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일곱 해의 마지막

변두리1 2021. 8. 29. 15:57

 

일곱 해의 마지막

 

20대는 통영과 한 여인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어. 외국물을 먹은 유명 신문사 기자이자 시인이 그 시절 내 직함이었지. 일제 식민기여서 사회 분위기는 음울하고 가라앉아 있었지만 늘 그러한 것은 아니었고 그날그날 해야 할 일들과 풀어야 할 울분들이 가슴속에 쌓여 있었어.

내 나이 스물넷이 되던 해 준 형이 결혼했어. 그날 낙안동 장안여관에서 피로연이 있었지. 한 방에 통영의 여학생들이 모여 있었지. 동료 현과 함께 그 방에 들어갔을 때 천사를 보았어. 까만 머리에 큰 눈, 긴 목에 호리낭창한 키. ‘이 여인이다하는 탄성과 함께 눈이 깜깜해지며 콩깍지가 덮이고 말았어. 내 가슴을 부글부글 끓게 하던 말들을 현에게 쏟아내고 그녀의 이름을 말하니 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르겠다고 했지. ‘천희그녀의 이름 아닌 이름이야. 통영 사람들이 처녀를 사투리로 처니라 부르는 걸 모르고 천희가 그녀의 이름이라 간직했었지.

현이 다리가 되어 내 첫 시집 저문 6월의 수선이 그녀를 향한 프로포즈가 되었건만 현의 알 수 없는 행동으로 그녀는 현의 아내가 되었어. 충격을 이기지 못한 나는 함흥의 영생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혼란과 고통을 잊고 싶었지. 그 아픔의 시기를 책속에 묻혀 살았어. 테스를 읽으면 테스를 사이에 둔 엔절이었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면 로테와 베르테르였고 그리스·로마 신화속의 에로스와 사이케였지. 20대 아픔의 내게 통영은 몇 편의 시와 산문으로 남았지.

30대의 나는 혼란의 연속이었어. 그 때는 누구도 퍼붓는 장맛비 같은 마르크스·레닌의 파도를 피할 수 없었지. 사람들은 나를 부르주아라 했지만 내 마음은 늘 가난과 흙을 생각하는 프로레타리아였어.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은 무지갯빛 신기루를 누군들 외면할 수 있을까? 가슴속 동경과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지. 고대하던 해방이 되고 고당의 비서가 되어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싶었지. 지루한 협상은 결렬되어 남북에 각각의 정부가 들어서고 기대와 달리 약육강식의 정글이 펼쳐져 세력싸움이 일어나고 숙청이 한창이었어. 혼란 속에 상처뿐인 전쟁이 일어나고 또 한 움큼의 세월이 지나갔어.

나는 왜 남으로 가지 않았을까? 여러 변명을 할 수 있지만 끝내 접을 수 없었던 기대가 있었지. 그래도 농민과 노동자가 주인이라는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과 어디든 사람 사는 데가 큰 차이가 있겠나 하는 순진함에 통영과 서울의 추억보다 정주와 함흥과 평양의 미래에 기대가 더 컸다는 게 솔직할 거야.

40, 인생의 황금기여야 할 그 시기도 혼란과 고통이 극심했었지. 난 주로 시를 쓰고 번역을 했었어. 바라기는 시를 주로 쓰고 번역을 틈틈이 하고 싶었고, 현실에서는 번역을 힘껏 하고 시를 안 쓰려 했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억지춘향으로 시의 창작에 매여 있던 때였지.

북한이 조선이 되고 나는 작가로 사회의 부속품처럼 작가동맹에 일원이 되었어. 내 나이 40대 중반일 때, ·소 작가 친선회의가 열리고 초청작가로 소련에서 벨라라는 여성 시인이 초청되었지. 나보다 열두 살쯤 어렸지만 파란 눈에 금발의 매력적인 여인이었어. 조선 작가동맹 위원장과 그녀의 통역인으로 지근거리에서 그녀를 볼 수 있었지. 작가동맹 위원장은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 병도였는데 언제부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어.

위원장 병도는 어찌하든지 그녀의 비위를 맞추려 도시와 사상과 업적을 나열했지만 그녀의 관심사는 자연뿐이었지. 위원장은 입에 침이 마르게 스탈린그라드를 칭송했지만 그녀는 볼가 강만을 이야기하고 조선의 함흥에는 관심이 없고 그곳을 흐르는 성천강을 보고 싶어 했어. 때로 오솔길을 걷고 바닷가 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악대의 찬송가를 듣고 빗속을 걸으며 비와 바람과 바다를 조선말로 뭐라 하는지를 내게 물었어. 그녀는 건강한 나타샤였지. 다시 만날 수 없기에 내가 고통스러울 때마다 흰 당나귀에 태워 기억속의 그녀를 불러내 위로 받았지.

