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오래된 미래

변두리1 2020. 12. 4. 15:48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썼다. 유명한 상을 수상하고 같은 이름으로 영화도 만들어져 50여 개 국가 언어로 번역되어 읽힌다고 한다. 라다크는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 티벳의 접경 근처에 위치해 있다. 저자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책을 읽으며 드는 느낌은 개발 이전의 라다크의 모습이 우리 6,70년대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선진국의 의식 있는 이들이 원하는 삶이 그 시절 어려운 우리의 삶이 아니었나 싶었다.

삶의 수준이 과거로 돌아가기는 너무도 고통스럽다. 선진적 문화를 지닌 이들이 정신적이요, 친환경적이라 말할 수는 있어도 미개발된 상태로 그 삶을 사는 이들은 힘에 겹다. 일터와 주거가 일치하는 농업중심의 삶, 가족 모두가 함께 일하고 밥 먹고 잠자고 살아가는 삶의 리듬이 같은 생활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인력 위주로 가축을 사용해 농사를 지으면 한동네 이웃들과 협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울리며 함께 사는 속에 문화가 만들어지고 가축들과 함께 동식물이 가까워지고 지역과 자연이 친근해진다.

식구수가 노동력의 크기요, 한 사람이 아쉬우니 제외되는 사람이 없다. 아이도 노인도 할 일이 있고, 노인은 삶의 경험과 지혜의 보고요, 아이들은 온 동네의 관심이자 희망이다. 개인사와 가족사 그리고 마을의 일이 따로 없이 함께 얽히고 서로 돕고 사니 화목하다. 어른들이 소외되지 않고 마을 공동체나 다름없으니 범죄가 발생하기 어렵고 크고 작은 일에 상부상조가 잘 이루어지고 한 사람, 한 가정의 경사는 마을의 기쁜 일이 된다.

멀리 이동할 일이 별로 없고 별도의 교육이 없어도 직업화와 사회화가 일터와 마을에서 이루어지고 공동의 신앙이 생겨난다. 마을 우물에서 식수를 길어다 사용하고 공동의 빨래터를 사용한다. 부자라 해도 그리 대단하지 않고 가난하다 해도 끼니를 거르지는 않는다. 이웃마을에서 신랑신부로 맺어져 혼인을 하고 마을 간에도 관계가 좋고 분쟁이 생기면 마을의 어른들을 중심으로 해결해 간다. 연중 좋은 시기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잔치가 벌어지고 종교적 어른이 그 예식을 주관하고, 삶의 매듭마다 예식을 집전하고 인생의 문제들을 상담해준다.

마을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원들을 소중히 여겨 몇 번씩 재활용이 되고 크게 버리는 것이 없다. 마을에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적고 마을의 응집력이 강하다. 얼마나 평화롭고 서로 화목하고 다양한 문화가 보존되고 토착적이며 자연친화적인가? 이런 삶을 수수만년 살아온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을 기점으로 인류의 삶은 거대한 전환을 맞는다. 한동안 그것을 진보와 발전으로 알고 달려온 길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돌아선다는 것이 쉽지 않다.

생명이 없는 기계를 만드니, 그 힘은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해지고 삶의 전 영역에 적용이 되고 영향을 미친다. 실용성의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그 세계는 상품화와 시장을 만들고 자본이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으로 순식간에 변모되었다. 편리함과 화려함의 마력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매혹적인 상품들이 유통되며 그들을 기반으로 한 거부들이 나타난다. 돈의 위력이 커가고 공장들이 들어서며 일꾼들을 모집하니 그 높은 수익성에 고향을 떠나는 노동자들이 밀려들어 일터와 주거의 분리현상이 일어나고 주택문제가 불거지고 거리이동에 따른 교통이 발달하게 되었다.

시장이 활성화되고 도시가 형성되자 삶의 모습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기반으로 민주주의가 정착되는데, 그 제도의 근본은 선거에 있다. 선거권이 있는 이들이 중심이 되고 그들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자 참정권의 확대가 사회적 관심사가 되었다. 사회의 변혁과 함께 찾아온 것이 교육제도의 확립이다. 가정과 일터 중심의 비제도적 교육에서 제도권 교육이 되면서 현장과 유리되었고 전문교육이 이루어져 전통 의술과 부모, 종교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약해졌다.

자본과 시장기능이 중요해지며 대량생산에 이은 대량소비가 이루어졌다. 더 이상 검소와 절약이 아니라 소비가 권장되고 미덕이 되었다. 경쟁체제에서의 대량생산과 소비는 과잉생산을 낳았고 그에 따른 세일과 나눔에까지 이르는 무차별 소비와 풍요로 착각하는 시대를 맞게 되었다. 거대기업의 출현은 나라간 무역의 문턱을 낮추고 기술적 차이가 있는 곳에 많은 상품을 싼 가격에 공급하게 되어 국가 간, 도시 간 교통량이 증가하고 그것은 육로를 비롯한 해로와 항공로의 확대를 이루고 그로인한 공해를 유발하게 되었다.

놀랄만한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은 지구를 하나의 촌으로 만들었다. 크게 보아 단일문화권을 이루므로 다양성이 점차 사라지고 어느 곳이나 비슷한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전 세계인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물건을 소비한다면 다양성과 차이가 없는 쇠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미 그 길로 들어서 먼 길을 왔다고 할 수 있다. 최강자와 일인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세계로 진입해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세상, 연결고리가 거의 사라지고 가늘고 희미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연결된 이웃과 만나고 있다. 그나마 안전망이라 할 수 있던 대가족제도는 무너지고 핵가족이 되어 경제 인구를 제외한 노인과 아이들은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이제 그것도 모자라 일 년 단위로 나뉜 동료 중심의 삶이 되고 있다. 인간관계가 조각나고 상호이해와 협력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와서 과거가 좋았다고 돌아가자고 외쳐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속도와 모두가 달려가는 방향에서 내리거나 돌아서는 순간 자신만 뒤처지는 현실을 어찌 감당할 수 있는가. 적어도 다수가 함께 행동해야 하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하에서 가능할까? 비관적인 전망이지만 어떤 극적인 재난이라도 만나지 않는 한 어려워 보인다. 속도를 늦추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나라와 개인의 이익에 따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이용하려는 이들도 생겨날 것이다.

출입이 금지된 지역에 깊이 들어와 불안해하는 모습이 오늘의 인류는 아닐까? 너무 빠르게 달리다 보니 설 곳을 지나 돌이키기 어려운 곳에 와 있다. 오래된 미래로 어떻게 다시 돌아간단 말인가? 저자는 인류가 회귀해야 할 방향으로 인간중심, 여성 존중, 영적 가치의 추구를 꼽고 있다.

해결이 어려운 고차 방정식 같은 산적한 문제들을 안고 살아 갈 미래세대를 생각하면 불쌍한 마음이 든다. 이 땅을 향한 질긴 기대를 포기하지 못하고 앞 세대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성취해주기를 바라는 못난 현대인임이 부끄러워지는 것도 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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