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소요가 일고 멎고

변두리1 2021. 7. 13. 16:45

소요가 일고 멎고

 

연쇄점 앞이었다. 언덕으로 인해 경사진 도로였다. 한 남자가 술에 취했는지 소리 지르며 일어나려 했지만 거푸 넘어지면서 도로 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가는 쇠기둥을 잡고 있어도 불안했다. 나는 내 일이 아니면 그런 곳에 잘 머무르지 않는데, 웬일인지 그 일의 과정을 보고 싶었다. 걸음을 멈추고 웅성대며 지켜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 생면부지의 예측할 수 없는 주정꾼에게 다가가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소방차가 출동해 길가에 서고 있었다. 누군가 신고를 했나 보다. 푸른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에게로 다가선다. 인사불성인 이는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버둥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별다른 조치 없이 그를 안고 마치 아이를 어르듯 하고 있었다. 내 보기에는 서둘러 소방차에 태워 소방서에 데려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 좋을 텐데, 시간만 끌고 있는 듯했다. 나른한 일상에 구경이라고 느꼈는지 많은 이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고, 차들이 엉키기 시작했다. 좁은 골목에 커다란 소방차가 정차해 있으니 한 차선으로 차들이 피해가야 하는데, 그마져도 멈춘 채 구경을 하니 길게 밀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경찰차가 다가오더니 수신호로 차량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소방대원 중 한 사람이 신고를 한 것 같다. 처음에 출동한 소방대원은 소리 지르는 이를 여전히 끌어안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이번에는 구급차가 다가왔다. 그도 두 소방대원 중 한 사람이 불렀으리라. 구급차가 현장 한 쪽 모퉁이에 서자 뒷문이 열리고 운반용 침대가 내려졌다. 흔들리지 않도록 몸을 묶는 것 같았다. 몸부림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지만 여럿의 익숙한 손길에 제압되고 묶여 차에 실렸다. 누군가 치마 입은 여인이 함께 차에 올랐다. 짐작으로는 모친이 아닐까 싶었다. 구급차가 삐뽀삐뽀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곧이어 소방차도 돌아갔다. 교통을 통제하던 경찰마저 가버리니 파장이 되어 구경꾼들도 흩어져 제 갈 길을 갔다.

상황이 종료되고 돌아서는 순간 도로 맞은편에서 누군가 곁에 있던 이에게 지나가듯 하는 한 마디가 내게 들려왔다. “저 사람 처음 아니야, 상습범이야그랬구나.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몰라도 뚜렷한 직업 없고 형편이 좋지 못한데다 사회를 향한 불만이 많겠구나. 모친 같던 여인도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겠구나 싶었다. 좋지 않은 일을 버릇처럼 하면 가족들도 지쳤을 게다.

어느 일이든 여러 번 하다보면 불안이 줄어들고 익숙해진다. 경험이 쌓이면 시행착오가 적어지고, 습관처럼 교통경찰 부르고 구급차 요청하는 일에 익숙해지나 보다. 그래서 전문가가 되는가? 일을 처리하는 이들 중 누구도 서두르지 않고 차분할 수 있었던 것이 그런 까닭이었구나. 왜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처리를 하지 않을까 하던 내 판단이 얕은 상식에 근거한 어설픈 것이었구나.

어쩌면 연쇄점 직원이었을지도 모르는 최초의 신고인도 몇 번 같은 일을 겪어 일상적으로 신고하고, 출동한 이들도 여러 번 있었던 일에 익숙한 솜씨로 능숙하게 처리했을 게다. 반복되는 경험은 불안을 덜고 나름의 적당한 해결방법을 터득하게 한다.

중국의 한 학자는 습관들이기를 반복으로 설명했다. 습관이 형성되면 원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는데 그것이 디테일이라고 한다. 한 가지 행동을 세분화해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하고 그 과정을 줄이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이만하면 됐다가 아니라 매번 처음처럼 철저히 과정을 지켜서 무의식 속에서도 되풀이할 수 있게 되면 습관이 되는 게다. 습관이 형성되면 자연스러워지고 자신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부정적인 일을 반복하는 것은 상습적이라 긍정적인 일의 반복을 습관이라 하는 것 같다. 내게 있어 떨쳐내야 할 상습과 길들여야할 습관은 무엇일까? 탈출해야 할 상습적인 것은 게으름과 우유부단이다. 미적대거나 시간을 끌지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이면 바로바로 하는 게다. 또한 길들여야 할 습관은 자유로운 상상이다. 감정이 무딘 내 삶의 자취인지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사고의 여유와 반전을 가져오는 것이 자유로운 상상인데 이를 위해 폭넓은 유연성이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 사고의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반복적 길들이기를 해야겠다. 공통성이 없는 전혀 엉뚱한 것들을 맞붙이는 연습을 해야겠다(장마, 눈보라, 감기, 봄바람을 하나로 묶는 것 같은). 그러려면 내 사고의 영역에서 수시로 소요가 일고 멎는 일이 일어나야 할 듯하다. 아마도 가족과 아는 이들로부터 지금 뭐하고 있느냐는 말을 자주 듣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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