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아플까
선입견보다 훨씬 흥미롭게 읽었다. 지은이의 생각과 안목을 보게 한다. 평소에도 병원이 저렇게 많을 이유가 있는가하는 의문이 자주 일었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고 무리지어 도시를 만들고 자주 이동하다보니 바이러스에게 너무도 살기 좋은 신세계를 만들어 주었다. 좋다고만 생각했던 깨끗한 환경이 그게 아니었다. 모기 파리 개미 같은 곤충이 하나도 없는 환경은 쾌적하다기보다 끔찍한 것에 가까울 수 있다. 전혀 접하지 않았던 균들에게 무방비로 공격을 당해 생명을 잃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질병으로 고생하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개인적인 접촉을 꺼리다 동물과 식물, 곤충까지 가리지 않고 외로움을 달랠 존재가 되어달라고 사정하는 인류의 모습이 보인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도시 아이들이 특정 질병에 많이 걸리고 많이 배운 이들이 잘 걸리는 질병은 무언가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인류가 내딛는 걸음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은 아닌가. 서로 얼굴이라도 익히고 눈인사 정도는 나누어야 정면충돌을 피할 수 있다는 자연계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지도 모른다.
스페인에 의한 아즈텍 공격이나 아메리카 대륙의 비극은 인간들의 공격보다 천연두의 공격에 초토화되었다는 것 아닌가. 얕은 관계로 넓게 사귀고 소수와는 깊은 관계로 지내라는 인간관계의 철학이 세균들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는 울림을 듣는 것 같다. 외톨이로 혼자 산다고 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상처받기를 원치 않으니 사람이 아닌, 내게 상처 줄 수 없는 생명체와 살겠다는 것이 이기적이고 위험스런 것임을 느끼게 한다.
스스로 소심하고 경계심이 많아 자가 면역 체계가 과민반응을 일으킨다는 알레르기 현상들을 예전 사람들은 잘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터전으로부터 멀어지고 점차 개인화되며 기껏해야 가정을 좀처럼 넘지 않는 삶에서 생활영역이 과하게 위생적으로 청결해지니 세균으로부터 지나친 분리가 일어난 것이다. 그들이 서식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임에도 평소에 단절되어 있다가 어떤 계기로 만남이라기보다 충돌이 일어나고 대비 없이 집단공격을 받아 허무하게 허물어진다는 게다.
아픔은 우리에게 건네지는 경고다. 그것은 정상이 아니며 고장이 났으니 신경을 쓰라는 외침이다. 아픔이 없으면 자각하지 못한 채 망가져 간다. 크게 고장이 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전기에 비유하면 문제가 생기면 작동하지 않아야 한다. 고장인데도 작동하면 큰 사고를 당한다. 아픔과 고통이 심해지면 자리에 눕게 된다. 다른 활동을 하는 것보다 누워서 체력을 회복하고 고장 난 곳을 수리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유익하다는 몸의 결정이다. 아픔이 밀려오기 전에는 그 부위에 신경이 집중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호소하듯 몸도 호소한다.
우리 사회는 개인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확대해 느끼게 한다. 예전에는 질병이라 생각지 않던 것들을 병원이 의사들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관리하려 한다. 그들을 가장 부추기는 세력이 제약회사란다. 경제력으로 그들은 거대한 권력이 되어 있다. 그들의 합법적 물량공세를 이겨내기는 어렵다. 의사들과 학계, 언론을 묶는 전 방위 카르텔을 누가 저항할 수 있을까? 환자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협조를 구하고 실천하는 일에 여러 분야의 한없는 공조가 이루어져 그들끼리 이익을 누리는 모양새를 이룬다.
가장 강력한 매체인 TV를 필두로 신문과 라디오 잡지에 건강과 관련한 면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그것을 보는 이들은 평소에 의식하지 못하던 것들이 질병일 수도 있다는 불안함을 가지고 병원을 찾고 병원에서는 온갖 검사들이 동원되고 약이나 처치가 권유된다. 그 비용은 보험으로 계산되어 매달 수만 원씩 지불하면서도 자신에게서 많이 지출되었다는 것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보험비용을 치르고 혜택을 누리지 못함을 아쉬워하게 된다.
왜 이런 비정상적인 일들이 더욱 성행하게 되는가? 우리 사회의 구조가 그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제약회사는 유능한 이들을 많이 고용하고 있다. 연구와 실험을 거쳐 새로운 약이 개발되면 그것을 소비해야 하니 홍보를 위해 관련 학자들의 힘을 빌리고 직접적인 소비처인 병원과 의사들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예비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소개하려니 언론을 떠날 수 없다.
병원들도 처지가 만만하지 않다. 많은 의사들을 고용하고 있고 고가의 장비를 수시로 들여놓으니 경제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 행위에 있어 의사는 환자들에게 갑(甲)이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오라면 거부할 수 없다. 검사결과 아무 문제가 없으면 다른 곳 같으면 안 해도 되는, 쓸데없는 검사를 한 것이지만 병원에서는 정상이라 하고 사람들은 고맙다고 한다. 문제가 발견되면 검사해서 찾아내 다행이라고 한다. 과잉검사를 해도 문제될 일이 없다.
보험에 종사하는 이들도 사회분위기가 이러하니 보험료를 받고 병원비를 내주는데 문제가 없다. 보험에 관해 소비자가 전문가가 되기는 어렵다. 깨알 같은 글자들은 읽기 어렵고 용어들은 이해할 수 없다. 이 상대적으로 무지한 이들을 대상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욕망의 거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 가장 밑바닥에 자본주의의 원리가 있다. 재화를 내 것으로 하려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실현에 유리한 힘을 가지고 있는 관련분야의 지배계층이 협조하고 있다. 병원은 이렇게 점점 몸집을 불리며 괴물이 되고 있다.
몸이 아픈 것에 더해 자본주의 작동원리에 의해 경제도 고통을 겪는다.