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주역들
방송인이었던 손미나가 여행 작가를 선언하고 도쿄를 돌아보고 쓴 첫 번째 책이 《태양의 여행자》다. 그녀는 도쿄의 여기저기를 살피고 풍경과 유적보다는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기록한 것 같다. 새로운 곳에 가서 무엇을 보고 느낀다기보다 사람을 만나고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게다. 옛 사람들의 작품과 유적을 통해 그들을 만나는 게 여행이 아닌가 싶다. 그 내용 가운데 뒤통수를 치는 듯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들이 이 땅을 주인으로 살아간다.
‘리키샤’라고 부르는 인력거를 끄는 청년이 있었다. 스물 안팎, 옛 도쿄의 중심지였다는 아사쿠사에 살아보고 싶어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홋카이도에서 올라왔단다. “리키샤가 되려면 우선 체력이 좋아야 하고 영어와 일본의 역사 특히 아사쿠사에 대해 박식해야 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축구를 했는데, 달리면서 아사쿠사에 대해 공부하고 다른 이에게 알려줄 수 있으니 이만큼 보람 있는 일은 더 이상 찾기 어려울 겁니다.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인력거를 끌고 수시로 정확한 영어로 역사를 설명하고 사진을 찍어주고 일본어 통역도 해주며 자연스레 밝게 웃었다. 일을 다 마치고는 엽서 손수건 스티커를 개인 기념품으로 건네주었다. 그의 소개로 게이샤들을 위한 아름다운 절을 둘러보고 게이샤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자 포장마차서 친구가 됐다는 게이샤를 소개해준다. 그렇게 만난 이가 스무 살이 갓 넘은 아이 같은 외모의 게이샤 노리에였다. 그녀의 어릴 때부터의 꿈이 게이샤가 되는 것이었단다. ‘게이샤[藝者]’는 학문 악기 춤 다도에 이르기까지 한 분야의 재주를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로 예술의 장인 또는 예인이라 하겠다. 그녀는 게이샤 모집광고를 보고 큐슈에서 도쿄로 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녀를 자랑스러워했고 처음에 말렸던 아버지도 지금은 기뻐하신다고 했다. 춤과 전통악기 다도와 각종 예의범절과 화장법, 전통의상 입는 법 같은 훈련과정이 너무 힘들어 자원해 찾아왔다 도망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자신은 게이샤를 선택하기를 너무 잘했다고 여긴다며 게이샤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훌륭한 게이샤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이 전통을 중요시하는 나라니 게이샤문화도 힘써 지켜나갈 것이다.
야나카에서 아프리카의 온갖 것들을 진열해 팔고 있는 가게를 만난다. 그 가게의 여주인은 상품 하나하나를 자세히 알고 있다. 남편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한 NGO에서 일을 하고 여인은 그 남편의 일을 돕기 위해 할 일을 찾다가 아프리카의 각 나라에서 몇 가지씩 직접 구해와 아프리카를 알리고 있었다.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 사랑을 전하는 셈이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무료책자들을 고객들에게 나눠주며 아프리카를 기억해 달라고 했다. 가게 한 곳에 책을 읽는 공간을 만들어 아프리카에 관한 책들을 읽을 수 있게 해 놓았다.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만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직접 구해다 사랑과 기원을 얹어 전하는 것이 어찌 경제행위일 수 있으랴. 아프리카와 남편을 향한 사랑을 읽을 수 있다.
도쿄에서 테이블이 하나뿐인 작은 음식점을 하는 74세 된 젊은 할머니가 있다. 오키나와 출신인 그 분은 10대부터 요리를 해왔는데 몇 년 전 친구의 권유로 오키나와 붐이 일 때 도쿄로 왔다고 한다. 50대 중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여인을 돕기 위해 식당으로 찾아온 친구는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이, 친구가 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는 멋진 이야기를 한다. 그들 모두가 다이버 친구들이란다. 식당 벽에는 다이버들과 그들과 함께 있는 할머니 사진이 붙어있고 아예 일주일에 하루 목요일에는 손님을 받지 않고 회원들이 정기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할머니가 젊게 사는 건 지난 70회 생일에는 후지산을 등반해 일출을 보았다고 하고 그 겨울에는 스킨 스쿠버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매년 한 가지씩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고 한다는 말에서 얼마나 신나고 젊게 사는지를 볼 수 있는 듯하다.
자신들이 하는 일에 경제적인 것 이상의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며 능동적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 세상에 끌려가지 않고 세상을 스스로 끌고 가는 인상을 받는다. 하는 일에서 행복과 자부심을 찾고 여유가 있음을 느낀다. 그들 중 누구도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나? 내 젊음을, 내 인생을 어디에서 보상받는가 하는 원망과 울분을 찾을 수 없다.
내 주변에는 자신의 하는 일을 원망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환경만 받쳐주었으면 지금 이러고 있을 내가 아니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듣는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을 하는 이들도 나름대로 불만이 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원망과 서린 한을 어렵지 않게 듣는다. 이들에 비해 현재 하는 일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고 밝게 사는 이들이 보기에 좋다.
글쓴이가 도쿄를 여행한 것을 기록했으니 만난 이들이 대부분 일본인이다. 그들에 대한 과거의 역사에서 우러난 감정이 좋지 않아 그렇지 어찌 개개의 일본인이 큰 문제라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인정이 쉽지 않으면 같은 시대에 지구라는 별에서 살아가는 세계인이라 생각하자. 그들이 한쪽 구석을 든든히 받쳐주니 이 땅이 평온한 것 아닌가? 자신의 할 일을 즐거움으로 사명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행하는 이들로 이 땅이 밝고 살만한 곳이 되는 것 같다.
내 삶이 과거에 머물 것이 아니라 미래에 눈을 두고 오늘을 살아 미래가 나를 이끌 수 있다면 좋겠다. 미래를 보며 오늘을 열심히 살자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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