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논란
십오 분에서 삼십 분을 기다리며 지켜보다가 가시란다. 책을 보고 있지만 마음의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 20여분이 지났다. 병원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허전함이 밀려온다. 이게 다인가? 근 일 년 가까이 온 인류가 백신을 기다렸다. 기약 없던 백신이 개발되고 분배와 접종에 또 말이 많았다. 우리나라 정부는 백신확보에 소홀했다고 많은 질타를 받았다.
백신접종이 시작되니 이제는 부작용논란이 만만치 않았다. 곳곳에서 사망자가 나오고 한때는 백신이 공포였다. 당국은 백신접종 후 사망률을 0.0027%라고 했다. 십만 명당 2.7명인 셈이다. 그러니 안심하고 맞으라며 부작용보다 접종으로 인한 유익이 훨씬 크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개인으로 보면 결정이 쉽지 않다. 생명에 여분이 없고 십만 명 중 두셋이 내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어서다. 언론의 속성이 예외적인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니 부작용과 사망사례가 자주 눈에 띈다.
백신예약을 했는데 문자가 오지 않았다. 별게 다 신경을 쓰게 하는 게다. 병원에 문의해보니 예약된 시간에 오란다.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신경이 계속 쓰인다. 접종 후 열이 나면 복용하라는 특정 약을 구해다 놓았다. 출근하는 막내에게 접종인사를 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하는 자신을 느꼈다. 시간에 늦지 않게 병원에 가니 한산하다. 예비정보 수집과 동의를 받기 위래 질문지에 기록을 했다. 담당의사와 상담을 한 후, 주사실에 들어가 백신을 맞는 실제시간은 아주 짧았다.
접종확인서를 준다. 이제 역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인가?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은 이 역병의 광풍에서 벗아 날 수 있을 게다. 그때에야 지금의 대응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으리라. 최근 며칠 사이에 접종과 예약에 관한 상반된 두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기도 하다.
며칠 전 우리 지역의 일간지에 실린 기사는 어느 지자체에서 60~74세 노년층의 예약률이 마감 하루를 앞두고 83%를 넘어섰다. 전국적으로는 당시 77%였고 최종이 81.6%였다. 그런데 그 지역의 9개 읍 면 직원과 이장들이 예약률 제고를 위해 미예약자들을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지나치다는 생각을 한다. 과잉행정이다. 마치 목표를 100%로 정하던 군사정부시절을 보는 것 같다. 접종에 부정적이거나 원하지 않는 이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획일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해 기껍지 않다. 민주주의와 개인의 존중이란 면에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또 한 가지 사례는 잘 아는 분이 백신접종을 하러 병원을 찾았단다. 의사는 그분에게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접종여부를 선택하라고 해서 잠시 고민하다 백신을 맞지 않고 귀가했노라고 했다. 그 의사가 과잉친절을 베푼 것이 아닌가 한다. 백신을 맞으러 병원을 찾은 이는 적어도 두 번의 선택을 스스로 한 셈이다. 한 번은 접종을 위한 예약이고 다른 한 번은 약속한 일시에 병원에 간 것이다. 국가적 시책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접종을 권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이가 접종을 두 번이나 선택한 이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제공해 거절할 빌미를 준 것이다. 의사는 접종 대상자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려 했다고 할 게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인류는 또 하나의 도전을 극복해내고 있다. 앞으로도 질병과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게다. 세월이 흐르면 지금의 시절을 회상하며 함께 나눌 화제 거리가 될 수 있으려나?
이 질병의 터널을 지나며 인류가 겪은 위험성은 급작스러운 정치외적인 상황으로 힘들게 획득한 인권이 한 순간에 제한될 수 있고 그것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악용될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게다. 미처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기 때문에 대처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민주사회에서 양보할 수 없는 집회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그러한 선례를 이미 남겼다. 우리 사회뿐 아니라 온 인류가 심각하고 진지하게 돌아볼 일이다.
백신접종으로 나는 이 역병의 위험에서 서서히 벗어나리라. 앞서 혹은 뒤따라 백신을 맞고 혹은 많은 이들의 접종으로 그 위세가 현저히 약해져 모두가 벗어날 수 있을 게다. 이 지루하고 컴컴한 굴에서 벗어나 맑은 햇빛을 보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빨리 맞고 싶다. 여름에 접어든 날씨가 참으로 무덥고 텁텁하다. 그래도 내일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비가 오고 나면 하늘이라도 맑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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