나는 그때 수시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 때여서 써놓았던 시작 노트를 그녀에게 주었어. 시인에게 자신이 쓴 시는 무엇과 같을까? 고뇌와 시간으로 뭉친 한 토막의 생명이라 하겠지. 그만큼 그녀를 믿는다는 의미이고 내 생명의 한 부분을 늘 간직하고 있으라는 고백이었어. 조선어도 모르는 그녀가 내 시작 노트를 가지고 소련으로 돌아갔지. 그 후로도 여러 번 서로 시를 주고받았었어.

병도는 신뢰하지 못할 인간이었어. 젊은 수령이 평양에 나타나자 전설적인 장군의 개선인양 소설로 쓰고, 그게 눈에 들어 자리를 꿰차고는 동료들을 사정없이 숙청했지.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려 충성심을 보이기 위함이었지. 그렇게 사라진 이들이 임화 이원조 김남천 한효 이태준 윤두헌. 아마 더 많은 이들이 고통스런 곳으로 갔을 거야. 나를 삼수로 쫓아내 아쉬운 소리를 하러 그를 찾아간 적이 있었지. 내게 여러 번 배려를 했다더군. 내 정보를 다 가지고 있었어. 조지 오웰의 농물 농장속 나폴레옹이나 1984의 빅 브라더를 대하는 느낌이었어. 더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해 돌아 나왔지. 삼수에 있을 때 그에게서 온 편지를 보니 결국은 그도 숙청을 당해 협동농장으로 쫓겨났더라고.

결국 사회주의는 하나의 신기루요 허깨비였어. 인간의 본성과 충동도 인정하지 않았지. 문학에서도 깊이와 대조를 인정하지 않았어. 문학이 권력에 종속되고 이념의 도구가 되면 문학이랄 수 없지. 슬픔과 눈물과 고통과 어둠을 모르는 기쁨과 환희와 쾌락과 밝음만 있는 문학과 예술은 반쪽만 살아있는 불구야. 상허도 나도 질릴 수밖에 없었지. ‘자아비판자백을 강요하는 문학은 문학일 수 없어. 그것들은 자발성이 생명인데 강요 속에 이루려하니 비열한 폭력이지.

그 시절에 만난 게 옥심이었어. 나보다 스무 살 쯤 어린 그녀는 어려서 스탈린의 계획으로 중앙아시아에 강제이주 되어 그곳에 살다가 소련유학을 했던 여성으로 자기주장이 무척 강했지. 공산당은 부친께 대학 어문학과장을 맡아 달라다, 중앙당학교 교장을 시키다 청진광산금속대학 부학장 언질을 줬다가 끝내 끌고 갔다고 했어. 유학생활에서 부친을 위해 소련 국적을 버리고 연인과 헤어져 조국에 왔건만 두려움과 불안에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 말았지. 내가 벨라에게 시작 노트를 주고 그것이 유학 중인 리진선에게 들어가고 그의 노트를 옥심이 받아 그녀의 부탁으로 리진선의 노트를 내가 받아 보관하게 되었어. 무슨 운명이랄까.

40대 후반은 삼수에서 흘러갔지. 일제의 주구, 반역적 문학으로 정죄된 상허와 관계된 인물이 되어 삼수로 쫓겨나 힘들고 고달프지만 새로운 삶을 살았어. 삼수의 관평협동조합으로 가는 길에 혜산 역에서 만난 여인이 진서희였지. 삼수읍 인민학교 교원인 그녀는 시인을 존중하고 대우해 주었어. 나는 그 처지를 감당하기 어려워 시인이 아니라 번역가라 했지만 그녀는 그 겨울 혜산 역 대합실에서 내가 지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이 선한 표정으로 낭송해 주었지. 그녀는 관평조합에서 지내는 내게 어린이들의 시를 계속 접하게 해주었어. 어떤 것은 말맛이 좋았고 또 더러는 솔직하고 소박했지.

당시 나는 그곳에서 내 일이 아니지만 양사에서 출산하는 양의 새끼를 받는 일을 즐겨 했네. 새 생명,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순한 게 새끼 양이 그냥 좋았어. 탯줄을 잘라 젖은 양을 안고 어미젖을 물리고 잠시 후면 그 새끼들이 뜀질과 가댁질을 하는 걸 보는 게 큰 즐거움이었지. 어느 밤이었어. 청년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천불이 났다고 하더라고, 하늘이 낸 불, 저절로 생겨나 순식간에 숲 전체를 태우고 나무들을 서있는 숯으로 만든다는 천불, 불탄 자리에서 새로운 살 길이 생긴다는 게야. 어디에서 오지 않고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천불에 싸여 숲이 선 채로 타는 것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었지.

소멸 속에 새 삶으로 이어지는 천불을 지켜보면서 내 삶의 혼란과 고통 그리고 그리움이 역설적으로 또렷함과 열락과 반가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짙은 어둠속 혼란하고 고통스런 삶이 가장 치열한 삶일 수 있지 않을까? 빈센트 반 고흐나 동학의 전봉준 같은 삶이 그렇지 않았을까? 내 삶도 뒷날을 사는 이들에게 희미한 한 점 등불이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싶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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