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공부도둑놈, 희망의 선생님

변두리1 2021. 3. 13. 15:36

공부도둑놈, 희망의 선생님

 

1935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18세에 미국에 입양되어 하원의원과 3선의 상원의원을 지낸 신호범 박사의 자서전이다. 이제 85세가 되었겠다. 그의 자서전을 읽으며 그분처럼 극적인 삶을 살기도 어렵겠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세상에 뛰어들어 살아가는 그 용기가 부럽다.

무작정 서울로 향하는 배짱이 대단하다. 서울역에서 거지로 살아가던 삶과 그리울 때마다 찾아가는 외할머니 댁과 끔찍한 사랑으로 맞아주는 외할머니, 수시로 서로 이해하고 아픔을 나누는 아버지. 그의 삶을 버텨주는 지주들이었다. 그런 거칠고 험한 삶을 버텨내며 맷집이 길러졌으리라. 날이 밝으면 어디서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날이 저물면 어디서 잠을 자야하나를 염려했다는 그 시절이 그려진다.

열다섯 생일에 서울에서 전쟁 통에 차를 타고 지나가는 미군을 만난다. 아이들이 미군들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요청하는 중에 껌과 초코렛 류를 주던 미군들이 글쓴이를 포함해 세 아이를 차에 태운다. 그들과 함께 간 곳은 용산이었다. 군인들이 자리 잡고 있던 그곳에서 하우스보이가 된다. 그를 데려간 미군은 새까만 얼굴에 때가 끼여 반들거리는 옷을 입고 있는 그를 고아로 알았단다. 호범으로선 나쁠 게 없었다. 할 일이 있고 먹을 것과 잠자리가 해결되고 열심히 해 칭찬 듣고 인정받으며 월급도 준다니 신나는 일이었다. 그곳에서 원체 부지런하고 빠릿빠릿해서 총알이라고 불렸단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과 뭔가 다른 상냥하고 친절한 군의관 폴 대위를 만난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대단한 사도의 이름이 폴인데 그 이름을 딴 것으로 보아 부모가 크리스천인 것 같다. 진지하고 시간이 나면 성경을 읽었다고 한다. 호범은 그를 따르고 그는 호범에게 특별한 호감을 갖고 있었다. 폴은 피란민 수용소를 찾아 그들을 진료하기도 했는데 호범은 자주 함께 가서 환자들 통역을 하곤 했다. 물론 영어를 읽고 쓸줄 알아서가 아니라 듣고 말할 수 있어서였다. 그 때는 폴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할 때, 그 분들이 미국에 사는 이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 즈음에 한 사건이 있었는데 부대장의 심부름으로 통역을 다녀오니 식사시간이 지나서 주방으로 가 취사병에게 사정을 했지만 절대로 주지 않겠다고 했다. 배가 고파 직접 찾아먹으려 했더니 칼을 들이대서 거지 시절 배운 기술을 썼더니 거구가 넘어졌고,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고발을 해서 수사대로 묶여가고 미군을 해하려 했다고 중벌에 처해질 위기 속에 두어 시간여 만에 폴이 찾아와 일의 전말을 듣고 오해가 풀려 넘어갔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폴은 호범에게 자신의 아들로 삼고 싶다고 제안을 하고 호범은 그의 아들이 된다. 여러 절차가 필요한 절차를 마치고 한국 근무를 마치고 폴은 귀국한다. 폴의 초청을 받고도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다 미군의 개입으로 마침내 열아홉 살에 무지개 꿈을 안고 양아버지와 가족들이 있는 유타로 간다. 가족들은 그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친자녀들이 11, 9, 6세 인데 양아들이 19세로 갑자기 장남이 된다니 심리적 충격이 서로에게 적지 않았을 게다.

폴 신으로 이름을 짓고 원하던 공부를 하려고 학교를 찾아간다. 하지만 열아홉 살이란 나이 때문에 모두 거절당한다. 서럽게 우는 폴 신에게 고교 교장은 검정고시를 제안하며 영어 교사 에번스를 붙여준다. 영어의 체계도 잡혀있지 않은 그에게는 모든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게다. 집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하려 애쓰고 부담을 안주려 아르바이트에 검정고시 공부를 하며 학교 선생님께 영어지도를 받으려니 하루 세 시간 이상을 자본적이 없고 코피가 자주 나 티슈를 넉넉히 가지고 다녔다. 검정고시에 합격해 브리검영 대학에 다니고 생각지 못한 여성들과 사귀기도 한다.

자신의 삶을 바꾸어준 하나님을 사랑해 선교사로 일본을 방문하고 여행을 기도 한다. 펜실베니아대와 워싱턴주립대에서 동아시아학 석·박사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았다. 메릴랜드대와 하와이대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1992년 정계에 입문해 워싱턴 주 하원의원이 되었고 상원의원에 도전해 워싱턴 주 상원 부의장이 되었다. 5선 의원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된다. 그가 처음 하원에 도전할 때, 열악한 환경에서 가가호호 방문을 했다. 너희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에 이곳서 25년을 살고 직장도 교회도 다 여기이고, 군대도 다녀왔고 세금도 내고 사회활동도 했다고 설득해 자신을 돕게 한다.

성실함과 착한 마음으로 유산을 물려받을 기회도 더러 있었지만 모두 포기한다. 그를 오해했던 이들도 그의 진심을 이해하고 사이가 가까워졌다. 온갖 어려움을 겪지만 어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넘어서서 자신의 의지와 가치를 드러냈다. 제 나라에서 많은 것들이 갖춰진 상태에서도 해내기 어려운 일들을 무에 가까운 처지에서 이뤄낸 그 기적이 놀라울 뿐이다. 삼자에게는 기적으로 보여도 본인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으리라.

한 사람의 능력과 영향력이 어디까지인 것인지, 개인의 성격과 능력이 선천적인지, 후천적 노력인지 궁금하다. 어떻게 그토록 진폭이 큰 삶을 다이나믹하게 살 수가 있을까?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선 신호범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루지 못할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분명한 목표와 능력과 내 간절함이 부족하고 그것에 쏟아 붓는 노력이 부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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