청주로 와서 함께 하게 되었다. 조카는 고모를 의지하는 바가 많았을 것이고 이모는 거룩한 부담감 못지않게 인간적 부담감도 있었으리라. 그로부터 오래도록 어머니로서도 하기 힘든 헌신을 쏟아 부었다. 그 만만치 않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낮추고 목회자를 따르고 섬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목회자들은 또 나름대로 자존심과 자기 확신이 강하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바가 있음을 믿고 사시는 분들이다. 때로는 서로 부딪힘도 있었으리라. 이모가 많은 양보를 했겠지만 경험과 연륜 혹은 신앙의 차이로 줄다리기와 갈등도 있었으리라. 이제는 여든. 적지 않은 나이시니 앞으로 남은 날들은 서로 사랑과 배려로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이제는 이모도 연로한 것이 보인다. 체력도 달리는 듯하다. 약한 소리를 잘하지 않는 성격이신데 몸이 힘드니 마음도 약해지시나 보다. 자녀들이 이녀일남인데 늘 위하여 기도하신다. 큰 딸은 어머니를 모시며 경우가 분명하고 상황판단이 빠르며 정확하다. 아들은 믿음직하고 마음이 깊다. 둘째 딸은 다복하고 효성도 깊다. 이모도 자주 의지하고 힘을 얻는 것 같다. 이모는 이곳저곳 몸이 불편해도 항상 기도의 용사시고 매사를 신앙으로 사신다. 주변에서 어려운 일이 있고 잘 해결이 안 되면, 기도부탁을 하고 또 집중적으로 기도해 주신다. 가문의 신앙의 개척자요 장수로서 안팎에 많은 목회자를 길러 내셨다. 나 자신도 목회자가 되고 목회자로 살아감에 이모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 더없이 크고 현재도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간다.

 

  한 개인이 이 땅의 삶을 마친 후에도 지속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남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을 위해 산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베풀고 행한 것이 아닐까. 신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모는 대단한 거인이다. 신앙인이 아닌 이들도, 신앙인들도 높게 평가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해 주시리라 확신한다. 이모님의 노년에 신앙과 건강 그리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온 마음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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