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소설 그리스 로마 신화

변두리1 2021. 2. 20. 10:30

소설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설화한 책을 읽었다. 이야기가 워낙 방대하니 하나의 흐름으로 꿰어내기는 어려웠을 게다. 신화자체가 어느 한 가지로 귀결되지 않고 때로 여러 형태들이 있으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게다. 그래도 그들 신화의 얼개를 잡기에는 의미가 있었다. 그 서술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신화가 전해주는 메시지를 읽고 싶었다. 소설형식의 글에서 취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쓰고 있는가, 또는 읽어 가는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신화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생각한다. 신화의 주인공은 신들이 아니다. 한 마디로 제우스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게다. 내 보기에는 신화의 주인공은 인간들이다. 그 때 프로메테우스가 의미가 있다. 인간을 만들고 인간의 편에 서고 인간을 위해 태양마차에서 불을 훔쳐다 준다. 제우스에게 밉보여 카우카소스 산의 절벽에 쇠사슬로 묶이고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는 형벌을 받지만 영웅적인 모습을 잃지 않고 인간들을 위한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 헤라클래스의 도움으로 형벌에서 벗어난다.

먼저 아는 이가 프로메테우스요 나중에 아는 이가 에피메테우스다. 먼저 아는 이들에게는 신과 인간들으로부터 고통이 따른다. 먼저 아는 이가 선지자(先知者) 아닌가? 오늘날의 의미로는 지성인(知性人)들일 게다. 그들이 고통을 거부한다면 자신들의 책임을 망각하는 것이다. 트로이의 운명을 생각하며 목마의 의미를 먼저 알았던 라오콘에게 바다로부터 거대한 뱀들이 올라와 고통과 죽음을 안긴다. 나중에 아는 이들은 연민을 얻고 용서를 받지만 먼저 안 이들은 노여움과 고통에 부딪힌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힘깨나 쓰는 이들을 들라면 페르세우스. 테세우스,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들이 아닐까.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무엇일까? 인간으로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과제들을 피하지 않는다. 불가능한 것들이기에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또한 그들이 적극적으로 임할 때, 항상 돕는 이들이 나타난다. 특히 조심해야 할 이들이 왕의 딸들이었다. 메데이아와 아리아드네를 비롯한 그들의 끝은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랑의 위력이 밝고 어두운 양면으로 거대함을 본다.

무모한 듯한 혹은 어리석은 도전도 적지 않다. 이카로스와 파에톤과 벨레로폰, 아라크네 같은 이들은 오만으로 패망의 길을 걷는다. 신화를 통해서도 잊어서 안 되는 교훈이 겸손이다. 소극적인 것과 겸손은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다. 자신의 처지를 알지 못하고 혼자 할 수 있다고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은 생명을 걸고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그야말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그렇지만 분수를 넘지 않아야 한다.

신이라고 다 행복하거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우스는 늘 마음이 바람피울 대상에게 가 있다. 끊임없이 헤라의 잔소리를 듣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어쩌면 어느 족속이나 최고신인 제우스와 관련을 맺기를 원했던 결과가 그렇게 표현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 때로는 상대를 불행에 빠뜨리기도 하고 인륜을 깨뜨리기도 한다. 제우스가 그 지경이면 그 어떤 신이 궁극적으로 행복하다할 수 있을까? 아폴론은 다프네를 사랑하나 비극으로 끝나고 아프로디테마저도 너무도 기복이 심한 삶을 산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 기록된 한 알의 사과로 당시 세계의 판도가 달라진다. 헤라와 아테나와 아프로디테는 서로 자기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제우스는 판결을 파리스에게 넘긴다. 파리스는 세상의 권세, 전쟁의 승리, 아름다운 아내라는 조건을 내거는 여신 중에서 아름다운 아내를 택해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준다. 그들의 아름다움보다는 조건을 선택했다 하겠다. 아프로디테는 약속을 지켜 가장 아름다운 헬레네를 파리스의 아내로 허락한다. 문제는 그녀가 메넬라오스라는 그리스 왕의 아내였다는 것이다. 그리스와 트로이 간에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10년의 세월에 무수한 이들이 죽어간다. 그 싸움에 신들도 한 자리를 차지해 전쟁은 거칠어지고 지루해간다. 긴 병에 효자 없듯이 긴 전쟁에 초심은 사라지고 주도권 다툼과 이권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오디세우스는 그 지혜로 지루한 전쟁을 끝내고 부하들과 함께 고향으로 향하지만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부하들을 모두 잃고 홀로 고국 이타카로 돌아온다. 전쟁의 10년과 유랑의 10, 그 세월 속에 아내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며 낮에는 시아비의 수의를 짜고 밤에는 풀어가며 버텨낸다. 마침내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막무가내 구혼자들을 무찌르고 이타카는 다시 평화를 되찾는다.

아마도 오디세우스는 생각했으리라. 무엇을 위한 전쟁이며, 누구에게 득이 되었던가를. 헬레네는 파리스를 거쳐 다시 그리스로 돌아왔지만 그 사이에 트로이는 잿더미가 되고 수많은 영웅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긴 세월의 아픔은 쉬이 아물지 않는다. 신들의 힘도 약해지고 인간들은 경험과 지식이 쌓여가며 이 땅에 진정한 주인이 되어가지만 세월 속에 허무하기만 하다.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며 부딪쳐 죽고 죽이며 역사를 이어가나 그것은 희극에서 멀고 비극에 훨씬 더 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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