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후회하고 힘들 걸
배가 아프다, 그것도 많이. 원인은 분명하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먹고 몸을 적당히 움직이지 않아서다. 오전에 줌(zoom)으로 세 시간 강의를 듣느라, 중간 10분여 휴식시간에 허겁지겁 아침을 먹었다. 그게 끝나자 강의로 받은 피로를 풀겠다며 주변을 한 바퀴 돌아오려 또 서둘러 점심을 해결하고 몇 시간 운전을 했다. 그릇을 비운다는 핑계로 남은 달걀부침마저 먹었다.
지나고 보면 잘못을 겹쳐 하는 때가 있는데 오늘 내가 그렇다. 오전 세 시간을 같은 자세로 있었고 많은 양의 음식을 먹고는 오후에 또 비슷한 자세로 긴 시간을 보냈다. 왜 멈추지 못했을까? 원시 수렵채집시대처럼 먹을 것 구하기가 어렵지도 않고 체력을 많이 소모할 일도 없는데다 누가 더 먹으라는 것도 아닌 데 무엇이 나로 과도한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했던 걸까?
밤이 되어 약을 먹었다. 참고 버텨 보려는 내게 약을 먹지 그걸 왜 버티려 하느냐는 아내의 말에 ‘그렇지, 약을 먹는 게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자리에 누워도 몸이 불편하니 쉬이 잠들지 못한다. 자신에게 화가 난다. 중고등학생도 아니고 왜 아직도 초보적인 어리석음을 떨쳐내지 못하는가? 결과가 뻔한 일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몸을 움직이는 일에 점점 게을러지고 있다. 오랜 세월 지속하던 탁구를 그만둔 지 오래다. 크게 후회는 없다. 그로인한 긴장해소와 부담스러움이 비슷했을 게다. 차근차근 원칙을 따르는 훈련 없이 재미로 긴 세월 몸에 익은 기술은 한계가 너무 분명했다. 지도자에게 제대로 된 훈련을 거친 이들에게 힘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건강을 위한다고 하지만 매번 같이 할 상대를 찾는 것도 어려웠다. 서로 비슷해야 운동이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한두 번 치고 공을 줍는 일이 다반사였다. 또한 자연스레 어울리는 이들이 생기곤 했는데 내 생활리듬이 그들과 달라 함께 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하지 않으니 다른 운동을 찾아야 하는데 지속이 어렵다. 혼자 하는 것으로 누구나 시도하는 체조와 줄넘기는 인내심이 없어 사흘을 넘기기 어려웠다. 친지가 자신이 사용하던 거라면서 윗몸일으키기와 자전거타기 기구를 주었다. 한 달쯤 그런대로 한 듯하고 그 후로는 어쩌다 한번씩 하고 있을 뿐이다. 유일하게 별 부담 없이 하던 것이 천천히 마을 산책하기였는데 시간을 내기도 만만하지 않고 깜빡하면 일주일 그냥 지나치기 쉬웠다. 그럴 때마다 ‘편한 세상을 살아가니 운동량이 부족한 것이라’고 애꿎은 문명 탓을 한다.
몸 움직이는 게 귀찮아 손끝이나 말로 하는 것들이 속속 등장했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많은 노동으로 몸 이곳저곳 통증을 호소하곤 하셨는데 얼마나 세월이 흘렀다고 노동을 하지 않아 운동부족으로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생업만으로도 힘들었을 부모님 세대에 비해 몸을 안 움직여 병이 난다는 이 게으른 현실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가?
식욕 수면욕 성욕이 인간의 기본적 욕구라는데 그 중에 가장 쉽게 현실에 노출되는 것이 식욕인 것 같다. 잠이야 지나치게 부족하면 아예 생활이 되지 않고 어디서나 꾸벅꾸벅 졸다 마침내 자리에 누워 잠을 보충해야하고, 충분한 양이 차면 자연스레 의식이 돌아와 눈이 떠진다. 성욕도 늘 충만하진 않고 도덕과 윤리, 그리고 주변의 눈들이 있으니 큰 용기 없이는 통제의 선을 넘기 어렵다. 하지만 식욕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내 체질과 신체조건이 그런지 소화기능이 가장 약하다. 그걸 아는 아내는 함께 외식을 하면 으레 그만 먹으라 한다. 조금은 아쉽지만 자신을 아는지라 숟가락을 놓는다. 문제는 자제하라는 조언 대신 과식을 조장하는 분위기에서다. 우리 사회는 음식을 권하는 것으로 정을 표현하고 식당에서 제공하는 일인분이 내게 많은데도 남기는 것에 익숙하지 못해 꼭 해야 할 일이라도 되는 듯이 다 비우는데 있다.
어찌 정해진 끼니뿐일까? 수시로 마시는 차와 가까이 있는 주전부리들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것들을 마련하는 것도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마트에라도 따라가면 수레를 끌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빵과 떡과 유제품을 슬쩍슬쩍 집어넣어, 돌아와 보면 적잖은 양이 된다. 냉장고에 그것들이 없으면 내 양식이 떨어진 듯 서운하고 허전하니, 내 무의식 속에는 절제하려는 의도보다 지난날 원하는 것들을 억제 당했던데 대한 보상심리가 더 많은가 보다.
고통의 끝에 늘 생각한다.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굶주림으로 생명에 위협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데 내 이런 행태는 죄짓는 일이 아닌가. 내 하고 있는 일까지 연관 짓지 않는다 해도 염치에 어긋난 일인 것만 같다. 오래 살려는 욕심은 많지 않지만 환경을 위해서라도 이 자랑스럽지 못한 욕심에서 벗어나리라. 이런 다짐이 항상 지켜질 수야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내 삶의 순간순간을 일깨우는 지침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약의 효과인지 내 몸이 어지간히 고통을 겪었음인지 아픈 배가 참을 만해졌다. 언제나 여러 면에 성숙해진 삶을 살려나, 정상을 회복하고도 이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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